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카톡 인사 문자의 경제학

조회수 2020. 1. 24. 12: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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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진심을 전한다




명절은 바쁘다. 음식 준비도 거들어야 하고, 시시각각 아빠를 찾아대는 딸내미 수발도 들어야 한다. 게다가 아무것도 안 하면서 TV만 보는 아버지는 왜 자꾸 나를 불러서 최신 스마트폰 기능을 물어보는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시각각 울려 되는 핸드폰에 신경이 쓰인다. 전 직장 동료들, 기업 담당자들, 선후배들에게 명절 인사 문자가 날아든다. 짧게라도 일일이 대꾸를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본다. 명절 인사 문자를 먼저 보내는 싸가지(?)까지는 챙기지 못하더라도, 받은 문자에 대답하는 싸가지는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없는 명절 연휴가 끝나고, 고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명절에 주고받은 문자의 내용을 살펴본다.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첫 번째 유형은 멋진 문구나 이미지형 문자이다. 전체의 절발 정도가 이렇 형태의 단체 문자다. 그 내용은 좋은데, 왠지 특별한 의미를 전하지는 못한다.




작년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올 한 해도 하시는 일 모두 잘되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000 배상-

물론 나를 생각해서 보내준 인사 문자이지만, 그렇게 썩 반갑지 만은 않다. 쇼핑몰이나 카드사 같은 곳에서 오는 문자랑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다. 왠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보낸 듯한 느낌에 분명 고마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100명 또는 1,000명 정도의 단체 문자 리스트 어딘가 쯤 내 이름이 위치해 있는 것 같아서, 내 존재감이 사그라 드는건 느낌적인 느낌인 걸까? 나 또한 메모장에 복사해 둔 텍스트를 그대로 붙여 넣어서 답장을 한다. 복붙 정도의 시간 투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유형은, 약 30%의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으로 첫 번째 유형의 문자에 내 이름을 끼워 넣는 유형이다.

ㅇㅇㅇ님. 작년 한 해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올 한 해도 하시는 일 모두 잘되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ㅇㅇㅇ 배상-

 


김춘수 시인의 꽃은 제대로 읽은 사람이다. 그나마 고맙다. 의미 없는 100명 중 1인이 아니라, 그래도 의미 있는 1인이 된 느낌이다. 비로소 내 존재감이 살아난다. 나에게만 보낸 특별한 문자라는 생각에 성심성의껏 답장을 한다. 이름을 헷갈리지 않고 보내기 위해 고민한 노력과 일일이 이름을 타이핑한 노력에 충실히 보답한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은, 나에 대한 의미를 담은 문자를 보낸 유형이다. 나와의 인연, 나만을 위한 덕담을 강조했다. 전체 유형 중 20% 정도를 차지한다.


ㅇㅇㅇ대표님. 지난 한 해 저희 회사에서 좋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도 더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건강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내가 받은 것은 3줄의 메시지이지만, 이 문자를 보낸 사람은 메시지 하나를 적으면서 최소 5분, 길게는 더 많은 시간 이상을 고민하고 나에 대해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진짜 고마웠던 일을 떠올리고, 진짜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세 가지 유형의 문자 중에 가장 기억나고 고마운 유형이다. 나 또한 고민하고 고심해서 정성껏 답장을 보낸다.



작년 한 해, 갈 때마다 항상 잘 챙겨 주시고, 편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올 한 해도 좋은 일 가득하고, 특히 목표로 하신 집필 활동에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을 전하는 방식도 다르다. 단체 문자 하나 보내주는 것만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정성스레 나만을 위한 문자를 받아도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요즘 같은 초연결 사회에 굳이 명절에 따로 인사 문자를 보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소에 잘하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데, 어찌 문자 하나 보내는 것에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이미지는 이제 그만 !




하지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고, 노력은 배반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의미하게 복붙으로 전달한 문자보다, 마음을 담기 위해 노력한 문자 메시지 하나는 분명 좀 더 의미 있는 설날 인사 문자로 기억될 것이다. 효율성은 편안함을 주지만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의 감동이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설날 문자의 경제학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인풋을 집어넣을수록, 그리고 고객(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담을수록 그 효과가 증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분명 복붙 문자의 몇배의 크기로 돌아올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작은 일로 사람을 평가한다. 사실, 설날 인사 문자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일 수 있는 작은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일이 상대방에게 나를 각인시키고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소소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검색창을 열고 설날 문자, 설날 인사 문구를 검색하기 전에 내 머릿속 기억창을 열고 그 사람에 대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문구를 고민하는 노력이면 충분하다. 진심을 전하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진심은 언제나 통하게 되어 있다는건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필자 : 임영균 (임영균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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