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의 경주차들

조회수 2019. 12. 31. 1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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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자동차 이벤트
포르쉐와 랜드로버, 70주년 기념해 특별 이벤트 열어


매년 여름이면 전설적인 경주차와 자동차계의 유명인사들이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웨스트서섹스 주로 모여든다. 거대한 영지와 리조트, 경마장, 공항, 서킷을 보유한 리치몬드 공작가의 마치백작이 여는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Goodwood Festival of Speed, 이하 굿우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전설적인 경주차와 스타 드라이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꿈의 이벤트로 유명하다. 


1993년 시작된 후 빠르게 규모를 키워온 굿우드는 이제 옛 자동차와 경주차, 드라이버들이 모이는 클래식 또는 모터스포츠 이벤트를 넘어서 자동차 메이커들이 자기 브랜드와 신차를 홍보하는 장으로 활용할 만큼 중요한 이벤트가 되었다. 즉, 과거를 추억하며 즐기는 모터스포츠 행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대규모 자동차 이벤트가 되었다.


올해 굿우드는 지난 7월 12~15일에 열렸다. 특히 이번 행사는 굿우드 페스티벌이 사반세기를 의미하는 25주년을 맞이해 특별함을 더했다. 굿우드뿐 아니라 70주년을 기념하는 두 자동차 브랜드도 함께 참여해 기쁨을 나누었다. 포르쉐와 랜드로버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는 1948년 현재 포르쉐 홀딩스의 전신이 포르쉐 엠블럼을 단 첫 모델 356을 생산한지 꼭 70주년이 되는 해다(창업 70주년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포르쉐는 중앙의 거대한 조형물을 자사의 모델로 장식했다. 매년 게리 주다가 만드는 이 조형물은 어느덧 굿우드의 명물이 되었고 행사 기간 내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포르쉐는 50m가 넘는 거대한 구조물 위에 전설적인 모델 6대를 매달았다. 356과 911, 959 다카르 랠리, 917과 918 하이브리드, 919 하이브리드였다. 포르쉐는 지난 1998년에도 창립 50주년, 2013년 911 탄생 50주년에도 굿우드를 통해 기쁨을 나눈 바 있다. 굿우드 역사상 단일 브랜드로는 최다 기록이다.


한편 1948년에 창업해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랜드로버도 행사 기간 중 화려한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다. 운전석이 가운데 자리한 최초의 랜드로버 시제차와 랜드로버 시리즈1의 첫 프로토타입 모델인 HUE 166을 포함해 기념비적인 70대의 랜드로버가 도로주행 퍼레이드를 펼친 것이다. 여기에는 랜드로버 시리즈1부터 시리즈3까지, 레인지로버 1~4세대, 디스커버리 1~5세대를 비롯해 특별한 기념모델, 세계일주차, 경찰차, 특수차 등 70대의 특별하고 기념비적인 랜드로버들이 오너들과 함께 참여했다. 


굿우드는 모터스포츠 이벤트로 출발한 행사 성격으로 참가모델에는 옛 경주차들이 많다. 여기서는 주로 올드 경주차 위주로 소개한다(몇몇은 90년대 모델도 있다). 굿우드에서 나온 많은 현대적인 차와 다양한 모델은 월간 <자동차생활> 2018년 9월호 기사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굿우드 한쪽에서는 90년대 BTCC에서 활약한 볼보 850 에스테이트 레이스카가 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율주행 레이스를 목표로 개발 중인 미래의 레이스카(로보카, Robocar)도 달린다

굿우드에 나온 올드 & 클래식 경주차들

BMW E36 V8 저드

콤팩트한 차체에 8기통 엔진은 튜닝 세계에서 그리 드문 조합이 아니다. 하지만 이 차의 심장은 조금 특별하다. 영국 저드(Judd)에서 제작한 진짜 레이싱 엔진이기 때문. 독일 출신의 힐 클라이머 게오르그 플라자는 BMW 3시리즈 쿠페 보디에 저드의 KV675 엔진을 얹어 하나뿐인 힐클라임 머신을 만들었다. 르망 LMP675 클래스를 위해 개발된 V8 3.4L 엔진은 1만200rpm에서 550마력을 낸다. 플라자는 같은 엔진을 1시리즈에 얹은 후속작도 만들었지만 2011년 유러피언 힐클라임 챔피언십 시리즈 제8전인 코파 브루노 카로티(이탈리아 리에티)에서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포르쉐 911 RSR 핑크 피그

포르쉐와 애스턴마틴, 쉐보레, BMW 등 워크스팀이 격돌한 올해의 르망 GTE 프로 클래스. 치열한 결전의 승자는 분홍색 911 RSR이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포르쉐는 911 RSR 몇 대에 전설적인 경주차 컬러를 칠해 투입했는데, 이 차는 1971년 르망에 출전했던 917/20을 재현한 것이다. 일반적인 917과 달리 실험적인 공력 보디를 갖춘 917/20은 돼지 같이 생겼다는 혹평과 함께 ‘분홍 돼지(Pink Pig)’ 혹은 ‘주펜하우젠의 트뤼프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폰서인 마르티니의 허락을 받지 못해 대신 정육점에 걸렸을 법한 돼지고기 해부도를 그려 넣은 것이다. 원작은 1971년 르망 리타이어가 경력의 전부지만 911 RSR 핑크 피그 버전은 올해 르망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다.

