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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 기타리스트는 누구?

한국 기타리스트 12지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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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테크니션 박창곤

장래희망 : 기타리스트


저희집 장롱 위에 기타가 한 대 놓여 있었어요. 아무도 연주하지 않아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죠. 중학교때 친구가 저희 집에 기타를 가지고 놀러왔어요. 단순한 코드 세 개 정도만 잡고 노래를 불렀는데 정말 자유로운 느낌이더라고요. 피아노로도 흉내 내기 어려운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을 이 작고 가벼운 악기로도 낼 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하잖아요. 저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 시간 쌓여 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장롱 위에서 기타를 꺼냈어요.


그때는 그저 기타를 연주하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이라는 기타리스트를 알게 되었죠. DJ가 그를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하는 데.. 아. 기타리스트도 직업이 될 수 있구나. 기타 연주만으로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또 제가 음악 듣는걸 어릴때부터 워낙 좋아했거든요. 학교 다닐때 버스타고 다니라고 받은 회수권을 모아서 LP판을 사고,대신 저는 걸어다녔어요. 하루에 왕복 두 시간을 꼬박 걸어다니면서한 달 가까이 회수권을 모아야 겨우 LP를 한 장 살 수 있었죠. 그렇게 하나 둘 LP를 모으며 다양한 음악을 듣다보니.. 아. 나도 음악을 만들고 싶다. LP에 내 음악을 싣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어요.


열일곱, 첫 번째 LP 음반을 발매하다


저의 밴드 역사는 10대때 시작되었어요. 당시 아웃사이더스라는 밴드가 있었어요. 프로그레시브 락을 하던 팀이 었죠. 열 일곱 살 때, 우연히 기회가 생겨 그 밴드에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죠. 다른 멤버 분들은 성인이고 사회인들이라서 다들 바빠서 곡을 따로 녹음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합주하는 걸 몰래 녹음해서 락 웨이브 라는 콘테스트에 신청해봤는데, 그 녹음본으로 콘테스트에서 2등을 한 거예요. 그렇게 입상해서 옴니버스 앨범 인 ‘93 Rock Wave’에 저희 곡인 ‘Ronnie’s Song’이 실리게 됐어요. 당시 제 또래중에 LP로 음악을 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저에게는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죠.


조지 마리노와의 작업기 :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2008년에 발매한 저의 EP 앨범 ‘My Dreams’는 지 금은 고인이 된 마스터링 엔지니어 조지 마리노(George Marino)와 작업했어요. 그분은 거의 30년 동안 마스터링 작업을 하셔서 어떤 경지에 도달하셨던 분이에요. 제가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의 사운드를 굉장히 동경했는데 그분이 조의 앨범도 작업하셨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해외에 작업을 맡기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았어요. 외국 엔지니어들과 의사소통하는게 어렵기 때문이었죠. 언어만이 아니라 문화도 다르고, 표현 방법도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음악으로 소통하기로 결심했어요. 믿음이 있었어요. 그 분은 제 음악과 유사한 스타일의 음악들을 작업해 오셨기에 굳이 말 안해도 통할거라 생각했죠.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라고 단 한마디가 적힌 메일로 보내고 결과물을 기다렸어요. 그가 보내 줄 결과물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단 한번의 수정도 없이 ‘MyDreams’가 탄생했습니다.

가장 아끼는 노래 : The winter


‘My Dreams’에 수록된 The winter. 그 노래를 가장 아껴요. 강원도에 다녀오면서 터널을 지날 때 느낀 악상을 모티브로 작업한 곡이예요. 기타가 운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기타라는 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뉘앙스가, 메이저보다는 마이너적인 성향을 많이 갖고 있어 한이 서리고 울부 짖는 소리를 표현할 때 탁월한 것 같아요. The winter에는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울부짖는 감정들이 많이 담겨있어요.


