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영' 김가희 "나는 진짜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조회수 2018. 7. 27. 18: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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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친밀함을 느끼고 싶은 건 인간이 가진 기본 욕구다.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친구를 통해 사랑과 배려를 배워가는 것, 이것이 사회화다. 그런데 제도적 안전망에서 벗어난 10대들에게는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아는지. ‘박화영’은 사랑받는 법에 서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옹골차고 야무진 신예 김가희가 있다.

김가희가 연기한 박화영은 가정의 울타리를 상실한 뒤, 유사 가족을 모으기 위해 엄마를 자처한 10대 청소년이다. 사진 강민구(STUDIO SWAVE)


# ‘박화영’이 되기까지 오랜 기다림


첫 주연작이 개봉했습니다. 기분이 어떤가요?


모두 생소하고 낯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개봉 후 한 달 정도 지나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열심히 했으니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 중입니다.


박화영이 되기 위해 체중 조절부터 시작해서 많은 노력을 했어요.


어떤 분은 한국의 크리스찬 베일이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캐릭터를 위해 외형에 변화를 준 사실이 화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단지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면,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박화영’이 되기 위해 5차 오디션까지 거쳤어요. 기다림의 연속이었을 텐데요.


정말 피말리는 과정이었습니다.(웃음) 첫 오디션 때는 완전 죽을 쒔어요. 2차 오디션에서야 대본을 우편으로 받아봤습니다. 박화영이 겉으로 보기에는 자극적이고 비호감적인 면이 많은 비행 청소년이라는 걸 알아요.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다채로운 캐릭터였습니다. 덕분에 어려운 연기가 될 것 같았습니다. 5차 오디션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엉엉 울었어요.


욕을 달고 살면서 매사 ‘센 첵’을 하는 박화영. 하지만 친구들의 눈치를 누구보다 많이 본다.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사진 리틀빅픽쳐스


# 환하게 웃는 박화영, 저와 닮았어요


인간 김가희는 사랑스럽고 밝은 쪽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이환 감독은 김가희 배우의 어떤 점이 박화영에 어울린다고 봤을까요?


저랑 닮았대요. 하하. 오디션을 보면서 일부러 엄청 세보이려고 했는데, 우스꽝스럽게 보였더라고요. 감독님이 그게 정말 좋았다고 했어요. 너무 살벌하면 청소년처럼 안 보였을 테니까요. 처음에는 부정했어요. ‘나는 박화영 같은 사람이 아냐. 연기일 뿐이야.’ 그런데 지인들 중 직설적인 분이 ‘너는 많이 닮아서 뽑힌 거야. 그러니 노력해야 돼’라고 말하더군요. 솔직히 기분 나빴어요.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만만한 존재는 아니거든요.(웃음) 잘 생각해보니 박화영이란 캐릭터에 제가 많이 녹아들어있더라고요. 생각 없이 환하게 웃는 것도 그렇고.


말씀하신 것처럼 박화영은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알고 보면 외로움이 많은 인물입니다.


박화영의 대표적인 정서는 결핍이니까요. 캐릭터가 지닌 간절함과 무모함도 다 결핍에서 나온다고 봤어요.


친구들은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는 박화영을 ‘엄마’라고 불러요. 하지만 박화영이 진짜 애착을 갖고 있는 대상은 은미정(강민아)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했나요?


모성애라고 봤어요. 박화영이 엄마의 책임감을 갖고 강민아를 대하는 거죠. 간혹 퀴어 코드로 보시는 분이 있는데, 제 캐릭터의 외형이 보이시해서 그런 가봐요. 은미정도 박화영에게 애교를 부리고, 짜증도 내잖아요. 박화영에게는 정말 딸내미 같은 존재인 거죠.


박화영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떤 과정들을 거쳤는지 설명해줄 수 있나요?


예를 들면 허세를 부리는 부분이요. 박화영은 무모하게 빽빽 소리 지르고, 담배를 잘 피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잖아요. (그 나이에) 배워봤자 얼마나 잘 피겠어요. 밥 먹는 것도 박화영처럼 다리를 쩍 벌리고 먹었어요. 박화영처럼 호탕하게 웃기도 하고요. 제가 연기를 하더라도 그런 부수적인 것들을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파주에 있는 ‘박화영’ 합숙 숙소에서 연습을 했죠.


‘박화영’에는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질서와 예측불허 권력관계가 담겨 있다. 사진 리틀빅픽쳐스


# 엄격한 스승 같았던 이환 감독


영화 속에는 박화영이 친구들에게 폭행 당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촬영장에 응급차와 무술 감독님이 늘 대기 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인의 자세로 가려고 했는데, 15회차 이후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다 잘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이 모두에게 피해가 되는 걸 알았거든요. 폭력신의 경우 24시간 동안 촬영했어요. 체력이 바닥나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환 감독은 배우로도 활동 중인데요. 그런 순간에 김가희 배우를 향해 뭐라고 하던가요?


