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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느리게 이어갈, 그들의 음악여행

조회수 2020. 11. 11. 16: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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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

휴식을 위해,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한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때로 온전히 홀로 보낼 수있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여행을 바라는 모든 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사연으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거나 KTX 시간표를 눈여겨보며 꿈같은 여정을 기대한다.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조차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해결된 후 여건만 주어진다면 곧장 어딘가로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사람들은 어째서 여행을 좋아할까. 


김영하 작가의 저서 ‘여행의 이유’ 에 담긴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라는 문장을 인용해 답을 구해보자면, 결국 아무리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해도 그 긴 여행의 끝에 우리는 최종 종착지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잠깐의 부재일 뿐 영원한 단절은 아니라는 점에서 여행은 넓게 보자면 일상의 일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삼킬 듯 울어대는 논밭의 풀벌레 소리, 깊은 새벽 밤새 내리는 빗소리, 계곡을 따라 유영하는 물소리 위로 잔잔하게 흐르는 담백한 목소리의 노랫말이 불러오는 향토적인 그리 움. 여행스케치의 대표곡 ‘별이 진다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조미료 없이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레 요리한 따뜻한 집밥 같다. 대표곡이 이뿐만이랴. 


향수,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 달팽이와 해바라기, 왠지 느낌이 좋아 등… 세기말의 혼란을 딛고 안온한 일상을 향해 분주히 걸어온 우리라는 이름의 모든 사람들에게 여행스케치는 주옥같은 노래로 어제의 나를 격려하고 오늘 하루를 용기 내어 살아갈 때 마침내 기대할 수 있는 내일을 선물했 다. 1989년 열한 명의 남녀 혼성 포크팀으로 데뷔해 현재는 루카, 남준봉 2인으로 활동하는 두 사람은 여전히 삶이라는 멋진 여행에 대한 소박한 감사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올해초 JTBC ‘슈가맨 3’ 방송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시 만난 데뷔 때 함께했던 원년멤버들과 30주년 기념 콘서트와 디지털 싱글 발매를 준비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찬 시간을 보내던 차에 콘서트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 취소해야 했지만, 방송을 계기로 멀리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해도 가끔이나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임을 확인하던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이 이어졌기에 음악을 향한 또 다른 여행길에 오른 것 마냥 설렌다는 두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남준봉 : 공식적인 일정은 대부분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고 있어요. 실은 오늘도 올 초에 슈가맨 방송을 함께했던 여행스케치의 원년멤버들과 30주년 기념 콘서트의 합을 맞추기 위해 연습실을 대여했는데, 콘서트의 잠정적인 연기가 방금 막 결정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공연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라 다들 여러모로 힘든 시기죠.

루카 : 슈가맨 방송 출연 후 저희를 찾는 섭외 전화가 쏟아졌어요. 당시 출연했던 멤버 구성으로 활동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 저희끼리 슈가팀이라는 가칭으로 부르며 결의를 다지던 중이었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열심히 준비했던 공연 일정의 거의 대부분이 취소되었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많이 아쉽습니다.


30주년 기념으로 발매될 디지털 싱글은 어떤 곡인가요?


루카 : 제목은 ‘손끝 무지개’에요. 변함없이 같은 모습인 무지개와 달리 어릴 때, 청년이 되어서, 노후에 느끼는 무지개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시각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 변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목가적으로 회고하는 곡인데, 가을이 어울릴 것 같아 아마 올해 10월 초 가을 무렵에 발매하게 될 것 같습니다.


최근 라이브 공연 취소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언택트 공연의 비중이 커졌는데, 여행스케치도 언택트 공연을 하고 있나요?


남준봉 : 얼마 전에는 서울시향과 협연을 했었고 신한카드 비대면 콘서트에도 참가했었어요.

루카 : 신한카드에서 주최하는 ‘갓창력라이브’는 지금도 하고 있어요. 언택트로나마 이렇게 사람들을 뵙고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온기를 느끼며 연주하는 것만큼 가슴을 울리지는 못하더라고요. 앞으로는 공연장이나 지자체에서 서로가 대면하고도 안전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방안과 대책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 음악스케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어떤 경험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서울시향과의 공연, 어땠나요?


루카 : 박인영 음악감독님의 편곡을 주축으로 여행스케치의 음악이 다른 옷을 입어볼 수 있었던 새로운 시도였어요.

