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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몸으로 꿀 팔러 다니던 20대, 30년 후..

조회수 2021. 7. 7. 15: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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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양손에 벌꿀 들고 다니던 이 사람은 30년이 지난 지금

피나무 꽃.벌꿀 유통업체 ‘다드림’ 신동이 대표
방문 판매로 시작해 B2B·B2C로 사업 확장
“품질 좋은 꿀 지속적으로 공급하고파”

30여년 전, 양손 가득 꿀 박스를 든 채 하루에 10km 넘게 걸어 다녔다. 별일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릴 때 척추 결핵을 앓아 스무살 즈음부터는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장애인에 대한 시선과 편견은 여전했고,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일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난해 연매출 35억원을 기록한 다드림 신동이(57) 대표의 이야기다.  
다드림은 전국에 꿀을 유통하는 벌꿀 유통업체다. 전국 200~300개의 농가에서 1000드럼, 약 200톤 정도 되는 양의 꿀을 공급받아 등급에 맞게 꿀을 분류하고, 소규모 단위로 포장해서 판매하는 게 다드림의 역할이다. 지난해부터는 온라인으로 직접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B2C(Business to Consumer)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다드림 신동이 대표(오른쪽)와 그의 아들 신인섭 주임. /다드림

◇방문 판매로 시작→병상에 누워서도 제품 카탈로그 보내

신 대표가 벌꿀업에 발을 들인 계기는 부모님이었다. 양봉업에 종사하시던 부모님 덕분에 벌과 꿀에 흥미를 느꼈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판로였습니다. 꿀 생산은 많이 되는데 꿀을 팔 곳이 없었죠. 부모님뿐 아니라 주변에 다른 양봉업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벌꿀 판로를 개척하고, 전국적으로 질 좋은 꿀을 유통해보자는 생각에 벌꿀 유통으로 방향을 정했어요.”  

-시작은 방문 판매였다고.   

“농가를 섭외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판매처를 찾는 게 문제였죠. 동네 마트나 건강원부터 문구점까지 가리지 않고 꿀을 팔 수 있을 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열 군데 넘게 방문해 꿀을 단 1개도 팔지 못한 날도 허다했지만, 굴할 수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몸이 불편한 만큼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소규모로 시작해 회사를 점점 키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고, 여러 사람을 알게 되면서 농협과도 거래를 시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무리해서 몸을 쓴 탓에 곧 위기가 닥쳤다. 사업을 시작한 후로 매일같이 10시간 넘게 돌아다닌 탓에 몸에 무리가 왔다. 걸을 때마다 느끼는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무엇인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TV에서 명의로 소개된 한 대학병원 교수를 찾아갔고, 1996년도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받은 후 한 6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죠. 지금은 모르겠는데 당시는 상공회의소에 가면 전화번호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상공회의소에 등록된 회사나 업체 주소, 전화번호 등이 나와 있었죠. 그래서 침대에 누운 채로 전화번호부를 확인하고, 편지 봉투에 주소를 쓰는 것을 반복했어요. 그 안에 제품 소개 등이 적힌 카탈로그를 넣고, 우표를 붙이는 것까지게 제 일이었죠. 움직일 수 없는 저를 대신해 직원들이 이를 우체통에 넣어주곤 했죠.”

강원도 지역을 방문해 벌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신 대표(오른쪽). /다드림

◇6~7년 동안 혼자 회사 운영하며 버티자 새로운 기회 찾아와

병상에서도 쉬지 않았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카탈로그를 보고 실제 연락을 해오는 곳이 늘었다. 그중 한 회사는 공장까지 방문해 본 후에 실제 계약을 맺었고, 덕분에 한 달에 수천만원대였던 매출이 10배 가까이 뛰었다. 하지만 신 대표는 6~7년 후 다시 두 번째 위기를 맞이했다.   

“수술 후 5년 넘게 매출이 좋았습니다. 힘들어도 열심히 일할 수 있었죠. 사업이 잘 풀리다 보니 욕심도 생겼어요. 250평 부지 공장을 임대해 쓰고 있었는데, 그동안 모은 돈으로 1600평대 땅을 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해당 땅은 언제까지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어렵게 땅을 샀는데 또 곧바로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죠. 회사 재정이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어떻게 극복했나.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모아 급한 불은 막았는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어요. 꿀을 아무리 팔아도 고정 지출과 대출 이자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였습니다. 직원들도 다 떠났고, 공장 청소부터 꿀 소분과 포장까지 저 혼자 직접 했어요. 겨울에는 연료비를 아낀다고 히터도 켜지 않은 채 추운 곳에서 일했죠. 아끼는 게 능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니까, ‘돈 안 쓰고 일만 많이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어떻게든 버텼어요.  