포르쉐 961

1980년대 초 수퍼카 959를 개발 중이던 포르쉐는 경주차 버전을 만들어 다양한 신기술을 실험했다. 여기에는 다카르 랠리에서 우승한 랠리 버전 외에 서킷 레이싱을 위한 961도 있었다. 1986년 르망 24시간 IMSA-GTX 클래스에 엔트리한 961은 959용이 아닌 그룹C 경주차용 엔진(수평대향 6기통 2.8L 트윈터보)에 뒷바퀴 배분량을 키운 4WD 시스템을 얹었다. 날씨 변화가 심한 르망에서 네바퀴굴림의 이점을 살린 961은 그룹C 경주차 사이를 뚫고 종합 7위에 올랐다. 당시 1~10위 가운데 8위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르쉐였다. 이어서 출전한 데이토나 24시간과 이듬해 르망 24시간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싱어 포르쉐 911

클래식카 문화의 장르 중 하나인 레스토 모드는 옛 디자인을 최신 기술로 즐기는 데 매력이 있다. 오래된 차를 직접 타는 데서 오는 불편함을 피해 보다 편하게 즐기겠다는 의도다. 캘리포니아에서 포르쉐 복원과 개조를 전문으로 하는 싱어(Singer) 비클 디자인은 오래전 단종된 공랭식 포르쉐를 새롭게 만들었다. 911 터보 엔진의 아버지 한스 메츠거와 윌리엄즈 엔지니어링의 협력으로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4.0L 엔진을 개발했고, 차체는 964를 바탕으로 초창기 911의 디테일을 더했다. 포르쉐가 만들지 않았음에도 누가 보아도 포르쉐인 이 차를 싱어에서는 Reimagined Porsche 911이라고 부른다.

포드 시에라 코스워스 RS500

1980년대 중형차 포드 시에라의 쿠페형에는 RS 코스워스라는 고성능 버전이 있다. 코스워스는 포드 핀토 엔진을 기반으로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 YB를 개발했는데, 양산형에서 180마력, 레이스 세팅으로 300마력 이상을 냈다. 1985년 시에라 RS 코스워스가 발표되고 2년 후 더욱 강력한 RS500이 공개되었다. 터보차저와 인젝터, 냉각장치 등을 폭넓게 손봐 기본형에서 227마력, 레이스 사양에서 500마력 이상이 가능했다. 굿우드에 나온 차는 1988년과 89년 영국 투어링카 챔피언십에 엔트리했던 칼리버 레이싱의 시에라 RS500. 2년 연속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3위, 클래스 1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닷지 차저 #43 나스카

애니메이션 ‘카(Cars)’에서 ‘킹’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파란색 플리머드 수퍼버드는 나스카(NASCAR)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리처드 페티를 모델로 삼았다. 나스카의 전설인 스타를 상징하는 자동차는 여럿 있지만 70년대에는 단연 닷지 차저였다. 1972년부터 77년까지 35승으로 3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STP가 새로운 스폰서가 되면서 오렌지(STP)와 블루(페티)가 조합된 새로운 보디 컬러가 이때 완성되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STP는 무려 28년간 페티를 지원했기 때문에 오렌지/블루는 오랫동안 리처드 페티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여겨졌다.

마쓰다 3세대(FD) 쿼드 로터 RX7

RX-7 3세대(FD) 차체에 70년대 사반나의 헤드램프와 그릴을 붙인 이 차는 일명 ‘매드 마이크’라 불리는 마이크 휘테트의 드리프트 머신이다. 타이어를 미끄러뜨릴 충분한 힘을 얻기 위해 선택한 심장은 쿼드 로터 로터리 엔진. 마쓰다에서 양산한 로터리 엔진은 싱글과 트윈, 트리플까지였고 쿼드 로터는 레이싱카용 뿐이다. 대신 쿼드 로터 엔진을 직접 제작하는 외부 업체들이 존재한다. 이 차 역시 펄스 퍼포먼스(PPRE)에서 제작한 쿼드 로터 엔진을 얹고 있다.