딸과 함께 만든 노래 : Beautiful World


기타 연주곡들 중 유명한 곡들은 대부분 마이너적인 곡이에요. 게리 무어(Gary Moore)와 잉베이 맘스틴 (Yngwie Malmsteen)의 발라드는 대부분 슬픈 멜로디잖아요. 그래서인지 기타 연주곡은 라이브를 할 때 상황과 장소에 따른 제약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크리스 임펠리테리(Chris Impellitteri)가 편곡한 Somewhere Over the Rainbow라는 곡은 메이저 연주곡 중 드물게 전 세계적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며 사랑받았죠. 저도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문득 Beautiful World의 악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 노래는 첫아이가 태어나는 기쁜 마음.. 말로 표현이 어려운 그 마음을 담은 곡이에요. 그리고 음식이 바뀌면 체질이 바뀌듯이 총각때와는 다르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니 음악도 밝게 바뀌더라고요. Beautiful World 도입부에 나오는 옹알이 소리는 제 아이가 낸 소리에요. 그걸 녹음하고 편집해서 곡에 그대로 담아냈죠. 이 노래는 아이와 함께 만든 곡인거예요. 예전에 제가 중국과 일본에 연주를 정말 많이 하러 다녔는데, 별명이 Mr. Rainbow 였어요. 무대에서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하도 많이 연주하다 보니 주변에서 저를 그렇게 부르더라고요(웃음). 실은 그게 저에게 콤플렉스였어요. 저를 대표하는 곡이 제 노래가 아닌, 남의 노래잖아요. 그런데, Beautiful World 를 발매한 이후에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를 예전만큼 많이 연주하지는 않아요. 나에게는 내 음악, Beautiful World가 있으니까!



전설의 무대 : Beethoven Symphony(Rock)


이승철 데뷔 25주년 서울 올림픽 공원 주경기장에서 한 공연이었죠. 큰 공연이다 보니 준비 기간도 길었고, 이승철씨가 완벽주의자라서 더욱 꼼꼼하게 준비했어요. 동일한 셋 리스트로 지방에서 2~3회 정도 공연을 하기도 했죠. 리허설 공연이라고도 해요. 연습실 리허설뿐 아니라, 무대 리허설까지 하는 건데.. 그만큼 꼼꼼하게 신경 쓴 공연이 었어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날은 리허설부터 뭔가 달 랐어요. 와이어리스가 끊길 정도로 거대한 무대 때문에 송신기를 무대 앞쪽으로 옮겨야 했죠. 공연할 때 모니터 가 끊기면 어떡하지? 이런 긴장감도 느꼈고, 그뿐만 아니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느낌이 있었어요.


무대에 올라 객석을 내려다보는데.. 가히 충격적이었어요. 4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한 번 호응을할때면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일렁일렁하는데.. 누가 경험이나 해봤겠어요. 러닝타임이 2시간 정도였는데 Beethoven Symphony 차례가 다가오자 부담감과 긴장감이 극에 달했죠.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솔로 연주를 하는 파트가 있었으니까요. 관객들이 가수도, 무대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 바라보는 순간이니까..


제가 선글라스를 항상 끼고 있는 이유는 연주를 할 때 눈을 자주 감기 때문이에요. 집중도도 훨씬 높아지고, 평정심을 가질 수 있죠. 그때도 눈을 감고 연주했어요. 방법이 그것뿐이었죠.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관객들의 호응과 그 일렁임이 거대하게 다가왔어요. 그런데 눈을 감고 오직 연주에만 집중하다 보니.. 공연이 끝났어요. ‘휴 끝났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죠.



잊을 수 없는 경험


공연하다가 줄이 끊어진 적이 있어요. 그런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데.. 하필 이승철씨와 처음으로 한 공연에서 줄이 끊어졌어요. 첫 곡으로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록으로 편곡해서 연주했는데, 제 차례에서 기타줄을 퉁기는 순간 탕-하면서 줄이 끊어진거예요. 하필 이승철씨 첫 공연에 첫 곡에… 속으로 ‘아. 이제 이승철씨와 더는 볼 일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일을 그냥 웃고 넘어가시더라고요.


그리고 올림픽 경기장 무대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요. 멤버와 서로 교차하면서 달려오다가 아주 좁은 난간에서 만났어요. 제가 양보를 해주려고하다 무대에서 떨어지고 말았죠. 워낙 순식간에일어난 일이라 전 제가 떨어진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재미있는건, 줄도 끊어지고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도 무의식적으로 연주를 했었대요. 앰뷸런스에 실려갔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요. 그것 말고도 몇 번의 추락사고가 있었는데, 다행히 부러진 적은 없어요. 제가 뼈가 튼튼한가봐요.


