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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모두가 다 아는 그 노래의 원곡자

전 세계가 사랑으로 부르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그, 김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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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음악이 가진 힘과 의미에 대하여
김 광 진

편안한 음색, 따뜻한 노랫말, 진지하고 묵직한 멜로디를 성숙하게 담아낸 그의 음악은 존재 자체만으로 밤의 등불 같은 위로가 된다.


‘마법의 성’과 ‘편지’ ‘동경소녀’ ‘진심’ 등 그는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진솔한 음악으로 20여 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우리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물해 왔다. 작곡가로서도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기억해줘’와 이승환의 ‘덩크슛’ ‘다만’ 등오래도록 남아 기억될 보석 같은 대중음악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여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자니 1994년 가요톱텐 무대에서 마법의 성을 들려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마지막으로 꿈이 뭐냐고 묻자, 전 세계가 사랑으로 부르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그였다.

근황


2017년 4월에 ‘김광진 지혜’ 앨범을 발매했어요. 드문드문 공연도 했었는데 최근에는 아시다시피 음악 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어요. 실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최근의 홍보 방식과 작업방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 상태에서 계속 음악을 하는게 맞는 걸까 싶고. 조금은 위축되어 있었죠.


뮤지컬 김광진


그러던 중 꿈 하나가 그림처럼 피어올랐어요. 저의 노래들로 구성된 뮤지컬을 한 편 만들어 보고 싶다는 거였죠. 스토리와 넘버를 모두 직접 구상하여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요. 시작과 끝은 정했는데 중간 과정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계속 고민하면서 수정 하고 있어요. 제 생각과 제 삶을 충분히 담아내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천천히 준비중이에요. 직접 출연하냐고요?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스토리와 음악에 대한 윤곽은 올해 조금 더 구체화될 것 같고요, 제작사도 구해야겠죠. 그래서 최근에 공부삼아 뮤지컬 영화와 음악 영화들을 많이 보고있어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7남매 중 막내아들로 자랐어요. 가족들 모두가 악기를 하나씩 다룰 줄 알았고, 3개월에 한 번씩 가족음악회를 하는 집안이었어요. 형님과 누나들의 연주를 보고 들으며 보낸 어린 시절은 음악적 소양을 키우기에 참 좋은 환경이었죠. 중학교 때는 팝 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빌리 조엘과 엘튼 존을 특히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유년기에 들었던 클래식 음악과 청소년기에 들었던 80년대 팝 뮤지션들의 영향 속 어딘가에 제 음악적 자아가 형성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연주했어요.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지만, 연주를 할 때면 바이올린의 선율이 제 몸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았죠. 그래서인지 가끔 제가 만드는 멜로디가 바이올린 솔로연주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본격적인 데뷔 – 작곡가 김광진


음악을 하는 게 꿈이었어요. 대학 재학 시절 모교에서 주최한 가요제에 참가하는 등 대학생활 내내 늘 음악에 관심이 있었어요. 언젠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 죠. 대학가요제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지기도 했고요. 그러다 대학 졸업 후 경영학 석사과정을 전공하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갔어요. 당시 그러니까 86년도에서 87년 무렵에 시중에 미디가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세션이 없어도 혼자 음악을 할 수 있는 장비 들과 소프트웨어가 보급될 때였어요.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홀로 미디 작업을 해 노래방 반주 비슷한 형태의 자작곡을 만들었 어요. 그러다가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았고, 미디로 편곡한 제 자작곡으로 이화여대 가요제에 출전했죠. 아내가 노래를 부르고, 제가 코러스를 한 그 노래로 가요 제에서 1등을 했어요. 그런데 1등을 한 뒤 가수 한동준 씨에게 전화가 왔어요. 제가 유학 가기 전에 치렀던 오디션 테이프를 우연히 보시고 음악이 마음에 들어 저를 눈여겨보셨지만 이미 유학을 떠난 후였던 거에요. 근데 이화여대 가요제에서 1등을 한 사람이그 사람인 것 같다며 연락처를 수소문해 저를 찾아낸 거죠. 그렇게 한동준 씨와 만났고, 저는 한동준 씨의 1집 타이틀 곡을 작곡 하면서 작곡가로 데뷔하게 됩니다. 곡 제목은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 만으로’.