치타 쉐보레

포드 엔진을 얹은 캐롤 쉘비 코브라는 페라리 250GTO와 함께 1960년대 미국 서킷을 휩쓸었다. 당시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간 신사협정에 의해 워크스 활동이 불가능했던 GM은 콜벳 튜닝으로 유명한 빌 토마스에게 코브라 타도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쉐보레의 은밀한 지원을 받은 그는 치타(Cheetah)라는 이름의 오리지널 경주차를 개발하게 된다. 극단적인 롱노즈 숏데크 보디에 콜벳용 V8 327 스몰블록 엔진을 얹은 이 차는 최고시속이 344km에 이르렀고, 횡가속도는 1.18g나 되었지만 실제 코너링은 매우 까다로웠다. 운전석이 쉽게 뜨거워지고 도어가 뜯겨나가는 문제도 있었다. 원래 100대 생산을 계획했다가 매장 화재사고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생산대수는 16~23대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매우 희귀한 차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혼다 RA301

1968년 F1에 투입된 RA301은 전작 RA300과 마찬가지로 영국 롤라와 공동개발을 통해 완성되었다. 당시 혼다는 RA302 개발에 몰두하느라 RA300을 개량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원래대로라면 RA302 투입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런데 제6전 프랑스 그랑프리에 준비된 RA302는 출력 저하와 오일 누유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감독 판단으로 출전이 보류되었던 RA302는 정치적 이유로 결승 레이스에 나가 드라이버 조 슐레서가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결국 RA301이 그해 최종전까지 투입되었다. 이후 혼다는 F1 퇴진을 선언했고, 2016년 RA106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이 차가 혼다의 마지막 F1 머신이었다. 굿우드에서는 젠슨 버튼이 이 차를 운전했다.

재규어 XJR9 LM

1980년대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통해 재규어와 인연을 맺은 톰 워킨쇼 레이싱(TWR)은 내구 레이스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토니 사우스게이트가 설계하고 TWR이 제작한 XJR-9은 재규어를 위한 그룹C 경주차. 최고출력 750마력을 내는 V12 7.0L 엔진을 미드십에 얹었다. 1988년 데뷔해 그해 르망 24시간 포함 6승으로 내구 선수권 챔피언 타이틀을 모두 손에 넣었다. 특히 얀 라머스, 조니 덤프리스, 앤드 월레스의 르망 승리는 재규어가 1957년 D타입 이후 오랜만에 거둔 쾌거였다. 기어박스 고장으로 최종 2랩은 4단으로만 달려야 했지만 포르쉐 세력을 누르고 승리를 차지했다.

롤라 쉐보레 T400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F5000은 1968~81년 사이 미국과 오세아니아, 영국, 남아공 등에서 개최되었던 염가형의 오픈휠 포뮬러 시리즈다. 5000은 V8 5.0L 엔진을 의미했다. 영국 롤라(Lola)의 T400은 성공작인 T332의 후속작으로 1973년 데뷔했다. 특히 아웃보드 타입이던 앞 서스펜션을 인보드 타입으로 바꾸는 등 매우 정교하고 앞선 설계였다. 반면에 완전히 새로운 구조였기 때문에 프라이비트팀은 세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일부 팀은 T400을 버리고 구형인 T332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었다. 유럽 시리즈에서 테디 필레트가 이 차로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올랐다.

롤라 포드 T370

F1 챔피언 출신의 그레이엄 힐은 자신의 팀인 엠버시힐(Embassy Hill)을 결성해 F1에 직접 엔트리했다. 오리지널 섀시를 완성하기 전까지 영국의 컨스트럭터 롤라(Lola)에게 경주차를 의뢰했는데, 이것이 바로 롤라 T370이다. 바탕이 된 F5000 머신과 비슷한 외형에 운전석 뒤로 거대한 에어박스를 갖추었다. 드라이버는 그레이엄 힐과 가이 에드워즈. 이 차는 1974년 데뷔해 후속작인 T371(힐 GH1이라고도 불렀다)이 등장하기 전인 이듬해 모나코까지 사용되었지만 전투력은 형편없었다. 74년 스웨덴에서 그레이엄 힐이 거둔 6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다.

마세라티 티포 420M/58 엘도라도

이 차는 1958년 몬자 500마일(Race of Two Worlds)에 참가하는 스털링 모스를 위해 제작되었다. 마세라티 250F의 튜블러 섀시에 450S의 프론트 서스펜션을 조합하고 몬자 오벌 코스를 고려해 V8 4.2L 엔진과 변속기는 왼쪽으로 빗겨 배치했다. 아울러 모터스포츠 이외의 일반 스폰서를 받은 유럽 최초의 경주차로도 유명하다. 아이스크림 회사인 엘도라도(Eldorado) 젤라티의 오너 지노 자네티의 스폰서를 받아 제작된 이 ‘마세라티 티포(Tipo) 420M/58 엘도라도’는 이탈리아 내셔널 컬러인 빨간색 대신 흰색을 칠했고, 차체 곳곳에 엘도라도 로고와 엠블럼을 그려 넣었다. 스털링 모스는 3개로 나뉘어 열린 경기의 최종 히트에서 사고로 리타이어했음에도 종합 7위로 경기를 마쳤다.