남준봉 : 평소 연주할 때는 못 느껴 봤던 새로운 경험이었죠. 건반으로 연주하는 스트링 소리가 아니라 현악기가 실제로 연주하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니까 노래를 하면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클래식 음악가 분들과 저희가 기대하는 요소들이 서로 잘 어우러진다면 협업을 통해 앞으로도 멋진 앨범이나 공연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스케치의 발매곡 중 두 분에게 각자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곡과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루카 : 한 곡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인체에 수많은 감각기관이 있듯이 여행스케치의 노래는 어떤 곡은 발의 역할을 하고, 어떤 곡은 눈의 역할을 하기에 백 여곡의 노래 하나하 나가 저에게 모두 소중하고 의미 있거든요.

남준봉 : 저도 비슷한 생각이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개인적으로 ‘별이 진다네’라는 곡에 가장 애착이 가요. 저희의 대표곡이며 저희를 대중에 가장 많이 알린 곡이기에 부르면서 늘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가장 어렵기도 한 곡이에요. 한 번은 30년 전에 부르던 것과 지금 부르는 걸 비교해서 들어보니 그사이 저에게 노래 부를 때의 이상한 습관 같은 게 생겼더라고요.


세월의 때가 묻었다고 할까… 그걸 깨닫고 나서는 이 곡을 부를 때만큼은 그때의 마음으로 가장 정직하고 순수하게 부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곡들은 중간에 박자를 변형하거나 편곡을 다르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때도 많지만, 별이 진다네 만큼은 처음 불렀던 느낌 그대로이고 싶어서요. 그래서 부를 때 가장 힘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음악인으로서의 저를 지켜주는 곡이기도 하죠.

저를 지켜주는 건 또 하나 있어요. 바로 팬분들인데요. 같은 팀으로 30년간 음악을 해오는 게실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중간에 멤버가 교체되기도 하는 등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하지만 저희에게 어떤 일이 있었건 여행스케치가 처음 팀으로 나왔을 때 청소년이던 팬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 아이가 생기고 가정을 꾸린 뒤에도 변함없이 저희를 찾아주시고 공연장에 오시는 건 저희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거든요. 그런 팬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정말 음악이란 걸 잘했구나 싶고, 우리를 지켜주는 힘이자 계속 음악을 하게 만드는 사명감 같은 걸 느껴요.

| 별이 뜬다네


여행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가본 곳 중에 좋았던 여행지를 소개해주세요.


루카 : 저는 20년 전부터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한국에 참산이 많은데, 유명한 산도 많지만 이름 없는 산도 많아요. 흔히들 동네 뒷산이라고 하잖아 요. 비록 개발이 덜 되었고 규모가 작다 해도 분명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유명 관광지도 분명 좋지만, 동네 여행도 꼭 해보신다면 관광지에서 느낄 수없었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실 거예요.

남준봉 : 나중에 형 죽으면 뇌 한번 열어 보고 싶어. 머릿속에 뭐가 들었나 몰라.


루카 : 제가 좀 엉뚱합니다.

남준봉 : 여행스케치 녹음여행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강원도 일대에 알려진 곳들과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들까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멤버들과 함께 소리 채집과 연습을 하러 갔던 변산반도 채석강이에요. 그곳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데 절벽 때문에 에코가 자연 스럽게 발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노래를 너무 잘하는 것처럼 들리고. 거기서 노래도 하고 녹음도 하는데 그 모든 순간이 어우러져서 참 멋있게 느껴졌어요.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좋았던 기억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멤버들과 함께했기에 더욱 의미 있었을 것 같아요.


남준봉 : 녹음여행 다니면서 네가 틀렸네 내가 틀렸네 하며 서로 다투기도 하고, 숙박시설도 변변치 않아서 허름한 민박집에 방 두 개 잡아서 남자 방 여자 방 이렇게 나눠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어디 이불이나 깨끗한가요. 눅눅하고 냄새나고. 티격태격하다가도 금세 모여서 연습하며 풀고, 소리 녹음하러 나가고. 그런 일상이 생활화되어 있었죠.

|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


현재 여행스케치의 고민은?


남준봉 : 일단은 경제적인 부분과 환경적인 요인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죠. 이번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것들이 한방에 무너졌는데 이런 상황이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잖아요. 많은 예술인들이 삶 자체가 불안정하니까. 난 계속 음악만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여러 가지 다른 환경적인 요인들을 슬기롭게 넘겨야 할 텐데라는 고민. 이런 어려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은게 항상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에요.

루카 : 준봉 아우가 이야기한 것처럼 환경적인 고민도 있고, 음악적으로는 저희가 지난 30년간 보여 드렸던 음악은 스케치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남은 30년 동안 어떤 채색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우리 음악에 대한 고민도 갖고 있습니다.

출처: 레전드매거진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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