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라서 다행이야! 페이크 퍼 전성시대

조회수 2018. 12. 14. 18: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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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고 비싼 리얼 퍼는 싫어요.

부티 나는 겨울 패션의 대명사이던 모피 코트가 외면받고 있다. 대세는 단연 페이크 퍼. 진짜가 아니라서 더 개념 있고, 더 시크한 가짜 이야기.

남의 털을 뺏어 입지 마!

한때 청담동 며느리의 예단 필수 품목이던 모피 코트. 부와 지위를 상징하던 모피가 이제 패션계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사실 모피 반대 운동이 시작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1년, 모피 반대 연합 회원이기도 한 스텔라 매카트니는 일찌감치 동물 보호를 내세워 리얼 모피를 쓰지 않겠다며 ‘깬’ 선언을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들만의 리그 정도로 취급했을 뿐. 패션 위크 쇼장 밖에서 모피 반대 시위대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콧대 높은 디자이너들은 이를 해프닝쯤으로 여기곤 했다. 


대세가 바뀐 건 정보 공유가 활발해진 인터넷 세상이 도래하면서부터다. 동물 구조 단체는 밍크와 라쿤 등 살아 있는 동물의 털을 산 채로 벗기는(아마 당신도 한 번쯤 봤음 직한) 모피 제작 영상을 웹상에 널리 퍼뜨렸고, 이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패션이란 이름으로 동물의 생명을 잔인하게 앗아가는 미친 짓을 멈추자는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비롯해 랄프 로렌, 베르사체, 버버리 등 많은 유명 브랜드가 동물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런던 패션 위크는 2019년 S/S 시즌부터 모피 제품을 금지하는 강수를 뒀고, 명품 브랜드 편집매장 네타포르테도 모피 아이템 취급을 중단했다. 결정타를 날린 건 요즘 최고 주가를 기록 중인 구찌의 모피 중단 선언이었다! 불과 몇 년 전, 발뒤꿈치에 캥거루 털을 단 블로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구찌의 CEO 마르코 비차리는 “2018년 S/S 컬렉션부터 모피 소재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밍크, 코요테, 너구리, 여우는 물론 토끼, 페르시안 양모 등도 금지되며, 현재 남아 있는 모피 의상은 모두 자선 경매에 부친다는 계획.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페이크’

그렇다고 스타일에 죽고 사는 디자이너들이 퍼 패션을 아예 포기한 건 아니다. 이들에게는 ‘페이크 퍼’라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있다. 사실 모피를 반대하는 흐름은 페이크 퍼 원단의 품질이 급격히 발전한 것과 관련이 크다. 1990년대 페이크 퍼는 폴리에스테르 합성 천에 털을 본드로 붙여 엉성

하기 짝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모직과 비슷한 아크릴 소재에 실로 꿰매 리얼퍼와 거의 흡사한 느낌이 난다. 


털이 빠지거나 뻣뻣할 것 같다는 건 선입견일뿐, 털 가공법이 발달하면서 만졌을 때도 진짜로 착각할 만큼 부드럽고 매끈한 촉감을 재현했다. 긴 털, 짧은 털, 양털 등 다양한 길이는 물론 컬러도 무궁무진해 다양한 스타일을 표현하기에도 적합하다. 모델 L 씨는 “요즘 리얼 밍크는 성숙해 보여서 피하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영하고 빈티지한 느낌의 페이크 퍼를 더 선호한다”며 “페이크 퍼를 입으면 스스로 의식 있는 소비자라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고백하기도. 


격이 저렴하고 관리하기 간편하다는 것도 페이크 퍼의 장점. 구입한 후 처음에만 드라이클리닝하고, 이후에 물세탁을 해도 좋다. 단, 페이크 퍼의 주 소재인 아크릴은 햇빛에 말리면 색이 바래므로 세탁 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 털이 엉키거나 눌린 부분은 손으로 가볍게 턴 후 브러시로 살살 빗어주면 금세 원래 형태로 돌아온다.

왜 한국에서만 모피 판매가 늘어나는 걸까?

