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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특전사 복무한 그가 돌연 가수로 변신한 이유

조회수 2021. 4. 4.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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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특전사 복무한 그가 돌연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이유
트로트 가수 박군
데뷔곡 ‘한잔해’ 안무 해외서도 따라해
‘미우새’ ‘강철부대’ 등에서 활약 이어가

스무살에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다. 힘들기로 악명 높은 특전사에 입대했다. 1년 365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훈련을 견디며 육해공을 아우르는 특전 요원으로 거듭났다. 특전사에서 최고 정예 팀으로 뽑히는 성과도 냈다. 15년이 지나 스무살 청년은 상사 계급장을 단 30대 중반이 됐다. 말 그대로 청춘을 국가에 바친 셈이다. 그러던 그가 4년만 더 복무하면 받을 수 있는 군인연금을 포기하고 2020년 5월 군복을 벗었다. 다름 아닌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2019년 9월 트로트 곡 ‘한잔해’로 데뷔한 박군(본명 박준우·36)이다.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 채널A ‘강철부대’ 등에서 활약 중인 그는 기자와도 인연이 있다. 2014년 UAE군사훈련협력단(아크부대) 7진 소속으로 파병을 함께 다녀왔다. 그는 특전 요원으로, 기자는 지휘관 운전병으로 중동에서 6개월을 함께 보냈다. 당시 ‘박 중사’였던 그는 간부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병사들에게 항상 먼저 말을 걸어주는 동네 형 같은 특전사였다. 그래서 최근 들려오는 그의 활약상이 더 반가웠다. 7년 만에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박군을 다시 만났다.

출처: 박군 제공, jobsN
아랍에미리트 파병 시절 박군(왼쪽), 기자와 함께 찍은 사진.

◇특전사 시절에도 양로원에서 노래 봉사해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불러 주셔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데뷔곡 ‘한잔해’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유튜브에서 650만이 넘었어요. 러시아와 아프리카 등 외국에서도 안무를 따라한 영상이 올라오는데요. 데뷔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 줄은 몰랐어요. 이제는 꽤 많은 분이 길에서 알아봐주세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스무살 때 특전사에 입대해 15년을 복무했습니다. 이유가 있었다고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중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께서 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고 학교에 갔어요. 약값이 필요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벌어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리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스무살에 바로 직업군인으로 입대했습니다.”


-데뷔한 사연이 독특합니다. 군 생활 도중 오디션을 봤다고요.


“인터넷에서 우연히 트로트 곡 ‘한잔해’를 부를 가수를 뽑는 오디션 공고를 봤어요. 주말이나 개인 시간을 활용해 노래 연습을 하고 영상을 보냈는데, 운 좋게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그때가 2019년 7월이에요. 2개월 정도 준비하고 9월에 싱글 앨범이 나왔죠.”

출처: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는 아프리카, 러시아 등에서 ‘한잔해’ 안무를 따라한 영상이 올라온다.

-원래 가수가 되고 싶었습니까.


“막연한 꿈이었어요. ‘내가 어떻게 가수를 하겠냐’ 이런 생각으로 살았죠. 가수를 하려고 따로 노래를 배운 적도 없어요. 그저 노래가 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부대에서 행사가 있으면 장기자랑에 나가 노래를 불렀어요. 뜻깊은 일도 했습니다. 군 시절 주말에 따로 짬을 내 양로원을 찾아 다니면서 노래를 불러 드리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전역 결정을 두고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을 것 같습니다.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가수 데뷔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단 주변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죠. 선배님들은 후배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쓴소리도 많이 하셨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데, 사회에서도 더 힘들다는 연예계에 왜 발을 들이려 하느냐고 말렸죠. 술 한잔 하면서 후배들한테 하소연도 많이 들었어요. 형님이라 부르며 ‘같이 즐겁게 근무하고 있는데, 우리를 두고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욕을 하면서 화까지 내더라고요.”


-그럼에도 전역을 결심한 이유는 뭡니까.


“이번 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만일 포기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전역을 결정했습니다.”

출처: 채널A Entertainment 유튜브 캡처
3월23일 첫 방영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에 출연하는 박군.

