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했던 안내 방송 바꾼 '지하철 DJ'입니다

조회수 2021. 3. 17.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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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 DJ "연말 이후 방송 못할지도", 왜?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혹시나 오늘 힘든 일이 있었다면 지하철 선반에 올려두세요. 제가 차고지 가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2017년 봄 2호선 열차에 탄 사람들이 들은 지하철 방송이다. 과거 지하철 방송은 딱딱하고 천편일률적이었다. ‘이번 역은 ○○역입니다. 내리실 때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역은 ○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17년 한 승무원이 승객들과 인간적으로 소통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뒤 지하철 방송이 확 달라졌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세상을 조금 바꾼 그의 이름은 이상헌(30). 별명은 지하철 DJ다.

출처: 본인 제공
2호선 이상헌 차장

-어떤 일을 하는지


“1~4호선 지하철을 운행하는 직책은 기관사랑 차장이 있다. 기관사는 주로 운전을 담당한다. 차장은 그 외 모든 일을 맡고 있다. 출입문 개폐, 냉난방 가동, 안내방송 모두 차장의 업무다. 처음 일을 하면 차장으로 일한다. 차장에서 경력이 쌓이면 기관사가 된다. 비행기로 따지면 기장과 부기장과 같다. 입사 6년 차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라디오 DJ처럼 지하철 방송을 하기 시작한 계기는


“승객들은 무표정으로 열차를 타고 내린다. 그저 각자의 핸드폰만 본다. 또 모든 지하철 기관사 멘트가 똑같았다. “이번 역은 ○○역입니다. 내리실 때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역은 ○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습니다” 등 모든 방송이 기계 같았다. 현실이 삭막하게 느껴졌다.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는 사람이다. 승객들도 사람이다. 승객들에게 인간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2016년 여름 처음 틀을 깬 방송을 했을 때 많이 혼났다. 안내방송 멘트가 정해져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정해진 멘트를 벗어나면 안 됐다. 당시 회사는 다나까체를 사용할 만큼 딱딱한 문화였다. 승객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고 싶었다. 교육을 마치고 첫 근무 때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호선 승무원 이상헌입니다. 처음으로 하는 일은 언제나 떨림과 설렘을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처음으로 혼자 운행하는 날인데요. 처음이란 이 순간을 잘 간직하며 항상 안전운행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많이 혼났지만, 승객 반응은 좋았다. 방송 후 교통공사 게시판에 ‘재밌었다’, ‘축하한다’ 등의 칭찬 글이 30~40개 정도 올라왔다. 회사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이후 자유롭게 방송 멘트를 해도 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지금은 다른 기관사들도 승객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본인 제공

-주로 말하는 내용은


“날씨에 대해 말한다. 현대인들은 바빠서 날씨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다. ‘내일 온도가 영하로 떨어질 예정이니 따뜻하게 옷을 입어라’, ‘눈이나 비가 올 것으로 보인다. 우산을 챙겨라’, ‘미세먼지가 심하니 마스크를 착용하면 좋겠다’ 이런 내용이 많다. 또 한강을 건널 때는 ‘창밖에 맑은 하늘을 보자’고 말한다.


4월 초에는 벚꽃이 예쁘게 핀다.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신대방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벚꽃을 볼 수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승객들이 벚꽃을 즐길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선배 기관사에게 지하철을 조금 천천히 운행하자고 말했다. 벚꽃이 핀 구간을 지날 때 “벚꽃을 구경하며 좋은 날씨를 즐기면 좋겠다고”고 방송했다. 오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많은 승객이 좋아했다. 잠시나마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방송은


“항상 좋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승객이 지하철에 냉난방을 조절해 달라고 민원을 넣을 수 있다. 모두가 더위를 느끼는 온도에서 승객 한 분이 에어컨을 꺼달라고 계속 민원을 넣었다. 이때 사이다 발언을 날렸다.