이렇게 훌륭한 대체제가 나타났음에도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함께 모피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중 하나다. 중국에서 값싼 모피가 수입되고 모피 원피 가격이 떨어지면서 젊은 층이 즐겨 입기 시작했기 때문. 실제로 S백화점의 모피 매출은 한동안 하락세를 보이다가 다시 상승세를 타는 중. 2015년 -11% 감소한 모피 매출은 2017년 17% 상승했고, 2018년 상반기에는 24.9%까지 치솟았다. 가격이 낮아지자 패딩을 선호하던 20~30대 고객이 모피로 옮겨갔다는 분석이다. 


롱 패딩을 비롯해 장식용 털을 단 방한 의류가 인기를 끌면서 오히려 모피를 쓰지 않은 외투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도 한몫했다. 정작 모피 코트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모자 끝에 모피를 덧댄 ‘퍼 트리밍’ 제품에는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6년 254억 달러까지 떨어진 모피 수입량이 지난해 279억 달러로 증가세를 나타냈다. 혹한에 예뻐 보이려는 가벼운 심리가 더해지면서 한국을 마지막 모피 천국으로 만든 셈이다.

미국 LA시도 모피 판매 금지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모피 추방 물결은 이어진다. 지난 9월 18일, LA시의회는 투표 결과 만장일치로 모피 판매 금지 조례를 추진하기로 했다. 금지 대상에는 모피 의류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쓰인 핸드백, 신발, 모자, 귀마개, 열쇠고리 등 액세서리도 포함한다. 단, 중고 제품과 종교적 목적의 모피는 예외. 


이미 노르웨이와 네델란드, 미국 웨스트할리우드와 샌프란시스코 등이 모피 판매 금지를 선언한 바 있는데, 규모로 보면 LA가 가장 큰 도시다. 밥 블루멘필드 시의원은 “2018년에는 모피를 입을 이유가 전혀 없다. 화창한 LA에선 특히 그렇다”라고 말하며, 뉴욕 등 더 많은 도시가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조례는 최종 승인 후 2년 후에 실시되므로 내후년부터는 LA에서 신상 모피를 구경할 일이 없어진 셈.

윤리적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원칙

모자 끝에 달린 털은 심지어 보온 효과도 없다. 하지만 동물은 털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패션은 다음 법칙을 지킬 때 완성된다.


01 두 번 보자, 퍼 트리밍

모자나 옷깃, 소매에 달린 퍼 소재를 반드시 확인한다. 고작 후드만 장식하는 데에도 한 마리 이상의 라쿤이 희생된다. 라벨에 아크릴이라고 쓰여 있다면 페이크 퍼이므로 안심해도 된다.


02 모피 판매 중단 요청하기

평소 자주 구매하는 의류 브랜드나 쇼핑몰이 있다면 고객 상담 센터나 게시판을 통해 모피 의류를 판매하지 말라고 요구하자. 반대하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져야 모피 수입도 줄어든다.


03 구스다운도 예외는 아니다

보온성이 탁월해 사랑받는 구스다운 또한 잔인한 동물 학대의 결과물이다. 패딩 한 벌을 채우려면 최소 20마리의 거위가 필요한데, 이들은 산 채로 온몸에 피가 나고 살이 찢어질 때까지 털이 뽑힌다. 서너 차례 털을 뽑으면 죽을 만큼 그 쇼크는 엄청나다.


04 고양이 장난감, 액세서리도 주의하라

가방 장식이나 열쇠고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퍼 장식은 물론 고양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조차 고양이 모피를 사용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발표됐다. 동물권 단체 케어(Care)와 이정미 의원에 따르면 국내에 수입·유통된 모피 제품 14개를 회수해 조사한 결과 3개 제품에서 고양이 유전자가 발견되었다고. 카라가 중국 현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보통 개는 늑대나 라쿤으로, 고양이는 토끼털로 속여 국내에 판매하는 것으로 유추한다. 따라서 소재를 알 수 없는 제품이라면 절대 구매나 사용을 삼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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