멋있는게 기억에 남아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네요.(웃음)


인생 앨범 : 무인도에 가져갈 최후의 다섯 장


제가 공부를 많이 안 해봤던 앨범을 가져가고 싶어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비틀즈(The Beatles), 그리고 음.. 앨범은 아니지만, 카르카시 교본을 가져가고 싶네요. 카르카시 교본은 이른바 클래식 교본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똑같은 책을 낭독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악센트가 다르고 호흡이 다른 것처럼, 기타도 마찬가지로 클래식 교본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연주하는 주법과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 소리와 느낌이 다양하게 나타나잖아요? 무인도에 갈 때 카르카시 교본을 가져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앨범도 가져갈 거예요. Guitar In Love 앨 범이요. 이 앨범을 가져가는 이유는, 감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예전에 발매한 앨범을 들어 보는게 커다란 공부가 된다는 이유에서죠. 내 앨범을 들으며 피드백을 해봐야 내가 뭐가 부족한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할지를 알 수 있겠 죠. 그런 이유에서요.


기타리스트의 자랑 : 악기


스윙 기타에서 출시한 시그니처 모델 ‘스윙 곤’이 국내 시그니쳐 기타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중 하나라고 알고 있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 모델이라서. 애착이 많이 가는 기타 중에 하나죠.


사실 악기를 소중히 다루거나 애지중지하는 편은 아니에요. 악기에 신경을 쓰다 보면, 연주에 집중하기보다는 악기의 스펙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부분들을 조금씩 버리게 되었어요. 내 손으로 소리를 내는 거니까 악기보다는 내 손과, 내 기술이 더 중요하다. 그런 생각인거죠. 다만 제가 기타를 여러 대 가지고 있는 이유는 상황과 곡에 알맞은 악기로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예요. 악기마다 표현할 수 있는 능력치는 모두 다르기때문에, 분위기에 맞게악기를 골라 쓰기위해 여러 종류를 갖고 있죠.


약간 이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의 시그니처 기타가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에요. 제가 실제로 사용하는 기타와 동일한 스펙을 담을거고, 양산 제작보다는 커스텀으로만 소량 제작하여 한정판매할 계획입니다. 제가 직접 인도네시아의 기타생산공장에 가서 품질을 검증한 뒤,기준을 통과한 악기만 출시할 예정이에요.


하루에 10시간, 3년


연습을 얼마나 해서 지금의 연주 실력을 갖게 되었냐고요? 비슷한 질문을 외국에서도 하도 많이 받아서, 정리해 둔 말이 있어요.


하루에 2~4시간씩 연습하면 실력이 유지가 될 것이다. 하루에 6~8시간씩 연습하면 실력이 아주 조금씩 향상될 것이다.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하면 너의 실력은 최고가 될 것이다.


저는 3년 정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시간씩 기타연습에 매진했어요. 물론 그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실력이 늘었죠. 지금은 하루에 적게는 4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씩 매일 연습하는데 실력이 눈에 띄게 늘기보다는 잃지 않고 유지하는 수준이에요. 대신 오랜 세월 꾸준히 음악을 하면서 표현하는 방법에 연륜이 생긴것 같아요. 어릴 때 연습하며 익혔던 것은 운동적인 감각들, 테크닉적인 감각들이었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쌓인 연륜인거죠. 뭐가 맞는지 틀린지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어떻게 하면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는지를 깨달아 가는 거예요.


열 시간 씩 연습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한 가지 기억 나는건, 하루를 쉬면 이틀을빼앗긴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쉬는 동안에 후퇴하는 느낌이라, 연습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다니던 학원이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밤 10시에 학원이 끝났는데,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 간에 매일같이 함께 하며 두 세달정도 지내다보니자연스럽게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학원에서 숙식도 해결하니, 더 많은 시간을 기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죠.


당시에는 젊어서 버틴 거 같기도 한데, 10시간씩 쉬지 않고 연습하다 보면 후유증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해요. 잘못하면 후유증으로 악기를 못 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줘요. 꼭 연습하는 중간중간 10분씩 휴식하라고요. 10시간 내내 연습만 하 다 보면 고요한 밤에 기타랑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박창곤의 스승


정말 많은 스승님들이 있죠. 그런데 제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LP 음반이에요. 학창시절 회수권을 한 장 두 장 모아서 들었던 음악들.. 아,비디오테이프도 한 몫 했네요. 어릴적에 저희 집이 가전제품 대리점을 해서 비디오테이프를 많이 봤어요. 저속 재생 기능으로 비디오 하나가 다 늘어나서 없어질 때까지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으며 곡을 카피했죠. 많이 봤던 비디오로는 조지 린치 (George Lynch), 폴 길버트(Paul Gilbert), 잉베이 맘스 틴(Yngwie Malmsteen), 비니 무어(Vinnie Moore)등이 있어요.