곡을 만드는 과정


멜로디를 먼저 쓰고 가사를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멜로디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사 없이 멜로디 만으로도 감동을 주고 그 안에 독창성도 있어야 하죠. 기존에 자신이 쓴 곡을 답습하면 안되고, 흐름이 너무 어려우면 안 되고 너무 쉬워서도 안되고, 고정관념을 깨는 감각도 있어야 하죠. 곡을 쓰다 보면 멜로디 한 음표의 박자를 한 박에서 두 박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완성도가 달라질 때가 있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바꿔보려는 경향이 있어 요. 녹음을 하다가도 끝까지 조금씩 바꾸고, 심지어 노래를 녹음하는 날에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열어두고 있어요.

더 클래식 – 마법의 성

마법의 성은 제가 어릴 때 형님들과 누나들이 연주했던 클래식 음악과 즐겨 듣던 빌리 조엘 음악의 코드 진행, 그 밖에 청소년기에 즐겨 듣던 팝 음악들이 총집합돼서 탄생한 음악 같아요. 더 클래식의 멤버인 박용준 씨가 당시 제 파트너로서 훌륭한 편곡과 오케스 트레이션을 도와줬어요. 드림팩토리의 지원도 있었고, 서울 스튜디오의 큰 홀에서 풍부한 스트링 사운드를 녹음했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죠.
작곡을 할 때는 그 노래가 그렇게까지 히트할 줄은 몰랐어요. 그냥 하고 싶은 걸 한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인기가 대단했어요. 노래가 히트한다는 게 어떤 건지 확실하게 경험했던 시기였어요. TV 를 봐도 라디오를 들어도 거리를 걸어도 음식점에 가도 심지어 노래방을 가도 어느 곳에서건 마법의 성이 들렸죠. 가끔 유튜브에서이 곡에 달린 댓글들을 보는데 참 재미있어요. 이 노래를 요 근래에 처음 듣게 된 친구들은 노래가 슬프다고 많이들 이야기해요. 앨범이 발매되었던 90년대 중반에는 학생들이 이 노래를 들으며 자기가 공주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었는데, 많이 다르죠? 또 자기가 힘들었을 때 이 곡이 큰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 나를 배반해도이 노래만큼은 배반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이런 댓글도 있었는데 읽고 가슴이 뭉클했죠. 음악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음악은 본인이 원하건 원치 않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것 같아요.

만화영화의 주제가 같은 느낌의 부드럽게 이어지는 멜로디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 기획의도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가사를 쓰는 순간에도 느낌이 좋았어요. 특히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라는 가사가 정말 입에 잘 붙는다고 생각했어요. ‘자유롭게 저하늘을 날아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사도 잠깐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놀라지 말아요’로 쓰길 참 잘한 것 같아요.

그 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 이후 계속해서 음악을 하는 데에 짐이 되기도 했지만, 성공을 경험하는 건 일생에 쉽게 오지 않는 좋은 경험이잖아요. 내내 하늘에 붕 떠서 사는 기분이었어요. 직장에 가도 ‘가요톱텐 1위 하는 사람이다!’ 이런 분위기였고, 애널리스트로 해외 출장을 가서 해외 펀드 매니저를 상대로 기업 보고서를 쓰고 피티를 하는 등 바쁜 일과를 보낸 뒤 한식당이나 술집에 가면 저를 알아보고 밥값도 안 받고, 술을 공짜로 주는 등 여기저기서 환영을 많이 받았어 요. 한 번은 직장 내 사내 방송에 제 특집 방송이 방영돼서 사내 이메일 천 개를 받기도 했어요. 해외에서 출장을 다녀온 뒤 강원도까지 차를 타고 가서 노래를 한 적도 있고.. 저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정을 다 소화해내느라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가수로서 활동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회사 생활하면서 화제의 인물로 살아가는 것도 꽤 행복했어요.

