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온 힘을 다해 답을 찾고 있는 우리.

조회수 2020. 4. 30. 16: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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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죠.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린듯

재앙과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무탈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애쓴 사람들의 덕분아닐까요?

오늘은 이 혼란 속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이들을 소개합니다.


대구, 봄

권윤수

기자, 대구Mbc 보도국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어떤 일을 맡았나요?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 환자가 발생했을 때부터 대구 시내 환자 발생 현황과 추이, 역학조사 결과, 방역 대책, 방역의 문제점 등을 취재했습니다. 대구시가 매일 환자 발생 현황과 역학조사 결과에 대해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했고 매일 브리핑 룸에 들어가 궁금한 점을 질의 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확진 환자가 집중된 2월 말과 3월 초에는 생중계도 많았고, 전국에 방송되는 <MBC뉴스데스크>에서 대구를 연결하면 코로 나19 관련 대구 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취재를 준비하며 절망을 느꼈을 때와 반면에 희망이 보였을 때가 궁금합니다.

선명히 기억나요. 2월 29일. 권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전일 대비 741명이 증가했다는 발표를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탄식이 튀어나왔어요. 대구에서 코로나 19 환자가 2천 명을 넘긴 순간이었어요.


대구 시내 병원에는 더 이상 병상이 없어 아주 힘든 상황이었죠. 하지만 다른 지자체에서 흔쾌히 병상을 내어주는 것을 보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의료진도 부족했는데 가족들의 만류와 두려움을 무릅쓰고 달려와준 타 지역 의료진을 봤을 때도 희망이 생겨났어요.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대구의 현장에서 매일 취재할 때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두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전국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이다 보니 대구를 막연히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발생했기에 가족 혹은 직장 동료가 신천지 교인이 아니라면 감염될 가능성은 낮으니까요.


하지만 대구의료원 선별진료소 바로 앞에서 생중계할 때는 잠시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했죠. 방송하는 동안에도 기침하는 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업혀 선별진료소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변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삶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겠네요.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으로 인해 ‘만남’이 많이 줄었어요. 친구, 동료와의 만남은 물론이고, 취재 활동에 필요한 사회적 교류도 많이 줄었구요. 


코로나 19 취재를 시작하면서 업무가 많아졌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초기에는 야간 취재나 새벽 취재도 잦았거든요. 뉴스 시간에 생방송 연결을 하루에 네다섯 번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웃음)


혐오의 바이러스

성지예

전략 컨설턴트, Human Rights Foundation

현재 네덜란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2017년에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에서 사회과학기술학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석사 학위를 따고 구직 비자를 받은 후 현재 인권 단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두 가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북한 내 정보 유입을 위한 캠페인에 관한 것이며 두 번째는 매년 오슬로, 타이베이, 뉴욕,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인권 콘퍼런스 시리즈인 오슬로 자유 포럼(Oslo Freedom Forum)의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죠.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해외에서는 사재기도 심각하다고요.

네덜란드는 사스나 메르스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고, 정부의 대응 방침이 한국보다 느슨한 편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면역력이 떨어 지는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죠.


3월 중순부터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장했는데 사람들이 이를 잘 지키지 않아 3월 27일부터 벌금을 부과하고 있어요. 3월 초부터 손세정제나 마스크, 소독용 알코올, 파스타, 밀가루와 휴지의 사재기가 심해요. 도시와 마트마다 상황이 다른 것 같은데, 지난주 큰 마트에 갔을 때는 휴지를 제외한 모든 상품이 넉넉했어요. 주요 장보기 배달 서비스들은 3주 후까지 예약이 끝난 상황이고요.


반면, 장보기가 힘든 이웃을 위해 장 대신 봐주기, 도매상들이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이미 구매한 식재료 나눠 주기, 이웃인 농부를 대신해 상품을 SNS에 홍보 해주기, 그리고 이웃과 안부 교환하기 등의 마음 따뜻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또한 정부는 프리랜서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 대한 생활 보조금 지급 등의 대책을 빨리 마련한 편이에요.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이 이전에 비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발언, 행동, 폭력을더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마치 마녀사냥처럼 ‘너희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 같은 말도 안되는 논리로 말이죠.


