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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그린 폭소와 공포 그리고 슬픔

조회수 2019. 5. 30. 14: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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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과 관객의 취향 사이를 영리하게 오가는 연출자. 특정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서사의 본질에 집중하는 스토리텔러. 현실을 직시하는 블랙코미디가 시그니처인 풍자의 귀재. 칸 영화제 최고 영예 황금종려상의 주인공. 남들은 하나만 가져도 감사하다는 수식 문구는 모두 한 사람을 향한다. ‘기생충’으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이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요즘이 ‘국뽕 주간’이라고 하더라고요. 방탄소년단의 인기에 손흥민 선수의 경기,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수상이 더해져서요.


하하. 그럴 때 보통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말아주시오”라고 하던데. 주모가 바쁘시겠네요. 칸에서 귀국 후 한국 공항에 취재진이 나와있더라고요. 문재인 대통령과 염수경 추기경은 축전까지 보내주시고. 제가 마침 가톨릭 신자거든요.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죠. 영광입니다. 다만 상으로 제 영화 인생이 규정되는 건 싫어요.


‘기생충’은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아들 기우(최우식)가 성공한 IT 사업가 박 사장(이선균)네 과외 선생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드디어 부잣집이 배경인 이야기네요.


이제는 좀 다뤄보려고요.(웃음) 홍경표 촬영감독도 그러더군요. “감독님, 부잣집은 처음 봐요.” ‘마더'(2009) 때 엄마(김혜자)가 일하던 약재상과 모자의 집을 떠올리면 그럴 만도 하죠. ‘옥자'(2017)의 미자(안서현)가 살던 집도 산꼭대기에 있었고요. 앞으로는 제 작품에 부잣집이 안 나온다는 소리는 이제 그만 듣겠네요.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그 아름다운 집이 전부 세트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였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칸 영화제 심사 위원장도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아, 당연히 세트지. 이 형 왜 이래~”라고 했죠. ‘기생충’ 제작비가 130억인데, 미술 비용이 제일 많이 들었어요. 박 사장네 집과 기택네 집, 기택이 사는 동네 모두 세트거든요. 특히 부잣집은 가구 하나하나 신경 썼어요. 의자 하나에 2,500만 원에 식탁이 500만 원이더라고요. 임대료도 되게 비싸요. 촬영장에 모포로 덮어두고 애지중지했죠. 정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경수 가격이 그렇게 비싼지 처음 알았습니다.


주요 사건은 대부분 박 사장네에서 일어나죠. 전체적으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데, 층마다 분위기도 달라요. 비밀을 품고 있는 미로 같습니다.


맞아요. 미로 같다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길을 잃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속 꺾인 면이 존재하죠. 특정 지점에서 다른 지점이 안 보이잖아요. 이 영화의 전개는 엿보고 엿듣는 행위가 중요하니까요. 시나리오 작업이 끝났을 때 미술 감독에게 제 머릿속에 있는 그대로 주문을 했어요.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여러 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집의 전체 구조와 각 공간의 디테일이 담긴 세심한 스케치다. 봉준호 감독은 아이패드에 시나리오부터 아이디어 메모, 콘티까지 모든 걸 저장한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그러고 보니 봉준호 감독은 직접 콘티를 다 그리는 편이죠.


규모가 크고 시각 효과가 많으면 저와 스토리보드 아티스트가 절반씩 나눠서 그려요. ‘괴물’ ‘설국열차'(2013) ‘옥자’가 그랬어요. ‘살인의 추억’ ‘마더’ ‘기생충’은 100% 제가 다 그렸어요. ‘기생충’ 스토리보드는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만화를 그리기도 했잖아요. 전공은 사회학이고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데, 취미와 전공을 모두 살린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그 만화 누가 스캔해서 기사로 썼더라고요. 누가 올린 거지.(웃음) 아르바이트로 네 컷 만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 주인공이 연돌이와 세순이라고. 상당히 잘 그렸죠. 그림의 완성도가 높다고 학내에 화제를 몰았더랬죠. 하하. 대학생 때는 주로 영화 동아리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88학번인데, 당시에는 지금보다는 학점 따기가 쉬웠어요. 슬렁슬렁 지냈죠. 덕분에 사회학은 잘 몰라요. 학사 논문도 제3세계 영화를 사회학과 연관시켜서 썼거든요. 교수님이 관대하셔서 받아주신 거죠.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연출작들의 출발점이 대부분 찰나의 이미지였잖아요. ‘마더’는 관광버스 춤, ‘괴물’은 고3 때 한강 다리 교각에서 본 까만 생명체였죠. ‘기생충’의 최초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이미지라기보다는, 같은 인원수의 두 가족에서 출발했어요. ‘기생충’의 90%는 인물들의 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집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죠. 거기에 카메라가 들어간 거죠. 타인의 사생활을 밀접한 거리에서 지켜보게 되는 겁니다.


많은 경우 관객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합니다. 하지만 ‘기생충’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어느 쪽을 택해도 찜찜함이 남습니다.


복합적인 인물을 그리고 싶었어요. 단순한 의미의 좋은 놈과 나쁜 놈이 없죠. 완전한 희생자도 없고요. 사랑스럽기도 하고, 혐오스럽기도 해요. 그래서 더 사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간편하게 감정을 끌어내는 방법은 많아요. 하지만 금방 휘발됩니다. 인물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에게 도달하는 감정이 더 파괴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은 굉장히 한국적인 상황을 담았지만, 칸 영화제에서는 국적 불문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사실적인 상황 위에서 움직이는 입체적인 인물들이 비결이군요.


본 사람들이 다 자기네 나라 이야기라고.(웃음) 과외 선생이 된 대학생은 미국이나 영국에도 많으니까요. 운전기사나 가정부는 물론이고요. 사실 드라마로도 만들려고 준비 중입니다.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미국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어요. 6~8부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어요. 천천히 해보려고요.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풀 수 있을 겁니다 .


전작 ‘설국열차’는 이미 드라마 제작이 확정됐죠.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나요?


시즌 1 작업은 끝났어요. 내년 초에 송출될 예정입니다. 10개의 에피소드로 준비했어요. 제니퍼 코넬리가 나옵니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평소 변장을 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핀다고 들었어요. 얼굴이 잘 알려졌을뿐더러 특징이 분명해서 눈에 띄는 외모인데, 그게 가능한가요?


배우나 감독들은 다 그럴 겁니다. 변장은 되게 쉽고 간단해요. 덕분에 요즘도 지하철을 타고 다닙니다. 배우나 가수들은 피부가 좋고 외모가 수려해서 눈에 잘 띄잖아요. 저 같은 사람은 다 숨길 수 있죠. 뭐, 팔이 세 개도 아니고.(웃음) 방법은 이야기할 수 없어요. 아무도 모를 겁니다. 하하.


국내 관객들의 ‘기생충’에 대한 기대치가 최고조입니다. 다들 무엇을 얻어 가길 바라시나요?


폭소와 공포와 슬픔이요. 제작보고회 때 무심코 “이 영화에는 웃음과 공포가 다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생각해보니 그게 영화의 순서와도 비슷합니다. 특히 슬픔은 형태가 여러 가지죠. 먹먹한 슬픔도 있으니까요. ‘기생충’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뒤풀이에서 다들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 슬픈 감정을 영화로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배우들의 힘이 큰 것 같습니다.


성선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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