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k-plaza

옛 엘란 오너가 지금의 스팅어를 타 보면?

20대 때 엘란을 탔던 오너가 40대가 되어 지금의 스팅어를 타 보다.

22,630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1996년, 기아자동차가 작은 스포츠카 한 대를 내놓았다. 영국 로터스에서 생산 설비를 사들여서 기아차의 엔진과 기어박스를 얹은 2인승 로드스터 엘란이다. 기아 엘란은 조금 긴 미국 버전의 앞 범퍼와 200cc 큰 엔진을 덮기 위해 약간 높아진 후드, 그리고 기아가 새로 디자인한 인테리어와 알루미늄 휠, 리어램프를 달았다. 앞부분이 살짝 낮고 코가 짧은 영국 버전의 엘란보다 조금씩 길고 높아졌지만, 기아 마크를 단 엘란은 여전히 멋졌다. 스포츠카는 물론 로드스터도 전무했던 한국에서 엘란은 순수 스포츠카를 갈망했던 많은 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로터스 엘란과 기아 엘란
현재페이지1/총페이지2

우중충한 색상의 차들이 도로를 채우던 시절, 노랑과 빨강, 청록색 등 화려한 컬러로 치장한 ‘뚜껑 열리는 차’는 나를 홀리기 충분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에겐 2,750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너무나 멀어 손이 닿지 않았다. 대신 시내에 나갈 때마다 서울시청 앞 기아자동차 매장에 들러 엘란을 구경하곤 했다.

20대의 끝자락에 구입한 1997년형 엘란

출처한동옥

엘란의 키가 손에 쥐어진 것은 시간이 꽤 흐른 20대의 마지막 몇 달이 남았을 때였다. 외환위기를 피해서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한 뒤 잠시 현대 티뷰론을 타다가 상태가 좋은 엘란을 만나게 된 것. 1997년에 만들어진 검정색 엘란을 손에 넣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말이면 톱을 열고 나들이를 다녀오는 게 일상이었다
출처한동옥
현재페이지1/총페이지2

기대보다 빠르지 않고, 소프트톱 가장자리의 고무 씰에서 비가 새는 것으로 놀림받기도 했지만 엘란이 주는 재미와 만족은 대단했다. 주말이면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소프트톱을 접어 넣어 근교의 굽이진 길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엘란을 타며 경험한 일들은 이후의 카라이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페이지1/총페이지4

엘란이 출시된 해로부터 21년이 지난 2017년, 기아자동차는 뒷바퀴를 굴리는 고급 패스트백을 선보였다. 2.0L 터보 엔진으로 255마력을 내는 ‘스팅어’와 배기량만으로 이미 넉넉한 3.3L 6기통 엔진에 트윈터보까지 달아 370마력을 뿜어내는 ‘스팅어 GT’다. 이 중 2.0T 엔진에 AWD를 포함한 모든 옵션이 탑재된 이른바 ‘풀옵션’ 스팅어를 3일간 타볼 수 있게 됐다. 조금은 과한 것 같으면서도 잘 생긴 스팅어에 올라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이 차에는 정말 많은 기능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 온갖 버튼이 꽉 차 있다.

현재페이지1/총페이지4

스팅어는 요즘 차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각종 경고 장치 외에 내비게이션과 GPS를 기반으로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을 도와주는 HDA를 갖췄고, 이제는 소비자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통풍시트와 모니터에 주변의 360도 영상을 띄우는 서라운드 뷰도 포함된다. 빠진 게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차에 달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은 것 같다.

현재페이지1/총페이지5

그렇다면 엘란은 어땠나. 내가 탔던 엘란은 기본형에서 후드와 휠캡이 다르고, 투톤 컬러가 적용된 가죽시트와 우퍼가 포한된 오디오가 달린 고급형, ‘하이 버전’이었다. 그럼에도 운전석 에어백과 에어컨, 파워 스티어링 그리고 파워 윈도 외에는 생각나는 기능이 별로 없다. 센터페시아에는 의미 없는 빈 버튼이 몇 개 있었는데, 이곳에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열선시트 버튼을 넣은 게 엘란을 타는 동안 실내 튜닝 작업을 한 전부였다. 에어스카프 같은 호화장비 없이 등 따신 의자에 앉는 것만으로도 늦가을 낙엽을 맞으며 행복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었다.

