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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염원이 깃든 차, 포니

조회수 2020. 10. 12. 0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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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독자 모델에 투영된 한국의 첫 고유 모델


예전에 태국의 한 정부 기관을 방문해 자동차 생산 관련 담당자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한강의 기적처럼 태국에도 고유 자동차 모델이 있었으면 해요”라는 말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태국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기를 염원했다.


그의 바람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올해 초 태국에서는 선진화된 제조기술을 바탕에서 태어난 첫 고유 모델 SPA 1 EV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방콕을 가로지르는 차오프라야강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차를 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현대 포니가 떠올랐다. 포니는 우리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던져 주었기에 그 의미가 각별한 차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인 포니가 태어난 배경과 에피소드 그리고 이를 만든 인물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경부고속도로와 현대건설

‘민족의 오랜 꿈 실현, 경부고속도로 개통’ [1970년 7월 7일자 동아일보]


우리나라는 1960년대 후반에 산업과 수출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철도만으로는 원재료와 생산품 수송을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도로망을 더 늘려야 했다. 이에 정부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를 계획하게 된다. 짧은 기간에 완성해야 했기에 공사 구간을 나눠 맡은 여러 건설사가 동시에 진행했다.

1970년대 초 경부고속도로의 모습 [출처: 고속도로순찰대]


그리고 정주영 회장이 이끄는 현대건설이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사실상 진두지휘하게 된다. 당시 현대건설만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속도로 시공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태국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를 시공할 때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착공한 지 29개월 만에 경부고속도로를 완공할 수 있었다.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육상 운송의 대변혁이 일어났다 [출처: 고속도로순찰대]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자 이전까지 철도에만 의지했던 육로 수송 분야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부산항에서 서울까지의 운송 시간이 열차보다 2시간이나 앞당겨지게 되었다.

현대차 역사의 시작

1960년대 말 현대차 울산공장의 모습
현대자동차 첫 모델인 코티나를 조립하는 모습(1960년대 말)

아울러 ‘고속도로를 이용할 국산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대두되었다. 사실 현대그룹은 자동차 산업에 먼저 발을 담갔다.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이름의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며 현대그룹의 기틀을 닦았고, 1968년 포드와 면허 생산 계약을 맺고 그해 10월 약 66만 제곱미터의 울산공장을 지어 중형차 코티나와 트럭 D-750을 조립했다.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또 다른 포니 컨셉트카


그러나 1972년 합자회사를 준비했던 현대와 포드가 여러 이유로 불협화음을 내며 사이가 틀어진 것을 계기로 정주영 회장이 평소 과업이라고 생각하던 독자적인 자동차 개발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1973년 당시 현대자동차의 수장인 정세영 사장이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를 찾아가 기술 제휴를 맺고 이탈리아의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이끄는 이탈디자인에 디자인을 의뢰했다. 정주영 회장과 동생 정세영 회장이 오랜 염원인 고유 모델 제작에 첫 삽을 뜬 것이다.

현대차의 염원을 담은 차

현대차의 첫 고유 모델인 포니
전국 공모를 통해 '포니'란 차명이 결정됐다


1974년 7월 차명을 공모했고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낸 5만8,223통의 엽서가 도착했다. 응모된 차명으로는 아리랑과 무궁화 등 한글 이름이 많았지만, 최종 심사에서는 수출 시장에서 친숙한 영어 단어인 포니(Pony)가 선정됐다.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전시된 포니


1974년 10월 토리노 모터쇼에 국내 최초 고유 모델 포니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전 세계 언론과 자동차 업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극찬을 이어갔다. 포니의 등장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 독자적인 고유 모델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현대차의 끝없는 도전

개발 중인 현대차의 독자 엔진(알파)


포니가 성공한 이후에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 현대자동차 정세영 회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자동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엔진과 변속기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들이기 시작했다. 파워트레인의 기술 독립 없이는 메이저 업체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첫 독자 개발 '알파' 엔진 공장의 준공식 모습


국내 첫 독자 개발 엔진인 ‘알파’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현대자동차는 담대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가진 정주영 회장, 그리고 기술 독립에 인생을 바친 정세영 회장의 열정과 노력으로 성장했다. 또한 그들과 함께 꿈을 공유한 현대자동차 및 협력사 임직원의 헌신으로 한 걸음씩 진화해왔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불굴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글 윤영준(라라클래식 공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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