인종차별로 인한 여러 사건은 코로나19가 유럽에서 발생하기 전부터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구실 삼은 것뿐이에요. 차별주의자에게 논리적인 이유는 없어요. 실제로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면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탓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인종차별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이런 현상은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심해진 인종차별 피해에 대해 SNS에 알리셨죠?

2월 말 저녁 10시 30분쯤 운동 수업이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스쿠터를 탄 20대 남성 둘 중 뒤에 앉은 사람이 저를 보고 ‘중국인’ 이라 외치며 내 머리에 주먹을 날렸어요. 잘 피했고 늦은 시간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집에 최대한 빨리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 사건을 SNS에 공개한 후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많은 친구들이 괜찮느냐며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그리고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자신이 겪은 사건이나 주변의 다른 아시아인이 겪은 사건을 공유해주었죠.


이런 메시지와 수백 개의 긍정적인 댓글을 보니 공론화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흑인에 대한 차별 반대 운동을 시작한 활동가,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아시아인들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중국계 네덜란드인 등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싶다고 연락해왔어요.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이렇게 공론화한 이유가 있나요? 

최근까지 많은 아시아인이 차별을 겪으면 피해자로 보이기 싫고, 말하더라도 이해받지 못해서 참았어요. 그런데 말이 한번 트이니 공론화가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우선 내부적으로는 우리끼리 고충을 나누자는 취지였에서 시작했죠. 외부적으로는 공론화를 통해 네덜란드 사람들이 현재 알고 있는 인종차별의 범주에 아시아인도 들어가게끔 하고자 했습니다.


인종차별은 흑인이나 아랍계 이민자만 겪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주변에 아시아인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또한 아시아인은 쉬운 타깃으로 인식되곤 하죠. 이런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들은 네덜란드 친구들이 이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본 후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하게 되었어요.

지금의 행동들이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네덜란드에서는 각종 반차별 법안들이 존재해요.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는 오래 걸리고, 이제까지 아시아인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적어서 변화가 더 느렸던 것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던 친구들이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배우며 변해가는 모습을 봤어요. SNS에 관련 글을 올리면 나 대신 악플러들과 싸워 주고 화내며 우리나라에서 차별을 겪어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고,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물론 어딜 가나 차별주의자는 존재하지만, 아시아인을 놀리는 게 ‘쿨하다’고 여기는 차별주 의자들에게 실제로는 ‘쿨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을 심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기록

이학경

유튜버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곳으로 알려진 중국 우한에 거주했는데, 당시 감염의 위험성을 예상했나요?

당시 우한의 한 의류 관련 회사에 다녔어요. 지난해 12월부터 주변에서 독감이 유행하는 것 같다는 말이 들리긴 했지만 지나가듯 가볍게 생각했죠. 크리스마스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1월 중순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죽은 사람을 넣어둔 자루가 병원에 가득한 영상이 돌았고, 머지않아 뉴스에서 우한을 봉쇄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새해 휴가가 1월 24일부터여서 25일에 한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휴가가 23일부터로 당겨졌고 그날부터 통제를 시작해 한국으로 갈 수 없게 되었죠.

다행히 한국 정부에서 보낸 전세기를 타고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요. 

우한 교민들의 아산 격리소 입소는 주요 뉴스이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감사한 부분이에요. 우한 총영사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회사 차량이 집에서 집결지까지 데려다주고, 이후 총영사관에서 준비해둔 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고, 전세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 아산 격리소로 가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검사하고 격리소로 옮겨지기까지 모든 과정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주었고, 무엇보다 모두가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네거나 배려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줬죠. 그날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아산에서 격리하는 기간 동안 영상을 찍어 ‘자가격리 브이로그’를 올린 게 큰 화제였는데요. ‘살다 살다 격리 브이로그를 보고 있다니’, ‘누군가 할 줄 알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어요.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들은 대단한 뜻이 있다기보다는 나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해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자가격리 브이로그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까 싶어 기록해놓고 싶은 마음에 만든 거에요.


