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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가 낳은 기념비적 스포츠카, 볼보 P1800

조회수 2020. 8. 17. 19: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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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양산 60주년을 맞이하는 P1800의 탄생과 단종 과정

얼마 전, 스웨덴 예테보리의 한 창고에서 볼보의 역사적 첫 양산차가 처음 운행한 사진을 보는 듯한 가슴 떨리는 소식을 접했다. 1973년에 단종된 볼보 P1800이 위장 래핑을 한 채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린 외신이었다.

출처: Wikipedia
볼초의 첫 양산차 ÖV4

이 뉴스를 접하며 볼보의 스포츠카 라인이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년 즉 2021년에 양산 60주년을 맞이하는 P1800의 가슴 떨리는 탄생과 단종 과정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1950년대 초, 볼보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아사르 가브리엘손이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의 공장을 방문했다. 그는 쉐보레 콜벳을 보며 유럽 스포츠카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그는 미국 시장에 진출할 모델을 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 볼보와 함께 자기 생각을 실현할, 신뢰할 수 있는 자동차 보디 전문 업체를 수소문했다. 마침내 카이저 모터스의 스포츠카 카이저 대린(Kaiser-Darrin)의 보디를 설계해 좋은 실적과 명성을 얻고 있던 글래스퍼(Glasspar)를 찾아가 볼보의 승용차 PV 444를 기초로 한 스포츠카 설계를 의뢰했다.

출처: Jooinn
볼보 PV 444

이후 1955년 브뤼셀 모터쇼에서 당시 최첨단 소재였던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차체와 두 개의 카뷰레터, 서로 다른 캠샤프트, 대형 흡기 밸브 및 높은 압축비를 적용해 최고출력 70마력을 낼 수 있는 4기통 1.4L 엔진을 얹은 볼보의 첫 스포츠카 P1900이 선보였다. 이 모델의 데뷔를 지켜본 많은 매체가 전작인 PV 444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모델이 미국과 유럽의 기술로 만들어졌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볼보 P1900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P1900은 약 68대를 끝으로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P1900의 개발에 영향을 준 쉐보레 콜벳 1세대와 비슷한 시기에 품질의 문제가 생겼다. 1957년에 나온 콜벳은 경쟁 모델인 포드 썬더버드 등에 비해 코너링 등 여러 약점을 보여 다른 스타일의 모델로 페이스리프트되었다. 하지만 P1900은 남유럽과 남아프리카를 거친 약 1만 6,000km의 주행 시험 중 내구성과 안정성 등 여러 문제가 생기면서 콜벳과 달리 단종이란 길을 달리게 되었다. 


P1900의 생산을 중지시킨 사람은 군나르 엥겔라우(Gunnar Engellau)였다. 그는 항공기 엔진 엔지니어 출신이자 교통사고에서 획기적으로 사망률의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안전벨트와 여러 안전 기술을 자동차 설계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볼보의 수장이었다. 그러나 안전에만 집중하면 대중은 볼보의 이미지를 지루해하리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던 진취적인 CEO이기도 했다. 엥겔라우는 볼보 차의 이미지가 안전하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도록 획기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스포츠카를 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새로운 자동차를 볼보는 바로 양산할 수 없었다. 볼보의 생산 공장은 풀 가동 중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미국 5만 대 수출 기념 사진을 찍은 군나르 엥겔라우와 볼보 PV 544

최초의 3점식 안전벨트를 적용한 아마존 시리즈의 주문량을 소화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고, 그 당시 미국에서 잘 팔리던 포드 스타라이너나 캐딜락 엘도라도 등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 디자인과 성능을 가진 스포츠카를 설계할 능력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엥겔라우는 아마존 120 시리즈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카를 만들어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며 이사회를 설득했고, 새로운 스포츠카 설계와 제조를 할 수 있는 사업 파트너를 찾아 나섰다. 


