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커피, 정말 미군이 원조일까?

조회수 2020. 1. 8. 11: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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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군사문화 칼럼니스트 문형철, 편집 박소현
커피가 미군으로부터 '도입됐다, 아니다'를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오늘은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출처: MAXIM KOREA
# 한국 커피 문화의 시작
서울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 RTO(Railroad Transportation Office, 군용 철도 수송 사무소)가 있다. 구서울역 끝에 있는 RTO는 현재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다목적 문화공간이다. 하지만 본래 군사 목적으로 활용된 곳이라는 점, 그리고 현대 한국 커피 문화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조선을 강제 침탈한 일본은 조선의 물자와 사람을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용산을 거점으로 철길을 만들었다. 철길은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과 한반도를 비롯한 식민지 수탈의 중심이었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 (이하 미 군정청)의 통제 하에 놓였다. 미 군정청은 미군의 물자를 보급하고자 서울역을 비롯한 각 주요 거점의 기차역에 RTO를 설치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RTO를 통해 전쟁 물자를 보급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도쿄에서 들여오려던 전투식량 ‘C레이션’은 1,650개. 그러나 수량 보고를 한 지 3일 만에 식량 재고는 바닥이 나고 만다.

한국전쟁으로 물자 생산과 공급이 힘들어진 데다 수량도 부족한 탓에 레어템이 된 C레이션은 암시장을 통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갔다. C레이션에는 식량 외에도 가루 형태의 인스턴트커피가 포함되어 있었다.

인스턴트커피는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군에 퍼진 새로운 커피 문화였다.
출처: MAXIM KOREA
# 미군발 인스턴트커피 열풍
이 사진은 대구역 RTO에서 보급품을 싣고 이동하는 군사 열차의 모습이다.

최초의 인스턴트커피는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를 수탈했던 일본에서 탄생했다. 1901년 일본의 화학자 ‘사토리 카토’ 박사가 저가의 커피 원두 추출액을 건조해 만든 가루에 물만 부어 간단하게 만들 수 있게 개발한 커피다.

그러나 사토리 박사는 특허권을 얻는데 실패하고, 미국인 ‘조지 C 워싱턴’이 이를 먼저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은 미군으로부터 인스턴트커피를 접해 미국이 그것의 원조라고 여기게 됐다.
출처: MAXIM KOREA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과 캐나다군을 따라 인스턴트커피는 유럽에도 침투했다. 전투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군인들에게 커피는 몸을 데워주는 훌륭한 친구였다. 스위스 네슬레사는 그타이밍을 노려 인스턴트커피 제조와 판매를 시작했고, 그 결과 지금의 위치까지 올랐다. 네스카페 알지?

본격적으로 인스턴트커피가 퍼지게 된 계기는 미군이 1950년 일반적인 조리가 가능한 식자재로 구성한 B레이션을 보급하면서부터다. 처음엔 미군의 전투식량이 한국군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후 메뉴가 풍성한 ‘B레이션’으로 개선되었고, 한국군을 비롯한 UN 참전국들에게도 식량 지원이 시작됐다.
출처: MAXIM KOREA
B레이션에는 빵, 쌀, 돼지고기, 달걀, 과일 등 각나라에 맞는 식단이 들어 있었다. 의료지원기지나 병원열차는 우유, 주스, 설탕, 통조림 수프 등을 공급 받았다.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였던 B레이션을 미군들은 기본 200원(현재 가치로 약 6,000원)에 살수 있었다.

그러나 굶주리고 가난한 한국인들은 값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위생 관리에서 탈락한 군수품을 암시장에서 뒤질 뿐이었다. 미군 보급품목에 들어있던 인스턴트커피는 구하기 힘든 레어템라 특히 인기가 많았다. 원래, 있는데 안 먹는 것과 없어서 못 먹는 것은 완전히 다르잖아?
출처: MAXIM KOREA
# 이게 약이여 음료여?
맛은 쓰고 색은 까만 인스턴트커피는 한국전쟁 당시의 한국인에게 음료보다 한약에 더 가까웠다.

후식으로 한약을 들이키진 않을 게 아닌가. 그래도 용기를 내서 커피에 도전한 사람들은 불면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 탓에 커피는 단지 ‘잠을 못 자게 하는 탕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 것이 마냥 좋아서 마시거나, 처음부터 취향에 맞았던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민간에 처음 등장한 커피가 인스턴트커피였기 때문에, ‘커피’라는 고유명사는 인스턴트커피를 지칭하게 됐다. 원두를 내려 마시는 커피를 ‘원두커피’라 따로 불리게 된 게 이 때문이다. 미군을 통해 퍼진 인스턴트커피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한반도의 주요한 현대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때부터 인스턴트커피는 한국인에게도 제법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미군 매점에서 암시장으로 흘러들어온 가루 인스턴트커피는 상인들의 주요 소득원이기도 했다. 1968년 동서식품은 미국 제너럴 푸즈 사와 합작하여 한국 패치가 된 인스턴트커피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서식품은 1976년 세계최초로 커피믹스를 출시하였고, 이것이 1980년대 와서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그 유명한 맥심(우리 말고) 커피가 탄생한 것이다.

맥심코리아

press@maxim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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