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 일진들은 맨날 뒷자리에 앉을까?
학창시절 일상 대부분을 보냈던 학교!
각자 자리가 있었죠.
크랩팀원들의 자리는 어디였을까요?
학창 시절에 어디 앉았어요?
"교탁 앞에 앉았던 것 같아요."
- 김다정/ 크랩 크리에이터
"교탁 앞에서 한두 번째 정도?"
- 정보성/ 크랩 크리에이터
"복도 쪽에 벽의 한 세 번째 정도?"
- 크랩 팀원
뒷자리는 누가 앉았어요?
"노는 친구들이 많이 앉았는데,
자리를 좀 많이 비웠어요.
사회봉사하러 나가서."
- 김다정/ 크랩 크리에이터
"보통 뒤에는 소위 말하는 일진들."
- 정보성/ 크랩 크리에이터
"일진들이 앉아서
사물함에 등 기대고 있었죠."
- 크랩 팀원
교실의 권력자였던 그들은
하나같이 가장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앉아보니
반 아이들의 뒷모습이
잘 보이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뒷자리 앉은 사람이
뭘 하는지 볼 수 없지만
대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죠.
이게 다 본능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원시시대에는
자기 몸을 숨기고자 하는 본능을 따랐겠죠.
난 안 보여야 되니깐."
-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생존본능의 기제가
교실이나 도시 환경 속에서도
원시시대의 본능이
그대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나를 드러내지 않고 뭐든 보려는
지극히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교실 뒷자리만 그런 걸까요?
수학여행 때 잘 나가던 친구들이
제일 먼저 사수한 버스 맨 뒷자리.
아침 회의 때마다 팀장이 앉는
테이블 끝 좌석도 마찬가진데요.
모든 사람을 시선에 두지만
자신의 뒤통수는 보이지 않는 이런 자리는
보통 권력과 통제력을 가진 사람의 차지였죠.
그렇다면 시선과 권력,
이 둘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1791년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은
판옵티콘이라는 건축물을 설계합니다.
중앙에 높은 감시탑에는 간수가 있고
탑을 둘러싼 방 안에는
죄수들이 갇혀 있는 원형 감옥이었죠.
어두운 감시탑에서
간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데요.
간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죄수는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고 하죠.
철학자 미셸 푸코는
판옵티콘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시선이 곧 권력이다'는 명제를 끌어냅니다.
판옵티콘의 간수,
뒷자리를 좋아헀던 일진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볼 수 있을 때'
권력을 가진다는 거죠.
어쩌면 우리는
학교를 졸업한 지금까지도
시선의 권력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