현재페이지1/총페이지2

스팅어를 타는 동안 고속도로를 타고 멀리 드라이브를 가거나 굽이진 산길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스팅어의 동력 성능이나 주행 느낌은 이미 많은 시승기와 유튜브를 통해서 익히 알려진 탓이다. 대신 요즘 평소 타고 다니는 전기차를 주차장에 넣어두고 스팅어로 출퇴근과 외근을 나섰으며, 이케아로 쇼핑도 다녀왔다. 이 차는 데일리카로 쓰다가 때때로 오른발에 힘을 주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페이지1/총페이지2

한 동네에 40년 넘게 살고 있는 터라 오래전 엘란으로 넘었던, 못마땅한 과속방지턱들도 여전히 만나게 된다. 긴 차체의 스팅어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쉽게 넘어갈 정도로 운전자의 긴장을 풀어줬고, 실내 활용도 또한 뛰어났다. 뒤 유리와 함께 크게 열리는 트렁크 덕에 바퀴를 빼지 않고도 커다란 자전거를 너끈하게 실을 수 있었다.

엘란과 스팅어의 트렁크
현재페이지1/총페이지2

엘란도 로드스터치고는 트렁크가 무척이나 컸다. 전륜구동이면서 작은 톱을 콤팩트하게 수동으로 접기 때문에 트렁크 공간이 넉넉해진 것인데, 농담 삼아 로드스터계의 포터라고 부르곤 했다. 좌우로 긴 엘란의 트렁크에 ‘스트라이다’라는 접이식 자전거를 넣어 다닌 일도 있었지만, 스팅어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스팅어는 트렁크의 입구가 큰 덕에 큰 짐을 넣고 빼기가 무척 수월해서 시승 기간 동안 열심히 짐을 날랐다. 부피가 큰 건반을 박스채로 담아 배달했고, 범퍼 하단의 히치 마운트에 연결해 사용하는 크고 무거운 자전거 캐리어도 역시 박스 채 실어 옮겼다.

현재페이지1/총페이지4

이케아에서는 생각보다 작은 물건을 사서 실력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스팅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내 또는 가족을 설득할 때 “이 차는 매우 실용적이다”라고 주장하기에 충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용한 옵션이 많고, 뒷좌석 거주성 또한 나쁘지 않으니 실제로도 스팅어는 매우 실용적이다. AWD 옵션을 내세우면 요즘 자주 찾아오는 태풍이나 겨울철에도 안전하다고 강조할 수 있으니 설득력이 높아진다.

엘란의 1.8L 151마력 엔진과 스팅어의 2.0L 터보 255마력 엔진
현재페이지1/총페이지2

어느새 시간이 지나고 스팅어의 멋진 스마트키를 반납할 때가 됐다. 엘란과 스팅어. 사실 두 차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앞바퀴굴림의 자연흡기 소프트톱 수동기어 로드스터인 엘란과 뒷바퀴굴림 또는 AWD에 터보 엔진 그리고 자동변속기만을 쓰는 스팅어는 완전히 다른 차다. 실내 공간과 탑재한 옵션을 보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그러나 차의 형식이나 용도를 떠나 엘란과 스팅어는 모두 기아자동차가 처음 시도한 차종이자 소비자에게는 달리는 즐거움을 주는 차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차 모두 스포츠 DNA를 품고 있지만 엘란은 좀 불편하면서도 순수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반면, 스팅어는 달리는 쾌감을 전혀 불편하지 않게 누릴 수 있다. 특히 기대 이상의 실용성까지 갖춘 점은 스팅어의 반전매력이다. 엘란이 20대의 열혈 싱글이 타기에 적당하다면, 스팅어는 나이가 들어 가족이 있는 가장이 타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스포츠 세단이라 할 만하다.

21살, 내가 엘란을 처음 봤을 때의 나이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나 스팅어가 등장했다. 엘란과 같은 해(1996년)에 태어난 이들은 지금의 스팅어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있을까? 아마도 20여 년 전의 나처럼 ‘언젠간 가져야겠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20여 년 전 엘란과 함께 꿈을 꾸고 자동차 생활을 즐긴 청년들은 이제 모두 아재가 됐다. 나도 그렇고, 먼저 엘란을 즐긴 선배들도 그렇다.

출처한동옥

길을 가다 엘란을 만나면 여전히 반갑다. 문득 20년쯤 후의 스팅어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진다. 스팅어로 자동차에 대한 꿈을 키운 10대 또는 20대가 아재가 되는 그때는, 어쩌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만으로 거리가 채워질지도 모르지만, 스팅어와 함께한 추억은 여전할 것이다. 내가 지금 엘란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동옥(바이크왓 편집장) 사진 K-PLAZA 편집팀 촬영협조 지윤석

작성자 정보

k-plaza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