그렇게 버티다 보니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우연히 대형 마트에 OEM으로 꿀을 납품하는 건을 소개받았어요. 처음에는 그곳에서 꿀도 제공하고, 용기도 주니까 이를 소분해서 포장만 해달라고했습니다. 다만 혼자서 하기에 양이 많은 게 문제였죠. 당시 회사 사정상 설비나 자본을 투입하기는 어려웠지만, 제 노동력을 쏟아부을 자신은 있었습니다. 1년 후부터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죠. 그다음 해에는 꿀은 저희가 공수하고 용기만 업체에서 대줄 정도였고, 또 그 이후부터는 아예 납품 전체를 저희가 맡아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드림에서 지난해 선보인 천연 벌꿀 브랜드 23.5의 첫 제품. /다드림

-매출이 안정적으로 접어든 건 언제부터인가.  

“2019년부터 회사를 다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연매출은 35억원을 기록했어요. 그동안은 기업과 거래, B2B(Business to Business) 위주로 운영했는데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면서 B2C 거래로 사업을 확장한 덕을 봤어요.”  

◇천연 벌꿀 브랜드 만들어 B2C 사업도 시작해
 

-사업을 확장한 계기가 있나.   

“저희한테 받은 꿀을 다시 예쁘게 포장해서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업체와 거래를 하게 됐는데요. 가격이 비싼데도 많은 사람이 그곳의 꿀을 찾더라고요. 사실 저는 이전까지 어떻게 하면 질 좋은 꿀을 다른 사람들보다 싸게 팔 수 있을까만 고민했는데, 시장을 보니 패러다임이 바뀐 것 같았습니다. 품질 좋은 꿀을 공수할 수 있다는 게 저희의 가장 큰 장점이니까 이를 살려서 희귀한 꿀, 소비자가 원하는 벌꿀을 예쁘게 소포장해서 팔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천연 벌꿀 브랜드 23.5가 탄생했습니다.”  

-처음으로 선보인 꿀은 피나무 꿀과 때죽나무 꿀이다.  

“피나무 꿀은 벌꿀 중에서도 고급 명품 꿀로 인정받는데요. 벌꿀 특유의 향과 맛이 강해 꿀벌들에게도 인기가 좋습니다. 강원도 인제군 고산지대에 퍼져 있는 피나무에서 수확하는데 수확하기가 힘든 꿀이에요. 피나무꽃이 피는 시기가 장마철과 겹쳐서 3~5년마다 한 번씩만 생산이 되는 귀한 꿀이죠.   

때죽나무 꿀은 중남부지방의 고산지대에서 채밀하는 꿀인데요. 향기가 좋아 때죽나무꽃은 향수의 원료로도 사용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때죽나무꽃 역시 개화 시기가 5월 말, 약 2주가량으로 짧고, 2년 주기로 해걸이를 해 귀하기 어려운 꿀이에요.”

피나무 꽃. /픽사베이

제품 패키징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벌집에서 바로 꺼낸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육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병을 만들었고, 상자는 꽃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상자를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꽃이 피어있는 느낌을 연상시키기 위해 종이 상자를 접어가면서 꽃 모양 상자를 개발했다. 또 전면에 꿀을 먹어 배가 부른 꿀벌을 넣어 귀여움을 더했다.  

“지난해부터 회사에 합류한 아들과 함께 고민해가면서 제품을 완성했습니다. 꿀을 맛보기 전에도 사람들이 제품 포장만 보고 진짜 꿀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꽃에서 딴 꿀, 꽃에 다시 담아드립니다’라는 의미를 부여해 제품 포장을 완성했죠.”

제품 패키징(위)과 상자를 접었을 때 꽃 모양을 낼 수 있게 종이 상자를 접어가면서 상자를 개발한 과정. /다드림

◇“벌꿀 판매자 양성하는 등 함께 성장하고 싶어”  

-양봉업이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벌꿀업 종사자로서 내다보는 미래는.
 

“환경적인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지난해 최악의 흉년이었어요. 30년 넘게 벌꿀을 취급하면서 작년처럼 꿀이 적게 나는 해는 처음이었죠.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꽃이 냉해를 입어 제 시기에 못 피거나, 개화 시기가 지나 늦게 필 수도 있죠. 벌꿀업에 종사하면서 노하우가 생겨서 미리 저축해놓는 등 원료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지만, 농가에서 안정적으로 꿀을 딸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목표는.  

“저희도 B2C 사업을 시작했지만, 저희 외에도 많은 사람이 벌꿀을 팔 수 있도록 판매자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시장이 변했고, 저희보다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뛰어난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벌꿀 판매를 해보고 싶다는 젊은 분들에게 원료를 공급해주고, 그분들과 함께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B2C 시장만 놓고 보면, 경쟁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양봉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제품을 어떻게 차별화해 판매하는지를 보면서 저희도 배울 수 있죠. 더 적극적으로 벌꿀업계의 호황을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글 jobsN 박아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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