비니 무어가 한국에 왔을 때, 함께 연주한 게 기억나네요. 제가 에스코트를 하게 되어 함께 밥도먹고 술도 마시면서 친해졌어요. 저의 노래인 Winter의 멜로디가 기억에 남는다고 흥얼거리던게 생각나네요. 나중에 협업을 하기로 했는데, 그 후 한국에 안 오시네요(웃음)


기타리스트의 삶 : 현재와 미래


저는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재미있게 음악을 해왔던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짐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들어요. 내가 좀 더 잘 돼야 후배들도 바라 볼 언덕이 생기고 희망이 생길테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질 때도 있어요.


한국에서 기타리스트로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죠. 다행히 멜로디를 다루는 악기이기 때문에 작곡을 할 수 있어서, 프로듀서나 작곡가를 겸해야 생업에 도움이 돼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비주류 음악을 하는 밴드의 멤버들은 직업을 두 개, 세 개씩 갖고 있어요. 직장인밴드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다가 곡이 많이 유명해지면 직업이 바뀔 수도 있는거고요. 실제로 그런 사례들도 많잖아요.


기타리스트의 삶이라… 슬프죠. 직업군에 기타리스트라고 쓰면 이게 직업이 되나…? 이런 시선이 있어요. 아이들이 어리니까 학교에서 아버지의 직업란에 ‘기타리스트’라 고 쓰면 선생님들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해요. 그러다가 ‘이승철 밴드에요’ 라고 말하면 ‘오~ 이승철 밴드!’하면 서 알아 들으시는거예요.


어디 가서 ‘저는 기타리스트 입니다’라고 하면 ‘아 기타 리스트시구나 그러면 녹음도 하고, 작곡도 하고, 공연도 하고, 방송도 하고 그러시겠어요’ 라고 대략적이나마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이해하기 보다는 ‘저 그럼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세요?’ ‘한달에 수입은 얼마나 돼요?’ 대부분 이런 질문들을 먼저 해요. 그런게 슬프다는 거예요.

다른 삶을 산다면


음… 기타리스트가 아니라면 뭘 하고 있었겠냐고요? 여행도 좋아하고, 요리에도 관심이 있지만 사실 가장 하고 싶은건 운동선수에요. 제가 운동을 잘 해서가 아니라,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면 세계 최고인 줄 알았거든요. 중학교 때 라디오에서 잉위 맘스틴을 ‘세계 최고의 기타리 스트’라고 소개하는걸 못 들었다면,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게 소원이지 않았을까요?


아티스트에 대한 정의


모든 것이 무아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이루어지는 완성품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어떤 형태의 예술을 지향하건 우리 모두는 아티스트를 꿈꾸죠. 제가 생각하는 아티스트란… 예술을 갈망하고 이를 향해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영감의 원천


일상생활에서 받는 편이에요. Winter의 악상이 떠올랐 을 때와 마찬가지죠. 걷거나, 운동하거나, 드라이브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죠. 이따금씩 잠결에 엄청난 악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한때 휴대용 녹음기를 늘 곁에 두고 살았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에 흥얼거리며 녹음을 하고 다시 잠들어요. 막상 다음날 일어나서 들어보면 별것도 아니더라구요(웃음). 가장 난감할 때가 사람들 많은데서 생각 날 때, 그럼 전화받는 척하면서 흥얼흥얼 녹음하죠.


어떤 프로젝트가 있으면 완성될 때까지 계속 머릿속에 떠올리며 생활해요. 그래야 완성이 되더라고요. 신경을 안 쓰면 아예 프로젝트 자체가 날아가 버리죠. 만약 내가 연습하는 곡이 있다면 늘 완벽하게 연주할 때까지 계속 그 곡에 대해서 생각하고요. 머릿속으로 계속 멜로디를 떠올 리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돼요.


앞으로의 계획


제작해두고 발매를 하지 않은 곡들이 있는데, 그 곡들을 발매할 계획이에요. 또 올해 10월부터 이승철씨와 투어를 계획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저에게 맞는 보컬톤을 계속해서 찾고 있어요. 음역대도 찾고, 저에게 맞는 스케일도 찾고있죠. 언젠가 가사에 메시지를 담은 저의 자작곡을 직접 노래해 보고싶네요.


음악으로 나누고 싶은 것


일단 음악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사람들도 좋아하니까,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그게 전부인 것같아요. 더 이상 다른게 있을까요? 기쁨을주고,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많은 분들에게 들려드리는 것이 제 몫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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