그는 마침내 볼보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릴 운명의 스포츠카 P1800를 디자인하고 프로토타입을 제조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다. 그곳은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프루아(Frua)라는 카로체리아 즉 자동차 공방이었다. 이 공방은 피아트 1100C와 마세라티 A6 GCS 등 스포츠카를 설계하기도 했던 실력 있는 곳이었다. 많은 설이 존재하지만 선정된 이유가 어떻게 됐든 이탈리아 공방이 볼보의 이미지를 홍보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P1800의 설계를 맡은 것이다.

출처: wikipedia
프루아에서 만든 1955년형 마세라티 A6 G 쿠페

이 카로체리아에는 볼보 역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스포츠카를 디자인한 인재가 있었다. 그는 정식 디자이너가 아닌 인턴 신분이었다. 그는 바로 오랫동안 볼보 디자이너로 활동한 헬머 페테르손(이하 헬머)의 아들 펠르 페테르손(이하 펠르)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1800을 설계한 펠르 페테르손

그는 뉴욕에서 자동차 설계를 공부한 덕분에 미국 자동차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또한 그의 아버지 덕분에 볼보가 원하는 자동차 디자인 관련 정보를 누구보다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런 덕분에 팰르가 디자인한 P1800의 설계도가 다른 선임들과 펼친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않았을까 한다.

출처: 볼보 박물관
P1800 포스터

여담이지만 볼보 최고 경영자였던 엥겔라우는 펠르의 P1800을 선정하고 승인했지만, 이후 헬머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는 불공정한 경쟁이었다고 여겨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볼보가 공식적으로 ‘펠르가 P1800을 디자인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약 5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 1957년에 마침내 P1800의 디자인 도면이 완성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P1800을 제조 및 생산할 업체를 못 찾았던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엥겔라우는 프루아 공방을 인수한 카로체리아 기아와 협업 중이던 독일의 메이커 카르만(Karmann)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 회사는 볼보의 제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 회사와 먼저 계약한 폭스바겐은 볼보의 새로운 스포츠카가 자사의 카르만 기아와 경쟁 모델이 될 것을 우려했고, 카르만에게 볼보와 계약을 하면 기존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런 이유로 카르만과 생산 계약을 맺을 수 없었던 볼보에게 NSU 등 여러 자동차 업체들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볼보는 거절했다. 전 세계 시장이 만족할만한 성능과 생산 능력 그리고 판매 실적을 가진 회사를 찾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출처: Classicdriver 1800S
1960 브뤼셀 모터쇼에 전시된 P1800의 두 번째 프로토타입

이후 3년간 P1800의 양산 프로젝트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볼보는 은행권과 주주들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런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1960년 1월 브뤼셀 모터쇼에서 P1800의 2번째 프로토타입이 공개되었다.


공개 후 미완성의 P1800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은행권 등의 불만도 자연스레 해결됐다. 이런 호응에 힘을 얻게 된 볼보의 책임자들은 영국에 건너가 젠센(Jensen)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 제조사는 오스틴 힐리 스포츠카를 생산 중이었고 스코틀랜드의 훌륭한 보디 제조업체인 프레스드 스틸(Pressed Steel)과 협업 관계에 있던 조립회사였다.

출처: SeneiAlan
1965년 로드 앤 트랙 잡지 광고

1961년 젠센은 볼보의 스포츠카에 애스턴 마틴의 4기통 2.3L DOHC 엔진을 얹은 모델로 좋은 테스트 결과를 볼보에 보고했다. 하지만 볼보는 애스턴 마틴의 비싼 엔진 값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납득할만한 100마력 정도의 출력을 내는 4기통 1.8L 엔진을 젠센에게 요청했다. 볼보는 소비자들이 싼값과 스포티한 주행 특성을 보이는 뒷바퀴 굴림 스포츠카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1800은 영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고가의 애스턴 마틴 DB4나 페라리 250 GT 등을 갖고 싶은 소비자들에게는 절반 이상 값싼 현실적 구매 대상이었다. 많은 소비자에게 높은 관심을 얻을 무렵인 1962년 초, 영국 ITC TV는 레슬리 채터리스의 장편소설 ‘호랑이를 만나다(Meet The Tiger)'를 TV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를 준비하는 과정에 전 세계를 다니며 활약하는 주인공과 어울리는 차로 재규어 E 타입과 애스턴 마틴 DB 시리즈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출처: Volvo Media
TV 시리즈 세인트의 필름 카로 활약한 P1800

