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면 소름 돋는 '사바하' 그 장면

조회수 2019. 2. 28. 17: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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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하' 일단 염불을 외웁시다

※ ‘사바하’ 강력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 후 읽기를 권합니다.


“생각보다 별로 안 무서운데?” 장재현 감독의 신작 ‘사바하’를 향한 반응이다. 그 뒤에는 “에이, ‘검은 사제들'(2015)을 기대했는데”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제2의 ‘검은 사제들’이 아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접근이다. 분명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과 공통분모가 있다. 카톨릭 구마 의식을 쫓던 앵글은 불교, 그중에서도 밀교(密敎)와 무속신앙으로 영역을 넓혔다. 인간의 가장 오래된 화두에서 매혹적인 천일야화를 발굴하는 장재현 월드의 확장이다.


하지만 ‘사바하’는 제2의 ‘검은 사제들’이 아니다. 출발점부터 다르다. ‘검은 사제들’은 ‘귀신 박멸’이라는 목표를 설정한 뒤, 공포의 대상을 정면으로 들여다본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울고 웃고, 무서워하면 된다. 구마 의식은 그 수단이다. 이야기의 문법도 친숙하다. 악마에 씌인 소녀는 눈을 까뒤집고 중국어·독일어·라틴어로 무서운 저주를 퍼붓는다. 그 기세가 하도 험악하니 보는 이의 심장마저 쪼그라든다.

그럼에도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악령을 내쫓기 위한 푸닥거리는 친숙한 소재다. 우리는 이미 거꾸로 몸을 뒤집어 계단을 내려오는 귀신 들린 소녀를 봤으니까. 여기에 버디 무비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꼴통’ 신부와 사고뭉치 신학생의 협업이 더해졌다. 이 얼마나 친절한 전개인가.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사바하’, 질문을 던지고 해석을 구하다


반면 ‘사바하’는 절대자를 향해 던지는 질문에 더 가깝다. 인간 세상의 아비규환을 방치하는 그분 말이다. 박 목사(이정재)는 시종일관 절대자를 향해 “어디 계시나이까”라고 묻는다. 정나한(박정민)은 신의 의지라는 명분에 현혹당한 우매한 중생이다. 애초부터 ‘얼마나 무서워?’라는 질문은 ‘사바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천장에서 슬금슬금 내려오는 귀신들은 정나한의 번뇌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더 가깝다.


또한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에 비해 관객에게 능동성을 요구한다. 앉아서 가만히 쳐다만 본다면 재미가 반감된다. 영화 속에 숨겨놓은 종교적 상징들 때문이다. 일단 ‘사바하’ 자체가 성서에 등장하는 헤롯왕 이야기의 의도적 모방이다. 영생을 바라는 김제석(유지태)은 헤롯왕이며, 정나한(박정민)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아기를 죽이려 드는 로마 병사다. 김제석에게 ‘그것'(이재인)의 존재를 예언한 네충텐파(타나카 민)는 당연히 동방박사에 해당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헤롯왕의 몸뚱이에 사천왕의 얼굴을 한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사바하’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이라는 뼈대에 불교적 상징이라는 옷을 입혔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치면 크로스 오버다. 환영 인사와 낯설게 하기 담당은 불교의 몫이다. 관객은 초반부 100여 명의 승려가 경전을 읊는 소리와 험상궂은 사천왕의 얼굴, 그 음산함에 압도된다. 후반부에 헤롯왕의 이야기에서 따온 몸뚱이가 드러나면서, ‘사바하’의 전체 형상이 완성된다.


이야기의 뼈대뿐만이 아니다. ‘사바하’는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다. 장면 장면마다 상징과 은유가 숨어있다. ‘그것’이 정나한을 맞이하면서 보여준 손동작을 기억하는지. 모르는 이에게는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웬 손장난인가’라고 받아들여질 테다.


사실 이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수인(手印)이다. 첫 동작은 지권인(智拳印), 두 번째는 시무외인(施無畏印), 세 번째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수인마다 의미가 다른데, 연결하자면 ‘부처의 지혜를 통해 두려움을 없애고, 악마를 굴복시켜라’라는 뜻이 된다. ‘그것’은 손의 언어로 정나한에게 임무를 하달 중이었던 것이다. 수인 이해 여부에 따라 해당 장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분량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사바하’가 종교 관련 지식이 있는 이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 122분짜리 거대한 퍼즐이다. 해석을 하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종교적 상징을 몰라도 이야기의 흐름과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다. 결국 모든 사건들의 출발점은 인간의 과유불급이므로. 하늘에 닿기 위해 탑을 쌓던 시절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그 고전적인 주제 말이다. 또한 종교는 껍데기일뿐, 이 영화의 본질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다빈치 코드'(2006)와 ‘셜록 홈즈’사이에 ‘사바하’가 있다. 그러니 마음을 열고 일단 진언을 외우자. “사바하(svāhā).”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성선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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