◇고공·해상침투는 기본···특전사 탑팀 선정도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특전사 시절 익힌 다양한 기술을 보여줬습니다.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겨울에는 스키 훈련과 혹한기 훈련을 함께 했고, 봄이 되면 산을 타고 암벽을 오르는 고등산악훈련을 했어요. 예를 들어 육상으로 적지에 침투할 때 암벽을 만나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배우는 거예요. 여름에는 해상침투훈련을 합니다. 연중 이런 훈련이 이어져요. 개인적으로는 바다에서 전천후 임무 수행이 가능한 최정예 특전요원이란 뜻이 담긴 컴뱃 다이버(combat diver) 교육을 수료했습니다. 또 공수(空輸) 교육을 받으면 낙하를 할 수 있는데요. 저는 특전 요원들이 장비를 착용할 수 있게 돕고 낙하할 지역을 항공기 바깥으로 확인하는 등 강하조장 역할을 익히는 점프마스터(jumpmaster) 훈련도 수료했어요. 쉽게 말해 육해공 모두에서 작전할 수 있는 훈련을 다 받았죠.”


-특전사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군대에 있을 때 딱 3번 울었습니다. 한 번은 사적인 이유였는데, 나머지 두 번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전사에서는 매년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 ‘탑팀(top team)’을 선발하는 대회가 열려요. 특전사 예하 7개 여단 580개 팀 가운데 최강자를 뽑습니다. 사격·특전체력·주특기·종합전술훈련 등 다양한 종목을 평가하는데요. 2008년 중사 때 저희 팀이 1등을 했어요. 1등이란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어요. 말 그대로 통곡을 했습니다. 1년 동안 팀원과 고생하면서 힘들게 준비했거든요. 일과 시간에 기본적으로 받는 훈련을 모두 소화하고 따로 준비한 대회였기 때문에 의미가 더 컸어요. 정말 기뻤습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운동선수들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겠더라고요.

출처: 본인 제공
특전사 시절 박군.

해상척후조(해상으로 침투할 때 본대가 상륙하기 전 먼저 상륙 지역을 정찰하고, 통로를 개척해 본대를 유도하는 요원) 교육을 받을 때도 기억이 나요. 2009년 여름 8주 동안 교육을 받았는데, 시작하자마자 맨몸에 오리발만 차고 거리 측정을 해요. 동해는 7~8월에도 물이 차가운데요. 이때 물 온도가 유난히 더 낮았습니다. 목욕탕 냉탕 수준이었어요. 너무 추운데도 이를 악물고 수영을 했어요. 마지막 100m를 앞두고는 너무 기뻐서 물 속에서 울었어요. 막 울고 있는데, 물안경 압력 때문에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이 경험도 지금까지 기억이 납니다.”


◇군 시절에는 힘들 때, 요즘은 행복할 때 어머니 떠올라


-지금도 꾸준히 몸 관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활동이 바빠져서 예전만큼은 못해요. 그래도 낙산공원 정상까지 산악뜀걸음으로 올라가 정상에서 맨몸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짬을 내기 힘들면 팔굽혀펴기·윗몸일으키기·턱걸이 같은 기본 운동을 하루 1시간, 못해도 30분은 꼭 합니다. 몸매 관리보다는 체력이나 건강 관리 차원으로 하고 있어요.”


-요즘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날 것 같습니다.


박군의 어머니는 그가 22살이던 2007년, 7년의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을 당시 의사는 앞으로 7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다.


“군 시절에는 힘들 때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요즘은 행복할 때 종종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요. 제가 열심히 방송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해 하실까 싶죠. 행사 때문에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항상 어머니가 함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출처: 토탈셋 제공

-요즘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모든 게 낯설고 생소해요. 돌아보면 직업군인 생활도 첫 8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이돌처럼 오랜 기간 연습하고 데뷔한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도, 힘든 점도 많아요. 하지만 군에 있을 때처럼 열심히 배우면서 경험을 쌓다 보면 8년 차쯤엔 베테랑처럼 후배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가수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가수로 활동하고 싶습니까.


“롤모델이 장윤정 선배님이에요. 언젠가 선배님같은 위치에 올라가면 남에게 베풀고, 누군가 힘들 때 손 내밀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신인이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전국의 어머님들께서 많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바쁘게 활동하고 있어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지금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서 꿈을 향해 달려 나가겠습니다. 그게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해요.”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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