코로나19 관련 영상을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지킨 원칙이 있다면, 절대 자극적이고 민감한 부분은 담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모두가 별것 아닌 영상 하나에도 공포에 떨거나 과장된 소문이 양산될 수 있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격리 시설에 관한 정보 전달이나 격리 생활을 담은 영상이 대부분이에요. 사태에 관한 정확한 내용은 뉴스에서 접하고, 내 영상에선 ‘격리 시설에서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느낄 정도의 내용만 전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부모님 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자가 격리를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영상에서 언박싱을 했던 구호 키트 그리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받은 간식들. 식사 말고도 매일 과일, 과자, 빵 등 간식이 나와서 격리 중인데도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세심한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어요. 살찌기 싫어서 격하게 운동을 할 정도로요.

마지막으로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받은 사람으로서 총영사관을 포함해 격리 시설 담당자, 의료진, 응원의 메시 지를 보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분들의 노고를 잘 알기 때문에 확진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 무사히 잘 이겨내길 바랍니다.


작은 힘이 모여

오성훈

간호사, 널스노트 대표

의료봉사를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금세 진정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하루에 확진자가 1천명 이상씩 느는 것을 보고 심각한 상황으로 느꼈죠. 의료진이 힘들어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현재 간호사의 업무와 상황을 대변하는 SNS와 간호사 업무를 돕는 앱을 운영 중인데, 처음에는 콘텐츠로 간호사 업무에 공감하고 위로를 전하려 했지만 직접 겪은 상황이 아니어서 이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의료진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리고 싶었고,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공론화해 지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코로나19 병동에서 간호사의 업무는 무엇인가요?

우선 활력 징후를 측정해요. 환자들의 혈압과 체온, 맥박, 산소포화도 등 인체 대사를 측정하는 것인데 환자들의 상태가 일정하지 않고 모든 환자가 일관된 증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활력 징후 측정이 중요해요. 의사와 환자 증상에 관해 정보를 주고받고, 주사나 투약, 환자 이송을 돕기도 합니다.

방호복을 입고 활동하면 에너지 소모가 훨씬 클 것 같아요. 

방호복을 입고 실제로 근무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우선 방호복을 입으면 열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어 20분 만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요. 얼굴만 노출되어 있는데 마스크와 고글을 쓰기 때문에 고글 안에 습기가 차고 땀방울이 눈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따가워요. 눈을 만질 수도 없죠.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두통이 생기거나 토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너무 힘들어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두고 갈 수 없으니 버텨야하죠.


초기에는 후원받은 의료 물품이 많다 보니 불량 제품도 있었어요. 고글이 이마를 찌르기도 하고 방호복을 입고 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모서리에 옷이 찢길 때도 있고 특히 벗을 때가 위험해요.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디에 묻어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만큼 감염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많은 의료진이 조금이라도 열이 나거나 몸이 좋지 않으면 혹시 감염된 게 아닌지 불안했어요. 육체적 피로는 참고 견디면 되는데 이런 불안감이 의료진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내가 감염되면 내가 돌보는 환자와 가족, 동료 의료진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의료봉사 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청도 대남병원에 갔을 때 환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고 기피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빨리 일을 처리하고 상황이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환자들의 순수한 진심이 느껴졌어요.


젊었을 때 무슨 일을 했는지, 평소에 뭘 할 때 행복한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게 무엇 인지, 대화를 많이 했어요. 농부였던 분도 있고, 벽돌 나르는 일을 하던 분도 있었어요. 한용운과 김소월의 시를 좋아하는 분도, 일기를 쓰는 분도 있었죠. 일기장을 보물 처럼 아끼던 분은 이송되면서 감염 위험 때문에 일기장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에 너무 속상해했던 기억이나요.


그곳에 있는 모든 분이 사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이송되면서 의료진에게 계속 감사 인사를 전했고 격려도 해줬어요. 비록 청도 대남병원에 일주일 밖에 있지 않았지만 환자 들과 주고받은 사소한 대화가 많은 감정을 안겨주었죠. 그리고 많은 분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어요.


바이러스의 최전선에서

서해숙

역학조사관, 서울특별시 서북병원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역학조사관이라는 직업이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요. 감염병이 발병하면 역학조사관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평상시에는 서울특별시 서북 병원에서 감염관리실장으로 일하며 호흡기 환자, 그중에서도 난치성 결핵 환자를 주로 진료해요. 코로나바이 러스와 결핵은 법정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어요.


