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엘란, 일본 도로를 달리다

조회수 2020. 7. 13. 0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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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로드스터
일본에도 '비가토'라는 이름으로 수출


영국 로터스가 개발한 엘란은 1960년대 1세대 모델 이후 긴 공백 기간을 거쳐 1980년대 말 M100으로 불리는 2세대 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스포츠카를 원하던 기아자동차는 로터스로부터 엘란의 기술 및 설비에 대한 권리를 취득해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스포츠카 및 로드스터 시대를 열게 되었죠.

로터스 시절의 2세대 엘란
기아차가 생산한 엘란


약 1,000여 대의 생산분 중 200여 대가 ‘기아 비가토’라는 이름으로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그중 하나를 라라클래식이 일본 현지에서 입수해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시승도 해보았습니다.

라라클래식이 일본에서 입수한 기아 비가토(엘란)


로터스 엘란이 기아 엘란으로 바뀌면서 몇 가지 변경들이 있었습니다. 이스즈로부터 로터스에 제공되었던 엔진이 기아 엘란에서는 자체적인 1.8L 자연흡기 엔진으로 바뀌고 차고도 조금 높아졌지요. 이에 따라 서스펜션의 세팅이 달라지는 등 기술적인 변화가 좀 있었습니다.


또한 외형에서도 눈에 띄게 달라진 게 하나 있는데요. 바로 원형 렌즈가 달린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입니다. 로터스 엘란은 플랫한 디자인의 리어 램프가 장착되어 있었지만, 기아 엘란은 조금 더 치장을 해서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라라클래식이 입수한 기아 엘란의 주행거리는 6만8,000km를 넘어 6만9,000km로 향하고 있으니 극도의 저주행 차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많이 달린 편도 아닙니다. 차령이 20년이 넘었지만 주행거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니, 과다주행 차량에 비해 엘란 본연의 느낌에 가까운 주행질감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차체나 각 부품에 쌓이는 피로는 주행거리와 비례하니까요.


엔진이 기아가 만든 중형 세단 크레도스에서 가져온 것이라 엔진의 반응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요. 실제로 주행해 보니 예상과 달리 꽤 흥분할 만한 반응을 보여주더군요. 일부러 얘기하지 않으면 크레도스와 같은 엔진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었습니다. 엑셀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지속적인 긴장감을 전달해 주는 엘란은 1990년대 우리나라의 자동차에서 느낄 수 있었던 평범하고 일반적인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특히 전 구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밀도 있는 엔진 회전질감을 느낄 수 있는 점이나, 기어 체인지의 순간에도 마치 다음 조작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급격하게 rpm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아이들링 이외의 모든 구간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듯한 엔진음도 운전자의 감각을 일깨워 주는 듯합니다.


핸들링도 괜찮은 편이어서 스티어링 휠을 조금만 움직여도 비교적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 듯합니다. 후드의 경사가 커서 실내에서 후드의 끝부분이 잘 보이지 않으니 마치 도로 위에 직접 노출되어 앉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윈드실드는 곡률이 커 윈드실드 가운데 부분이 운전석에서 한참 멀리 앞쪽에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실제 차체의 움직임보다 눈과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적인 움직임이 한층 날카롭게 느껴집니다.


다만 엘란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제동성능은 여러 면에서 부족해 보입니다. 몇 차례의 급브레이크에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이 느껴지고, 고속에서의 가벼운 브레이킹에서도 생각만큼 반응을 보여주지 않아 일정 속도 이상의 고속주행이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주행에서는 괜찮습니다만, 고속주행을 즐기려면 브레이크 업그레이드가 꼭 필요할 듯합니다.


이번에 테스트한 차량은 얼라인먼트가 완벽하지 않아 더욱 정확한 테스트는 해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터스에서 튜닝한 엔진, 서스펜션 등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진가를 발휘하더군요. 사실 한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일반도로와 고속도로에서 평범하게 운전해본 것이라 제대로 된 시승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차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기아 엘란에서는 미흡한 점도 보이는데요. 이제 20년이 지난 데다 주행거리도 있고 컨버터블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어 더 그렇겠지만, 튼튼하지 못한 보디 여기저기서 잡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윈드 노이즈나 각 부품들의 단차가 맞지 않는 등 기본적인 품질과 내구성은 높지 않더군요. 특히 소프트톱과 프론트 윈드실드가 결합되는 부분에서는 큰 잡음이 들리는데요.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기어변속 시에도 기어의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다거나 2, 4단의 경우에는 갑자기 스트로크가 짧아져 조작이 제대로 되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등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또 1, 3단과 비교해 5단이 들어가는 포지션이 멀어 조작 미스가 발생하기도 하더군요.


한 가지 많이 아쉬웠던 점은 전 오너가 기아(KIA) 브랜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스티어링 휠의 로고를 파낸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엘란 오너들도 로터스의 로고나 엠블렘을 붙였는데, 이곳 일본의 오너도 비슷한 행동을 한 모양입니다.


기아 엘란의 실내 모습입니다. 시트와 오디오 등 몇 가지가 순정에서 바뀌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순정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지 않아 다행입니다.


저렴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각 부품의 질감과 내구성이 아쉽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압 게이지, 오일 압력 게이지 등 당시 일반적인 차에는 없는 여러 게이지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스포츠카, 그리고 로드스터로서의 위상을 이야기해 주는 듯합니다.


최근에는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컨셉트로 만들어졌던 피아트의 바르케타(Fiat Barchetta)와 엘란이 함께 만나기도 했는데요. 1980년대 말부터 급속도로 퍼졌던 소형 로드스터 붐을 타고 전 세계의 많은 메이커들이 이 무렵 소형 로드스터를 앞다투어 발표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SLK를, BMW는 Z3를 시장에 내놓았죠. 로터스 엘란과 기아 엘란, 그리고 피아트 바르케타도 그중 하나입니다.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기아 엘란과 피아트 바르케타가 멋진 개러지 하우스의 풍경 안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고가의 슈퍼카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들 두 자동차가 순수한 자동차 마니아들의 로망을 담아낸 로드스터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990년대,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과 문화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던 시절, 기술의 기아를 표방하며 시대를 앞서간 제품을 만들어내며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한 획을 그은 기아 엘란! 특히 우리나라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일본 시장에도 많은 수는 아니지만 수출을 통해 우리의 노력과 기술력을 증명했던 기아 엘란!


이런 많은 노력들을 통해 우리의 자동차 산업과 문화는 발전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라라클래식은 일본 개러지에 있는 기아 엘란을 통해 다양한 자동차 문화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글, 사진 김주용(엔터테크 대표, 인제스피디움 클래식카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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