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공룡알? 들녘 위 이것, 우리 기술로 만듭니다

조회수 2021. 4. 18.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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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공룡알? 들녘 위 이것, 우리 기술로 만듭니다

농기계부품 국산화 나선 소부장 스타트업 ‘에그리조조’

“제조업 강국인데, 농기계는 왜 수입에 의존하나?”

맞춤형 기술로 가격은 낮추고 품질·서비스 높여

추수철 들녘에 놓인 압축 볏짚 ‘곤포사일리지’. /인터넷 화면 캡처

추수 끝난 들녘에 어린이 키만한 원통형의 하얀 물체가 듬성듬성 놓여있다.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어 대충 ‘그거’로 불리는데, 더러는 ‘마시멜로’ ‘공룡알’이라고도 한다. 볏단을 단단히 말아 포장한 것으로, 정식 명칭은 ‘곤포 사일리지’(Baling Silage)다. ‘베일러(baler)’라는 농기계가 추수 끝난 볏짚을 잘라 빨아들인다. 기계 안에서 둥그렇게 말아 비닐로 꽁꽁 싼다. 이렇게 볏짚을 밀폐시켜 발효하면 부가가치 높은 가축 숙성사료가 된다.


논에서 볏단을 싸는 기계건만, 베일러는 전부 독일·아일랜드 등 유럽산이다. 작은 부품 하나만 고장나도 수백만원은 예사로 깨진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스타트업 ‘에그리조조’가 베일러에 들어가는 소모성 부품 국산화에 성공했다. 지난해 베일러 부품 ‘드럼롤러(Drum Roller)’ 일부를 국산화해 ‘지역특화산업육성지원사업’(항공대)에 선정됐고, 올해 초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창업지원사업(청년창업사관학교)으로도 선정돼 드럼롤러 국산화를 준비중에 있다. 흔히 ‘소부장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데, 농기계 분야라니 흥미롭다. 창업자는 당연히 엔지니어 출신이거나 농업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조한석(39) 대표는 중동과 동남아를 누비던 해외 건설맨 출신이었다.


-건설맨과 농기계…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에그리조조 조한석 대표가 자신이 생산한 집초기 앞에 섰다. /jobsN

“해외영업에 끌린 것은 사람과 자원이 이동하며 벌어지는 다양한 경제활동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다. 2008년 두산건설에 입사하며 ‘해외영업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랬더니 진짜 바로 보내버리더라.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파견돼 지점 설립 업무를 지원했다. 2010년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철도건설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2012년부터는 두산중공업의 라빅(Rabigh) 발전소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내 업무는 간단하게 말해 ‘사람과 장비에 관한 모든 것’이었다. 필요한 인력을 구하고 중장비를 구매·임차해 통관까지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면서는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내 아버지 세대의 한국인들은 단순노무자로 중동에 와서 주로 필리핀인 십장(Foreman)의 지휘를 받아 일을 했다. 지금은 한국인이 EPC(대형 건설프로젝트의 원청사)가 돼서 필리핀인 십장을 지휘한다. 그런데 장비는 사정이 달랐다. 한국도 우수한 건설기계가 많지만, 핵심적인 건설 중장비는 여전히 북미·유럽의 업체들이 석권하고 있었다.”


-건설 기계에 대한 관심이 농기계로 이어진 것인가?


“고향이 김포다. 우리 집안은 김포평야에서 대대로 농업에 종사했다. 휴가 차 귀국해 고향 집에 가 일손을 돕는데 그제서야 아버지와 이웃 어른들이 쓰던 농기계가 보이더라. 유심히 보니 거의 모두 외산이었다. 건설 중장비는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었던 것이다. 제조업 강국이라면서 정작 농업기계분야는 낙후돼 있었다.”


-처음부터 기계를 제조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농기계 핵심부품이면서도 자주 파손되는 PTO샤프트. /인터넷 화면 캡처

“2016년 형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요 농기계에 들어가는 소모성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일을 했다. ‘PTO샤프트’란 부품이 있다. 트랙터의 회전 동력을 부속기로 전달하는 축(軸)이 바로 PTO샤프트다. 쉽게 마모되고 고장이 나는데, 농가에선 이러한 부품 구매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농기계 산업 규모 자체가 작고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비싼 경우가 많았다. 우린 가성비 우수한 제품을 찾아 이를 농가에 공급했다.”


-직접 소부장 기업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언제인가?


“농기계 사업을 하면서 농기계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외 농기계가 한국에서 유독 잘 고장이 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유럽산 A기계의 철판 두께는 3.0로 나오는데, 한국의 논 지형에선 3.5가 적당하다’ ‘B기계의 축은 크롬망간강(鋼) 정도로는 부족하고 티타늄을 섞어야겠다’ 같이 말이다. 우리가 직접 한국형 부품을 제조해 품질을 끌어올리면서도 가격 경쟁력도 갖출 수 있겠다 싶었다. 여기에 서비스 향상은 덤이다. 해외 업체로부터 AS 받는게 쉽지 않다.”


-엔지니어 출신이 아닌데, 제조는 어떻게 했나?

베일러를 통해 곤포 사일리지를 만드는 과정. /인터넷 화면 캡처

“처음에는 회사가 위치한 공단의 이웃 업체 사장님들을 많이 괴롭혔다. 내 아버지뻘인 60~70대 사장님들이다. 청춘을 바쳐 한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든 상급기술자들이다. 젊은 사람이 제조를, 그것도 농업 분야에 뛰어든다니 기특하게 봐주신 것 같다. 에그리조조에는 기술고문이 계시다. 원래 바로 옆 공장을 운영하셨던 분이다. 연세가 드셔서 사업을 정리하시려는데, 내가 삼고초려를 해 모셨다. 이런 상급기술자들이 은퇴를 하며 훌륭한 기술이 사장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지금은 집초기(集草機)나 베일러에 들어가는 부품 위주지만 앞으로 다양한 장비를 국산화할 계획이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우 농업 기계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형 농기계가 동남아의 농지에서 활약하게 만들고 싶다. 고용도 중요한 포인트다. 단순히 일자리를 늘린다는 측면보다 ‘세대 연결’의 측면에서 보고 있다. 실제 우리 회사의 기술인력은 방금 말씀드린 70대 기술고문과 20대 기술자로 구성돼 있다. 제조강국 한국의 우수한 노하우를 청년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글 jobsN 김충령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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