2015년 메르스 진료 병원의 핫라인으로 서울시와 공조해 역학조사관으로서 수십 명의 노출자를 격리 및 진료하는 총괄 실무를 맡았어요. 내이런 경력을 알고 있던 서울시의 추천으로 1월 28일부터 역학조사관으로 합류했습니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의 원인과 특성을 찾아내고, 발생과 전염 경로를 파악해 유행을 막을 방법을 찾아내요. 역학조사의 첫 단계는 유행 여부를 판단하고 그 규모를 측정하는 것이죠. 유행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을 해요. 코로나19처럼 증상 발생 이후 감염력이 생기는 경우에는 접촉자를 적극적으로 파악해 감시하거나 밀접 접촉자를 격리 조치해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요. 확진자의 동선별 접촉자를 확인해 방역 관리 대상자로 선정하고, 확진자의 동선에 소독을 시행해 추가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현장에서 감염경로를 추적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하다.

확진자가 발생한 자치구 보건소에 상황실을 마련해요. 확진자는 이미 병원에 격리된 상황이므로 해당 병원에 직접 찾아가 증상 발생 하루 전부터 행적을 파악합니다. 이를 위해 신용카드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 평원)의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휴대폰 사용 내역 등의 GPS를 활용하죠.


이후에는 CCTV를 보고 확진자가 거쳐간 지역사회 현장이나 병원에 방문해 접촉 자의 범위나 일정 기간 폐쇄 여부를 결정해요. 보건소 방역팀의 환경 소독 일자도 이어 결정됩니다. 어떤 점에서 수사관 업무와 닮았어요. 감염 진단 검사가 필요한지 판별하는 일도 합니다.

기준이 모호해 판단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우한 지역이 포함된 후베이성에서 입국한 내국인이나 중국인이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역학보고서를 보고 판별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어요. 연령, 거쳐온 국가나 도시, 증상 유무, 잠복 추정 기간, 기저 질환 여부 등을 꼼꼼히 살펴야 했는데, 단 한 명이라도 놓칠 경우 확진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부담감이 무척 컸죠.


발생 초반에는 보건소의 선별진료소를 방문한 사람들의 검사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새벽에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흔했어요.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 역학조사서가 도착할지 예측할 수 없어 식사할 때도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지요. 무증상일지라도 확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보건소에서 하루 2회, 전화로 발열을 체크하는 능동감시 대상자로 지정하라고 일러두었어요. 이것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하자는 나의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감염 현장에 찾아가고 확진자와 접촉 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방역에서 세계 최고의 시스템과 물자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해요. 환자를 돌볼 때는 방호복과 고글, N95 마스크, 글러브 2개를 착용하고, 수시로 손을 소독해 대비합니다. 지금은 한 달이상 확진자를 회진하면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어요.

혹자는 코로나19가 시작일 뿐이라고 말하는데요. 바이러스에 맞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을까요?



5천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독감이나 7천5백만 명이 사망한 흑사병과 같이 인류는 감염병과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어요. 수습할 방책을 겨우 마련해놓으면 또 다른 감염병이 엄습했는데 이제는 그 주기가 더욱 짧아졌습니다


특히 변이가 쉬운 바이러스는 매번 다른 모습으로 인류를 찾아오고 인류는 처음 겪는 감염병이다 보니 그 실체를 파악해는 데 시간이 걸려 초반에는 고전할 수밖에 없어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이런 감염병의 원인으로 꼽곤 하죠. 바이러스의 확산에는 비행기처럼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교통 수단도 한몫하고 있어 한 나라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의 문제가 됩니다. 인류의 무자비한 환경 파괴에 보다 많은 사람이 경각심을 가져야 해요.

코로나19를 겪는 모든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현대인의 삶은 때때로 지극히 이기적이죠. 하지만 메르스 때와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증명되었어요. 타인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역을 스쳐 지나간 사람이 내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셈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나노미터의 미생물을 통해 비로소 내 옆의 사람들을 의식하기 시작했어요. 다만 코로나 19는 확진자 주변 1.5~2m 이내의 사정거리에 들어온 접촉자라도 마스크를 잘 쓰고 바이러스로 오염된 손을잘 씻는다면 감염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금주와 금연, 환기, 구강위생 관리가 필요하고, 매일 따뜻한 물을 2L 이상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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