“거기서 타협하지 마!”라고.(웃음) 촬영은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힘든 신의 연속이었어요. 32회차 촬영 중 30회차가 제 분량이었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있거나 난간을 바라보는 신이 나오면 ‘안 힘든 장면인가?’ 여기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대본에 가만히 있는다고 적혀 있다고 해서 진짜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냐’라고 말씀하셨어요. ‘우쭈쭈’ 해주면 배우로서 나약해질까봐 걱정한 거죠. 감독님의 기대치가 높아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평생 아쉬워하느니 그 말을 듣는 게 낫겠다고 여겼습니다.


이환 감독은 매우 엄격한 연출자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김가희 배우를 아끼는 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네요.


늘 그런 편이세요. 촬영할 때도 ‘이 컷은 너 돋보이라고 만든 건데 다른 배우한테 뺐겼어’라고 하세요. 면박을 주셔서 속상할 때도 많고요. 그런데 편집되어 완성된 걸 보면 달랐어요. “결국 김가희 너였다”랄까요. 하하. 감동적이어서 눈물도 나고, 얄밉기도 했죠.

‘박화영’은 22회 부산국제영화제와 36회 뮌헨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 강민구(STUDIO SWAVE)


#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하기를


‘박화영’은 2017 부산국제영화에서 관객과 먼저 만났습니다. 영화를 세상에 선보이는 기분은 어땠나요?


심장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할 정도였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봤던 순간도 생각났습니다. 거북한 부분도 있었거든요. 영화를 관객이 어떻 받아들일지 궁금했어요. 많은 생각을 하다가 다리에 힘이 없어서 쓰러질 것 같더라고요. 영화도 안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환 감독님이 ‘스크린으로 봐야지’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꿈을 이룬 순간이었어요.


오랜 염원이 ‘박화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배우를 꿈꾸게 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어릴 때부터 TV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연예인들의 멋있고 달달한 로맨스에 이입이 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우들이 행동하고 연기하는 걸 멋있게 여겼어요. 따라하기도 했죠. 친구들이 ‘정말 똑같이 따라한다’라고 말하는 아이였어요. 그 뒤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 했는데 떨어졌죠. 정말 큰 좌절이었어요. 세상이 저를 거절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극단에서 연기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정말 하고 싶다는 열망이었죠. 아무 것도 모르니 연습을 통해 성장하고 싶었어요. 동아리에 들어가서 몇 달씩 연습해서 하루 공연하는 일도 있었어요. 단편 영화에도 출연했었고요. 그 뒤로는 대학로에서 연극도 했었죠. 그런데 배역들이 다 한정적이었어요. 예쁘지 않아 괴롭힘을 당하는 여자, 소개팅에서 실패하는 여자 등등이요. 멀티 역할도 했었는데, 유쾌하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외모를 비하하면서 웃기는 것도 많았어요. 실제로는 저 그렇게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거든요. ‘나는 진짜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이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동고동락한 이들과 함께 뮌헨국제영화제를 찾은 김가희. ‘박화영’은 국제 인디펜덴트 섹션에 소개됐다. 사진 리틀빅픽쳐스


오랜 무명생활이 참 고생스러웠겠습니다.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그만두기도 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연기가 더 하고 싶었습니다.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도 않았고요. 스무 살에 동창회를 갔어요. 친구들이 저보고 “너는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하잖아. 나는 겁이 나서 못해”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모든 게 부정적이어서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달라요.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서 좋아요.


첫 장편 주연작으로 큰 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 말고, 그냥 배우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제발 제 연기를 봐주세요’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기다립니다. 나이가 들어서 주름이 생겨도 괜찮아요. 그게 멋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계속 배우로 살아갔으면 해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소망이기도 하죠.


‘박화영’은 10대들이 주인공이지만 청소년 관람불가입니다. 어른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나요?


자신의 10대 시절을 돌이켜보길 바랍니다. 분명 어떤 순간에는 박화영이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은미정이었을 테니까요. 어른들도 그런 기형적인 관계나, 보면서 외면했던 것에 대한 기억이 있잖아요.

김가희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배우의 길을 정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 강민구(STUDIO SWAVE)


+10대 당시 김가희에게 보내는 한 마디.


“노는 것도 남는 거다.”


청소년기를 잘 살아온 편입니다. 하지만 놀지 못해서 아쉬워요. 요즘 다들 너무 집과 학원만 오가잖아요. 물론 부모님 말씀은 잘 들어야하지만, 청소년기에는 청소년다운 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성선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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