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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드라이빙 메모리 (1) - 폭스바겐 골프 GTI Mk. II

조회수 2021. 1. 18. 17: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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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음을 담은 핫 해치의 교과서
새해를 맞아 1세대 자동차 저널리스트로서 월간 자동차생활 취재부장, (구) 스피드채널 모터인싸이드팀 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한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의 글을 연재합니다.

첫 대면

출처: Volkswagen

서울올림픽의 기대가 한껏 무르익었던 1988년 7월, 나는 서울올림픽보다 더 큰 기대를 품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 안세병원사거리(현 강남을지병원사거리)로 향했다. 지금은 신사동이 수입차들의 메카지만, 당시 수입차들은 동호대교에서 학동역으로 이어지는 논현로에 모여 있었다.

그 네거리 모퉁이 벽돌 건물 1층에 당시 효성이 수입했던 아우디/폭스바겐 전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쇼룸에는 당시 아우디의 최상위 모델이었던 진회색 메탈릭 컬러의 200 콰트로와 빨간색 폭스바겐 골프 GTI가 눈부신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케팅 담당자로부터 건네받은 열쇠의 주인공은 골프 GTI 16V. 1984년에 2세대로 진화한 골프의 최강 모델이다. 1974년에 데뷔해 유럽부터 시작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골프가 실루엣만 유지한 채 엄청나게 발전한 모델이었다. 차체만 보아도 1세대에 비해 170mm나 길어지고 55mm 넓고 휠베이스 또한 75mm 길어져, 아예 한 급 위의 차종이라 할 만큼 발전했다.

지금까지도 핫 해치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골프 GTI의 2세대 모델, 그중에서도 최강 모델인 DOHC 멀티밸브 헤드를 얹은 16V 모델은 안팎에 세세한 터치를 더해 보통의 골프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싱글 라이트에서 더블 라이트로, 라디에이터 그릴에 빨간 스트라이프를 더하고 185/60 VR14 와이드(?)타이어를 끼워 15mm 더 넓어진 오버펜더까지 한눈에도 다부지고 또 잘 달릴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엄청난 고성능 엔진과 단단하게 조여진 서스펜션을 더한 골프 GTI 16V는 당시 고성능 소형차시장의 리더였다.

출처: Volkswagen UK

‘최고출력 139마력/6,100rpm, 최대토크 17.1kg·m/4,600rpm’

요즘 기준으로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수치지만, 당시 골프 GTI 16V가 내놓은 성능은 소형차의 기준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고성능이었다(당시 국산 소형차 현대 엑셀과 대우 르망의 출력은 87~8마력, 기아 프라이드는 78마력).

1.6L급 소형차의 출력이 터보차저의 도움을 받아 130마력에 턱걸이하던 시절, 자연흡기엔진으로 이 정도 출력을 끌어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당시 골프의 경쟁 모델이었던 오펠 카데트 2.0GSi 16V가 150마력의 고출력 엔진을 얹었지만 넓은 변속비와 어설픈 서스펜션 세팅 등으로 오히려 골프를 돋보이게 할 뿐이었다.

첫 동행

출처: Volkswagen

차에 오르자 최강의 골프에 올랐다는 인상이 즉각적으로 느껴진다. 스티어링 휠의 에어백 커버에 음각으로 새겨넣은 GTI 레터링과 전통의 골프공 모양의 시프트 노브 그리고 가죽으로 감싼 레카로 세미 버킷시트가 최고성능의 골프에 올랐음을 상기시켜준다. 원래 골프 GTI는 전통적으로 타탄 체크무늬의 헝겊 시트를 얹지만 수입 모델은 가죽 시트였다. 30여 년 전의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는 가격면에서 국산차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워 스티어링을 비롯해 ABS, 에어백, 에어컨, 전동식 선루프에 가죽 시트까지 풀옵션을 갖춘 상태로 들어왔다.

시동을 걸고 잠시 웜 업을 하고 도로로 나섰다. 방향은 당시 와인딩을 즐길 수 있는 북악스카이웨이. 종로구 사직동에서 시작해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짧은 구간이지만, 당시 필자가 밤마다 즐겨 찾는 곳이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면서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감탄이 이어졌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 익숙한 정지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에 9.0초. 최고속도 197km/h. 요즘 기준으로 덤덤한 수치일 수 있지만, 당시 자동차 특히 소형차의 기준에서 본다면 상상하기 힘든 고성능이었다.

단순히 가속 성능뿐만이 아니었다. 스티어링 휠의 정교한 반응이나 기어의 깔끔한 맞물림 그리고 어떤 거동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안정감. 당시 우리나라에서 스포티함으로 젊은이들이 동경했던 르망 레이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91년 르망에 2.0엔진을 얹은 르망 임팩트나 여기에 이름셔(Irmscher) 튜닝파츠를 더한 르망 이름셔 조차 허름한 변속기와 뻣뻣한 서스펜션으로 상대가 되지 못했다.

출처: Volkswagen

골프 GTI 16V를 운전하는 느낌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북악스카이웨이의 코너마다 업 힐이건 다운 힐이건 출력 부족이나 불안한 거동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당시 필자가 타던 현대 엑셀 스포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같은 시기에 수입된 5단 수동변속기의 BMW 320i보다도 날랬고 운전자의 의도를 즉각적으로 받아주었다.

포니, 비틀, 초대 혼다 시빅, 1세대 골프 GTD, 엑셀 스포티, 르망 레이서 등 소형차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당시 필자의 경험영역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일체감. 그것이 2세대 골프 GTI 16V가 주는 감동의 원천이었다.

그 후

출처: Volkswagen

가끔 어린 친구들이 어떤 차가 좋았냐고 물을 때가 있다. 사실 필자는 자동차에 관해서는 지조가 1도 없는 인간이어서 단 하나를 꼽지 못한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에게는 폭스바겐 골프 GTI를 타보라고 얘기한다. 내가 얘기하는 GTI는 2세대 GTI다. 요즘은 GTI보다 더 고성능을 내는 R이나 클럽스포츠 모델도 있겠지만 그래도 GTI이 최고다. 그 최고의 GTI중에서 내게 최고의 GTI는 단연 2세대 GTI다.

어느 시대건 운동성능과 감각, 실용성, 신뢰성 거기에 경제성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높은 밸런스를 갖춘 차는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엄청난 힘으로 운전자를 내몰 듯 떠미는 요즘 차들과 달리 2세대 골프 GTI 16V는 드라이버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호응한다. 운전 상황이 어떻건 드라이버의 주도권을 인정해주는 차. 그래서 차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차. 필자에게 골프 GTI 16V는 첫 번째 드라이버스카였다. 

사족

5년 전 1991년식 2세대 마지막 골프 GTI 16V를 잠시 몰 기회가 있었다. 출고된 지 25년이나 지난 올드카였지만 그 반응과 느낌은 여전했다. 크기, 편의장비, 안전장비 등 세월의 흐름을 부정할 순 없지만 GTI 16V는 여전히 필자와 소통하고 필자의 조종대로 반응해주었다. 거기에 더해 필자의 젊은 시절 감동까지 그대로...

글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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