아바스 3000 SE022

1949년 창업해 피아트를 바탕으로 경주차를 제작하며 명성을 쌓은 아바스(Abarth)는 1971년 피아트에 인수되어 현재는 고성능 라인업 이름으로 쓰인다. 이 차는 아바스가 독립 회사이던 시절 마지막으로 발표한 레이싱 프로토타입으로 1968년 등장했던 3000의 발전형이다. 미드십에 얹은 V8 3.0L 엔진은 최고출력 365마력. 폭이 좁은 튜블러 프레임에 낮은 윈드 스크린을 달았으며 운전석을 더욱 앞으로 배치한 것은 힐클라임을 의식해서다. 요하네스 오르트너는 이 차로 1971년 유러피언 힐클라임 챔피언십(EHCC)에서 스포츠카 클래스 챔피언이 되었다. 아바스는 이후 자동차 부문이 피아트에, 레이싱 부문은 오셀라에 분할 매각되었다.

베네통 B192

특징적인 컬러가 인상적인 이 차는 패션 브랜드 베네통(Benetton)이 톨레만을 인수해 만든 베네통 포뮬러의 1992년 머신. 미하엘 슈마허가 이 차를 타고 생애 첫 F1 승리를 거두었다. 1992년 제12전 벨기에 그랑프리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통에 피트인 눈치작전이 치열했다. 3그리드에서 출발한 데뷔 2년차 슈마허는 정확한 판단력으로 30랩에 슬릭 타이어로 교체, 4랩 후 선두로 나섰다. 결국 나이젤 만셀, 리카르도 파트레제, 마틴 브런들, 아이르톤 세나 등 쟁쟁한 라이벌을 누르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데뷔 18전 만에 거둔 슈마허의 첫 F1 승리였다.

채퍼렐 2K

기발한 아이디어로 경주차를 만들던 채퍼렐(Chaparral)은 2J가 캔암에서 금지된 후 한동안 신차 개발에서 손을 뗐다. 무려 9년 만에 내놓은 2K는 인디 머신이었다. 훗날 맥라렌에 들어가 전설적인 경주차 MP4 시리즈를 탄생시키게 되는 존 버나드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는 F1에서 유행하던 그라운드 이팩트 디자인을 활용해 이 차를 디자인했다. 구동계는 코스워스의 V8 2.65L 터보 엔진에 4단 변속기를 조합했다. 노란색 펜조일 컬러 때문에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2K는 알 언서와 함께 3년간 6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조니 러더퍼드에게 1980년 인디500 우승컵과 카트 챔피언 타이틀을 선사했다. 사실상 채퍼렐이 만든 마지막 경주차다.

시티 오브 데이토나 비치 스페셜

1960년대 말 댄 거니는 영국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토니 사우스게이트에게 새로운 경주차 개발을 맡겼다. 인디 레이스를 겨냥한 4대의 신형 경주차는 로터스 56을 연상시키는 극단적인 쐐기형 보디에 브라밤 스타일의 서스펜션을 달고 있었다. 섀시 넘버 703은 나스카의 전설적인 엔지니어 스모키 유니크와 드라이버 조 레오나드가 ‘시티 오브 데이토나 비치 스페셜(City of Daytona Beach SPL)’이라는 이름으로 1969년 인디 500에 엔트리했다. 성적은 6위. 공식적으로 참가한 경기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08년 굿우드 이전까지 오랫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코탱 & 데스구트 GP-힐클라임

1904년 자동차 제작을 시작한 피에르 데스구트는 2년 후 부유한 사업가 시릴 코탱과 손을 잡았다. 회사 이름을 코탱 & 데스구트(Cottin & Desgouttes)로 바꾸면서 데스구트는 자동차 제작을 맡았고, 코탱은 회사 운영은 물론 레이서로도 크게 활약했다. 20세기 초 활약했던 이 프랑스 브랜드는 고급차와 스포츠카가 주력이었다가 경제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아 1933년에 문을 닫았다. 1911년 그랑프리 레이스를 위해 제작된 이 차(GP-Hillclimb)는 1911년과 1912년 벤투 미팅에서 2년 연속 승리를 차지했다.

글 자동차생활 이수진 편집장 

※ 풀 스토리는 월간 <자동차생활> 9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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