이 드라마의 제작자는 영국 브랜드 차보다 스웨덴의 P1800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하고 뒤 액슬은 미국식이며 유럽 여러 곳에서 부품을 받아 영국에서 조립하는 이 모델이 드라마 주인공과 어울릴 정도로 국제적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또한 도주와 추격이 잦은 내용상, 오버드라이브 기능을 가진 P1800이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P1800을 등장 시켜 제작한 드라마가 바로 로저 무어 주연의 세인트(The Saint)였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드라마 세인트 첫 회부터 등장한 P1800

이 TV 시리즈의 첫 회부터 출연한 P1800은 화제가 될 만큼 라인과 형태가 수려했고,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의 애마로서 볼보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은 로저 무어도 P1800의 매력에 빠져, 직접 사서 관리하고 운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P1800의 생산은 드라마의 인기와 달리 순탄치 않았다.


1963년경 드라마와 여러 홍보 마케팅의 효과로 P1800의 주문량은 연일 늘어났지만, 생산량을 늘릴 수가 없었다. 젠센의 품질관리와 노사관계 그리고 물류 등 여러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볼보는 젠센과 신뢰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 최초 계약한 1만 대의 생산량을 6,000대로 조정하고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이후 P1800의 조립 라인은 스웨덴 예테보리와 룬드비베르켄(Lundbyverken)으로 이전했다. 

출처: Pistonudos
P1800은 강화 플라스틱이 아닌 강철로 된 바디를 가지고 있다

이때부터 생산된 P1800은 이름 뒤에 스웨덴(Sweden) 생산을 뜻하는 S자가 더해졌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출력과 아름다운 라인도 조금씩 바뀌었다. 예를 들면 1970년 생산된 P1800 E는 보쉬의 연료 분사 장치를 단 B20E 엔진을 얹은 모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독일어 아인슈프리충(Einspritzung)의 첫 글자인 E를 붙여 생산되었다.

출처: Flickr
1970년형 볼보 1800 E

또한 P1800은 볼보 최초로 사륜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가 적용된 첫 모델이기도 했다. 미국 시장에서 '백설공주의 관(Snow White’s Coffin)'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P1800 ES는 세련된 왜건이었지만 관이라 별명처럼 P1800의 이름이 붙은 마지막 모델이 되었다. 

출처: Flickr
1972년형 볼보 1800 ES. 애니메이션 속 백설공주 유리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973년 볼보는 자신의 자동차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희귀한 뒷바퀴 굴림 모델을 단종시켰다. 그 이유는 미국의 배기가스에 관한 새로운 기준에 맞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P1800은 단종되었지만, 이 모델에 매료된 롱아일랜드 출신의 어빈 고든(Irvin Gordon)은 비영리 자동차로 약 200만 km 거리를 주행한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런 굉장한 기록은 계속되어, 그가 사망하기 전 약 515만 km가 되었다. 물론 공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가 남긴 P1800의 내구성에 관한 기록도 훌륭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자동차에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Flickr
기네스북에 등재된 고 어빈 고든의 P1800

어느새 탄생 60년을 맞이하는 P1800은 지금도 이탈리아의 유려한 라인과 믿음직스러운 주행 성능을 지닌 멋진 차다. 또한 얼마 전 예테보리에서 목격된 위장막의 P1800처럼 최첨단 파워트레인을 안고 부활해 최첨단 스포츠카가 될지도 모르는 모델이다. 과거의 로저 무어와 어빈 고든이 그랬듯, 미래에도 마지막까지 소유하고 싶은 자동차가 되길 기대한다. 

출처: Volvo Media
드라마 세인트 속 P1800 S와 로저 무어의 에피소드는 이 사진처럼 영원할 것이다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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