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매그너스 L6의 횡치 직렬 6기통 엔진의 의미

조회수 2021. 1. 18. 17: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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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의 독자성과 창조성의 총아를 품다

진흙탕 속 하나의 꽃 같던 대우 매그너스

대우 매그너스 L6 모델명 배지

얼마 전 고 김우중 회장의 프랑스 국적에 관한 글을 보다가 한 친구가 생각이 났다. 아프신 부모님을 모시다 조금 늦게 사회 초년생이 된 필자의 지인이다. 어느 날 그가 이런 질문을 했다. “어떤 차를 사야 잘 샀다고 소문이 날까? 회사가 파주 쪽이라 매일 출퇴근용으로 쓰려면 연비도 좋아야 하는데….” 당시 전동 사이드 미러가 접히는 것만 봐도 신기해하던 필자에게는 무척이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지금처럼 시승할 기회가 많고, 정보를 얻을만한 매체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해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2004년형 대우 매그너스를 중심으로 대우자동차의 헤리티지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대우의 대표 중형차로 손꼽히는 매그너스는 내내 위기와 함께 했다. 1999년 국가부도 위기 속에서 데뷔했고, GM에 회사가 인수되기 직전에 완성된 XK 엔진을 심장으로 얹고 이글과 클래식이라는 이원 모델로 출시된 2001년은 외환위기 여파로 내수 침체가 극심했던 해이기도 했다. 차세대 LPG 2.0 SOHC 엔진을 얹은 매그너스 택시가 처음 발매된 2001년 봄은 대한민국이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날 청신호가 울리던 해였지만, 9・11 테러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기도 했다. 이렇게 진흙탕 같은 과거를 거치면서도 멈추지 않고, 2003년 9월 신형 매그너스는 등장했다.

대우 매그너스 L6 카탈로그의 라인업 구성

최초의 빅 매그너스와 제원의 큰 차이는 없었지만 공차중량이 약 140kg 늘어났다. 전작의 이원 모델의 트림에 가죽 트림과 사이드 에어백 등 고급 옵션을 추가한 다이아몬드 배지 모델이 추가되었다는 것이 주목할만했다. 또한 2000년도 모델보다 라인업을 크게 확장했다. L6 6기통 2.0L 엔진을 얹은 4개 모델이 8개로 늘어났고, 2003년도에 엠블럼을 달리해 출시한 L6 2.5 클래식과 이글 모델에 후드톱 마크를 통일해 라인업에 포함했다. 4기통 L4 모델은 3개의 트림에 변함이 없었지만 이글 2.0 DOHC의 그릴에 대우자동차 엠블렘을 이식해 차별화한 점이 이채로웠다.

시대를 앞서간 2004년형 매그너스의 탄생과 발자취

편의사항도 남달랐다. 핸드폰 수납공간, 운전석 열선, 내비게이션, 스티어링 오디오 리모콘, MP3 파일이 재생 가능한 CD 플레이어와 180W 파워앰프 및 고성능 6 스피커, 전자식 리모컨 키, 조명 내장 화장거울 등 드라이브의 재미를 높여주는 장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안전한 주행을 위해 눈부심 방지 기능을 갖춘 전동 사이드 미러, ABS와 TCS, 속도감응식 파워 스티어링도 낯설지 않은 기술이었다. 

대우 매그너스 L6 카탈로그의 안전 장비 사진

최근 고급 장비를 갖춘 모델에 적용되고 있는, 충돌 시 벨트를 당겨 충격을 최소화하는 시트벨트 프리텐셔너는 물론, 조수석까지 듀얼 및 사이드 에어백 등이 채용되었다. 그 밖에도 옵션이었지만 전동식 인텔리전트 문루프(선루프)와 최고급 AV 시스템 등의 갖추고 있었다.

대우 매그너스 L6 카탈로그의 모델 구성 소개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위화감이 없는 매그너스의 또 하나의 매력은 우수한 연비였다. ‘6기통 파워에 4기통 연비를 실현한 L6’라는 광고 문구가 강조하듯, 10.3km/L 정도의 공인연비를 자랑했다. 최근 내연기관의 배출 가스로 문제가 화두 되기 전, 대우차는 유해가스 배출이 적고 만족스러운 연비를 가진 엔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세계 최초 횡치 직렬 6기통 2.0L 엔진

출처: General Motors
대우 에스페로

매그너스가 탄생하기 전에 대우차에게 영광을 안겨준 월드카가 있었다. 1986년부터 단종될 때까지 전 세계에 약 1,034,000대가 판매된 르망이었다. 그 당시 르망의 폭발적인 판매량 덕분에 대우차는 자체 기술 개발에 투자할 여유가 생겨, 온 힘을 독자 모델을 만드는데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 노력의 결과 대우차의 첫 독자 모델이자 역사적인 자동차라고 할 수 있는 에스페로가 탄생했다. 이 차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이후 대우차는 외국의 기술을 뛰어넘는 엔진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에 독일 뮌헨에 기술연구소(GTC)를 설립하여 XS라는 개발코드명으로 L6 매그너스에 탑재할 엔진을 개발했다. 1998년부터 자리를 옮겨 부평기술연구소에서 2.0L, 2.5L 엔진과 LPG 엔진까지 개발 범위를 넓혔다. 그때 XK라는 생산코드를 부여받았다. 이후 대우는 1999년 완성된 이 엔진을 매그너스의 후드 안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1999년 8월 대우그룹 산하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이 결정되면서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피아트, 현대차 중 누가 대우차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인가라는 소문과 논쟁에 연일 들썩였다.