인생의 롤러코스터


그렇게 한참 잘 나가다가 IMF 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왔는데, 주식시장도 그렇고 연예게도 부침이 심하잖아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어서인지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험이 반복되는 독특한 삶을 살았어요. 회사를 나온 뒤 2002년에 솔로 앨범 ‘솔베이지’를 발표했어요. 정말 열심히 만든 앨범인데 반응이 없어서 굉장히 실망했어요. 더 이상 가수 생활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다시 취직을 했죠. 이제부터 음악은 안 하고 일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운용하던 ‘더 클래식 진주 찾기’라는 펀드가 1위를 기록하면서 일이 잘 됐고, 그러다 수익률이 떨어져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 시점에 예능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서 탑 11 안에 든 참가자 중 네 명이 제 노래를 경연곡 으로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2011년에 제 노래들이 소위 차트 역주행을 하면서 이건 뭐지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활동한 것에 비해서 사랑을 많이 받았죠. 감사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다 아는 그 노래의 원곡자

제 노래가 여기저기서 리메이크가 참 많이 됐죠. 스윗소로우가 불렀던 마법의 성도 좋았고, 요조가 부른 동경소녀도 좋았고, 최근에는 가수 비비가 부른 편지도 좋았어요. 다양한 형태로 제 노래가 표현되는게 좋아요. 제 노래를 불러줘서 고마워요.

당신의 음악이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이유


작곡가는 자신에게 없는 요소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해요. 팝 음악을 좋아해서 세련되고 팝적인 멜로디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음악을 잘한다고 생각을 해왔어요. 반면 저는 민요 같은 느낌의 곡을 쓰지 않나 싶어요. 한동준 씨의 ‘사랑의 서약’ 같은 곡들도 옛날 어딘지 모를 곳에 존재하던 민요의 느낌이 나지 않나요. 사랑받는 이유라면 그런게아닐런지요. 제 안에 어느 먼 나라의 민요 같은 멜로디가 있는 방이 수도 없이 많고, 그걸 잠시 꺼내어 들려주니 사람들이 반겨주는 거죠. 답이 되었을까요?


음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


예전에 KBS에서 제주도에 공개방송을 갔는데 끝나고 나이트클럽에 갔어요. 맥주를 많이 마셨는데, 시간이 늦어서 돈을 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여러 명이 마셨으니 맥주값도 꽤 나올 거 같길래 지배인을 불러 제가 무대에 설 테니까 술을 공짜로 먹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주도에서 제일 큰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세 곡을 부르고 공짜로 술을 마셨어요. 무대가 돌아가고 단이 올라가는 등화려한 무대에서 홀로 조촐히 노래를 몇 곡 불렀어요. 분위기가 아주 좋았고, 사람들도 많이 좋아해 줬어요. 그때 저 스스로가 아주 자랑스러웠어요.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선 나이트 무대가 아닐까 싶네요.


장비 자랑


라이브 할 때 모니터링용으로 사용하는 웨스톤 ES5 커스텀 인이어요. 사운드캣에서 만들어줬어요. 가수들은 노래할 때 모니터 상황이 굉장히 중요해요. 모니터가 제대로 돼야 퍼포먼스를 잘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를 잘 점검하지 못하고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 요. 모니터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면 제 아무리 훌륭한 팝스타라고 할 지라도 볼륨을 조절 못해서 소리를 크게 내다가 목이 상하기도 하죠. 또 본인이 편안하게 느끼는 모니터 상황이 가수마다 달라요. MR 볼륨이 크게 들리는 걸 편안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걸 편안해하는 사람이 있죠. 그런 면에서 사운드캣에서 제작한 커스텀 인이어가 라이브 할 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인터뷰전문은 레전드매거진 2020년 1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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