보통 지하철 내부 온도는 21도다. 출퇴근 시간 때는 지하철에 3000명 정도가 탄다. 사람 열기 때문에 지하철 내부 온도가 올라간다. 하루는 지하철 온도가 30도 가까이 올라갔다.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어 체감 온도는 더욱 높다. 당연히 냉방을 가동했다. 하지만 승객 한 분이 춥다고 에어컨을 꺼달라고 수차례 민원을 넣었다. 조금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 열차 내에 춥다고 하는 ‘한 분’이 계십니다. 객실 온도 30도로 모두가 덥다고 느끼는 상황에 혼자 춥다고 느끼시는 분은 본인이 옷을 챙겨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승객이 공감했다. 한 승객은 방송을 녹음해 ‘오늘같이 더운 날 지하철 춥다고 민원 들어와서 기관사 화난 듯’이란 제목의 글을 커뮤니티와 SNS에 올렸다. 많은 사람이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기관사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하다”

출처: 에펨코리아 캡처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상헌 승무원의 멘트

-기억에 남는 승객은


“장문으로 감사 글을 올리신 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혹시나 오늘 힘든 일이 있었다면 지하철 선반에 올려두세요. 제가 차고지 가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승객이 방송을 듣고 힘이 났다고 감사 글을 올렸다. 글에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지하철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데 마침 응원 안내방송이 나온 것이다. 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또 수능이 끝나고 주말에 대입 시험이 많은 것으로 안다. 1년 동안 고생한 수험생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불안해하지 말고 편하게 시험 보고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날 한 학부모께서 감사의 글을 보냈다. 시험을 보기 전에는 합격과 불합격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했다. 방송 덕분에 학부모와 자녀 모두 긴장을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큰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힘든 사람에게는 위로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 그들에게 힘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에 남는다. 직장인, 학생, 그 외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지친 하루를 달래주고 고생했다고 응원하고 싶다. 그들이 지하철에 힘든 짐을 놓고 내리면 좋겠다.”


-기관사가 되기까지 과정은


“기관사가 되기 위해서는 철도 면허 자격증을 따야 한다. 철도 면허를 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철도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면 학교프로그램에 맞춰 자격증을 딸 수 있다. 하지만 철도대학에 진학하기는 어려웠다. 학창 시절 아버지가 아프셔서 학업에 전념하지 못했다. 또 집안이 어려워 대학에 가기 힘들었다.


다른 하나는 서울메트로 인재개발원과 같은 철도 면허 교육기관에 들어가는 것이다. 철도 관련 전공자가 아니어도 인재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면허증을 딸 수 있다. 그래서 빠르게 군 복무를 마치고 서울메트로 인재개발원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인재개발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봐야 했다. 과목은 물리와 철도안전법이었다. 문과 출신이어서 물리가 어려웠다.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때부터 미리 공부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물리 인터넷 강사 정승제 선생님 강의 촬영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분이 무료로 교재를 주시고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전역 후에는 인재개발원 시험을 준비했다. 1년 정도 열심히 준비했다. 다행히 한 번에 합격했다. 인재개발원에서 6개월 정도 교육을 받아 철도 면허 자격증을 땄다.”

출처: 본인 제공

-앞으로 계획은


“우선 올해 말 순차 발령 이후 필기·실기평가가 있다. 열심히 준비해서 기관사로 진급하면 좋겠다. 하지만 차장에서 기관사로 진급하면 안내방송을 하지 못한다. 승객과 직접 교류하지 못해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그래도 그 위치에서 다른 방법으로 승객을 마주하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항상 따뜻함이 넘치는 지하철을 운행하고 싶다.


길게 봤을 때는 무사고 기관사가 되고 싶다. 지하철은 많은 사람의 이동수단이다. 승객에게 힘을 주는 기관사, 따뜻함을 전하는 기관사 모두 좋다. 하지만 기관사의 가장 큰 업무는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것이다.”


글 jobsN 이상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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