대우 매그너스 L6 카탈로그 표지

쌍용차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기업개선 작업에 들어가면서 별개로 운영되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도 신차에 대한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보이듯 대우차의 연구실과 사무실 그리고 생산라인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결국 매그너스 L6 2.0(V210)은 2000년 이후로 출시가 연기되었다. 매그너스 L6 2.5(V220)는 ULEV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하며 북미 수출 전략 차종에 적용시키기 위해 더욱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국내에는 2002년 하반기 출시할 계획을 잡았다. 결국 약 2년간 2,200억 원의 엔진 개발비와 대우차 임직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XK 엔진은 완성되었다.

대우는 최대한 부피를 줄여 엔진을 앞에 두고 2,000cc 급 경쟁 모델보다 정숙성과 진동이 적은 엔진을 만들기 원했다. 그래서 설계 단계부터 그 당시 최고의 기술로 6개 실린더의 직렬 배열로 최적의 운동 밸런스를 구현하여 소음과 진동을 줄임으로써 부드럽고 조용한 드라이빙을 가능케 했다. 이렇게 설계된 엔진은 부피가 커지지 않아 엔진룸에 가로로 설치할 수 있었다.

대우 매그너스 L6 카탈로그의 엔진 설명

혁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압 다이캐스팅(HPDC)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과 단열효과가 높은 플라스틱 흡기 매니폴드를 적용하는 등 엔진 경량화를 통해 연비를 높였다. 그와 동시에 2.5L 엔진에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장착해 대기로 뿜어내는 오염물질을 줄었다. 상대적으로 연소된 가스가 적은 2.0L 엔진에는 레조네이터가 장착되어 성능 향상과 배기 소음 저하를 꾀했다. 

게다가 기존의 타이밍 벨트 방식에서 벗어나 무교환으로 반영구적인 타이밍 체인 시스템을 적용해 엔진의 신뢰도를 높였다. 이런 사회적 배경과 기술을 안고 세계 최초 횡치 직렬 6기통 2.0L 엔진은 세상에 나와 매그너스의 후드 안으로 들어갔다.

대우 매그너스 L6 카탈로그의 엔진 설명

일각에서는 XK 엔진이 세계 최초의 횡치 직렬 6기통 엔진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도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랬다. "직렬 6기통 엔진은 이미 BMW 등 여러 메이커에서 제작된 것이다. 또한 1998년 출시한 1세대 볼보 S80에 이미 가로로 놓은 방식(횡치)의 직렬 6기통 엔진이 적용됐다. 그래서 매그너스를 최초라고 할 수 없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볼보는 1970년대 이전부터 6기통 인라인으로 제작된 164 엔진(B30)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방식의 엔진을 약 28년이 훌쩍 지나 90도로 돌려 가로 방향으로 장착한 S80 모델에 이식했다. 공교롭게도 매그너스가 출시되기 전인 1998년에 말이다. S80은 인라인 6기통 엔진(B6294S) 뿐만 아니라 직렬 5기통 엔진(B5244S) 등 NA(자연흡기) 방식의 엔진을 채용했다.

출처: Volvo Cars
볼보 S80의 횡치 직렬 6기통 3.2L 엔진

반면 매그너스의 XK 엔진은 엔진의 운전 영역에 따라 적절하게 밸브를 조절하여 엔진 구동 토크를 높이는 시스템인 가변 흡기 시스템(Variable intake System)을 적용했다. 두 엔진은 출력을 높이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이것만 달랐던 것이 아니다. 변속기 또한 개발 단계부터 판이했다. S80은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하기 위해 새로운 미션을 제작했지만 매그너스는 ZF 제품을 구매해 결합했다. 그래서 개발 비용 또한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

대우의 독자성과 창조성의 총아를 품은 매그너스

대우 매그너스 L6의 헤드램프

대우 임직원들은 대우차가 GM에 인수되기 전 대우의 이름으로 완성된 엔진을 보고 싶어 했다. 약 519억 원의 개발비를 투자하고 투혼을 발휘하여 국내 최초 직렬 6기통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쾌거였다. L6 엔진은 1,993cc, 2,500cc 두 가지였고 각각 최고출력 142마력, 157마력으로 경쟁사의 엔진보다 부드럽고 강력하며 소음이 적은 엔진으로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실린더 간 간격을 최대한 줄여 엔진 길이가 4기통 엔진보다도 짧고 가벼웠다. 해외 기술과 디자인에 의존도가 높고 자체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한 번에 잠재울 수 있던 기술의 쾌거였고, 대우의 아이코닉한 역사와 높은 기술을 담은 기술의 총아였다. 매그너스의 7년 역사상 가장 빛나던 L6 엔진을 단 모델들이 등장했고 지금까지 훌륭한 자동차로 인정받고 있다. L6 매그너스의 개발과 발전은 국내외 칠흑처럼 어두웠던 시대에서도 빛나는 대우차의 임직원 모두의 집념과 열정이 빚어낸 결과였다. ‘커다랗고 위대한’이란 의미의 매그너스처럼 대우차는 자동차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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