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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쳐돌이 미쳐돌게 만드는 일본의 빵맛집

조회수 2020. 4. 2. 1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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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펠리칸 베이커리' 그 빵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네

8시가 되기 전, 도쿄 아사쿠사의 한 작은 빵집 앞에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 기다린다. 인테리어가 예쁘지도 않고, 세련된 구석 하나 없는 이곳이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이란다. 8시가 되자마자 문이 열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갓 구운 빵을 사러 몰려들었지만 생각 외로 가지 수가 많지 않다. 롤빵과 식빵, 단 두 종류뿐인데다 모양도 평범하기 그지 없는 펠리칸의 빵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진 걸까.

다큐멘터리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는 펠리칸에서 판매하는 빵만큼이나 심플한 작품이다. 무려 74년 동안 롤빵과 식빵만으로 일본인들을 사로잡은 빵집 펠리칸을 조명하는 영화는 많은 재료를 담지 않는다. 펠리칸의 역사, 펠리칸에서 일하는 직원들, 펠리칸을 사랑하는 고객과 이웃들의 이야기만 담아도 충분하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디서인가 담백한 빵 냄새가 솔솔 나는 듯하고, 그 쫄깃하다는 식빵 식감이 느껴질 듯하다.


영화는 일본으로 귀화한 샤미센 연주자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일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귀화했다는 그는 일본의 깊은 문화와 아사쿠사의 정겨움을 찬양한다. 이어 미국, 캐나다와 같은 서양 국가와는 다르게 펠리칸의 빵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이야기하며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외국인이 아사쿠사의 작은 빵집 펠리칸을 “동네의 자랑”이라며 치켜세우는 장면은 가히 묘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펠리칸의 젊은 점주 와타나베 리쿠는 선대에 이어 4대째 펠리칸 운영을 맡고 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펠리칸에서 일을 해온 제빵사의 도움을 받으며 무탈하게 가게를 운영중이나, 펠리칸을 일궈온 선대들의 노력을 잘 알기에 점주로서 적잖은 부담감을 느낀다. 4대째 똑같은 맛의 빵을 만든다는 건 엄청난 신념을 필요로 할 테다. 언제나 한결 같은 맛을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로고와 포장지 역시 단 한번도 바꿔본 적 없다는 펠리칸은 그때나 지금에나 도쿄에서 가장 사랑받는 빵집이라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일본인들은 급격한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수십, 혹은 수백년씩 전통과 명맥을 잇는 ‘장인 정신’을 이어왔다. 후세대에 물려주는 장인 정신은 성공적인 경영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증명하는 지표가 돼왔다. 도처에 깔린 프랜차이즈 가게보다 100년 된 가게가 더욱 소중하고 자부심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 부모님 세대도, 조부모 세대도 즐겨 먹던 음식을 나 역시 먹을 수 있다는 특별함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펠리칸 역시 4대째 내려져온 역사적인 빵집이나, 이곳에서 40여년 넘게 빵을 만들어온 터줏대감 나기 히로유키는 ‘장인’이라는 말을 거부한다. 18살 어린 나이부터 빵에 인생을 바쳐온 제빵사는 “장인이 아닌 인간이라서” 펠리칸의 역사가 이어져올 수 있었음을 피력한다. 자신의 능력과 자부심을 지키고 향상시키는 것 보다는 손님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히로유키와 펠리칸의 경영 이념에 부합하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펠리칸의 베테랑 제빵사들은 다양한 맛과 모양을 내며 실력 발휘를 하는 게 아닌, 전통에 충실하는 겸손함과 정직함으로 빵을 만들어 감동을 자아낸다.


영화는 펠리칸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일하는 분위기와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일하는 장면을 잡기도 한다. 오래 가게를 운영하려면 ‘소통’이 중요하다는 설명은 당연하게 느껴지나, 이 당연한 일도 마냥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구성원 모두 빵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혼연일체를 이뤄 지혜와 정성을 모아 빵을 반죽하고 굽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빵은 철저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유통된다. 펠리칸이 50년 이상 연을 이어온 단골 카페에서 펠리칸 식빵으로만 토스트를 만들어 판다거나, 펠리칸 빵을 위탁 판매하던 빵집 사장이 세상을 떠나자 동네 도장집 부부가 이웃을 돕기 위해 펠리칸 빵을 대신 판매하기도 한다. 이렇듯 빵 하나가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온정을 나누도록 돕는다는 사실은 꽤 경이롭게 다가온다. 펠리칸이 주민들 간 소통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함으로써 가슴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중간중간 펠리칸의 바쁜 하루를 포착한다. 그 하루 안에 순환되는 펠리칸의 빵은 마치 하나의 생동하는 생명처럼 비춰진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배경으로 숙성된 반죽이 제빵사들의 손에 맡겨져 모양이 만들어지는 과정, 빵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진열되거나 포장되고 손님들에게 전해지는 과정 모두를 경이롭게 연출해냈다. 이러한 장면들이 러닝타임의 상당수를 차지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움이 연속돼 쉴 틈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개봉: 4월 2일/관람등급: 전체 관람가/출연: 와타나베 리쿠, 나기 히로유키, 이토 마사코/감독: 우치다 슌타로/수입·배급: ㈜영화사 진진/러닝타임: 80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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