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됐고 돈만 받으세요" 난리난 치킨집 상황

조회수 2021. 3. 5.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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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중단합니다" 착한 일 한 치킨집이 장사 멈춘 이유
형편 어려운 형제 도운 음식점 사장 화제
주문 폭주에 가게 찾아와 봉투 놓고 가기도
전국서 ‘돈쭐’ 행렬 이어져 결국 영업 중단

“저런 가게는 돈으로 혼내줘야 합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형편이 어려운 형제에게 돈을 받지 않고 음식을 대접한 치킨집이 화제다. 지난 2월16일 부산에 본사를 둔 치킨 프랜차이즈 철인7호 앞으로 18살 고등학생이 쓴 손편지가 도착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살고 있다고 밝힌 학생 A씨는 “사장님이 베푼 잊지 못할 은혜와 사랑에 대해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어 글을 적었다”고 했다.

출처: 인스타그램 캡처
고등학생 A씨가 철인7호 본사 앞으로 보낸 편지.

학생의 사연은 이렇다. A씨는 어릴 때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었다. 몸이 편찮은 할머니와 7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 산다.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A씨는 돈가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그 뒤로는 나이를 속여 택배 상하차 일을 해 할머니와 동생의 생활비를 벌었다. A씨는 “힘들지만 동생과 할머니와 제가 굶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치킨집을 찾은 건 동생 때문이었다. 작년 어느 날 동생이 치킨이 먹고 싶다며 울면서 떼를 썼다. A씨는 동생을 달래려고 집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A씨가 손에 쥔 돈은 5000원이 전부였다. 형제는 동네 치킨집을 찾아가 “양이 적어도 좋으니 5000원에 치킨을 먹을 수 없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업주는 형제를 내쫓았고, 다른 치킨집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철인7호 수제치킨전문점이다. 형제가 가게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사장 박재휘씨가 먼저 나와 형제에게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했다. 사장은 어린 형제에게 1만9900원짜리 세트 메뉴를 만들어줬다. A씨는 치킨의 양이 많아 “잘못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콜라 2병까지 내왔다. A씨는 편지에서 “혹시 비싼 걸 주시고 어떻게든 돈을 내게 하려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사장은 돈을 건네는 형제를 그냥 보냈다. 일행은 다음 날 돈을 내기 위해 다시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사장은 큰소리를 내며 형제를 돌려보냈다.

출처: 엠빅뉴스 유튜브, 철인7호 홈페이지 캡처
철인7호 홍대점 박재휘 사장과 그가 형제에게 대접한 난리세트.

박재휘 사장의 선행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동생은 형 모르게 식당을 찾아 치킨을 먹었다. 박 사장은 가게를 찾은 동생을 미용실까지 데려가 이발을 시켜 집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죄송하기도 하고, 솔직히 쪽팔리기도 해서 찾아뵙지 못했다”라고 했다. 요즘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려 가게 소식이 궁금했다는 그는 “성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사장님 같은 멋있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했다.


김현석 철인F&B 대표가 인스타그램에 학생의 손편지를 공개하면서 철인7호 홍대점의 사연이 일파만파 퍼졌다. 누리꾼들은 “저런 가게는 아주 ‘돈쭐’(돈으로 혼내주다) 나야 한다”며 의기투합했다. SNS 공개 이후 전국에서 철인7호 홍대점에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강원도에서도 치킨을 시켰다. 지방에서 치킨을 시키는 손님들은 ‘가짜’ 손님이었다. 이들은 “치킨은 먹은 걸로 할 테니, 돈이라도 받아 달라”며 결제를 요청했다. 배달 앱 리뷰란에는 “음식은 안 먹었지만, 그 어느 치킨을 먹을 때보다 배가 부르다”, “돈쭐 행렬에 동참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출처: 배달의민족 캡처
철인7호 홍대점에서 치킨을 시키고 리뷰를 단 손님들.

박재휘씨는 2월26일 배달 앱에 “학생의 사연이 화제를 모은 뒤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주문하는 척 들어오셔서 선물 주고 가시는 분들, 좋은 일에 써달라며 봉투를 놓고 가시는 분들 등 전국에서 응원을 보내주셨다”고 했다. 박씨는 선행에 대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했다. 3월 2일 기준 철인7호 홍대점은 주문 폭주로 음식의 품질 보장이 어려워져 영업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다.


착한 일로 돈쭐이 난 가게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9년 여름에는 서울 마포에 위치한 진짜파스타가 배고픈 아이들을 대가 없이 돕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손님이 가게를 찾았다. 진짜파스타 사장 오인태씨는 결식 우려 아동에게 자체적으로 만든 VIP 카드를 발급해줬다. 아이들이 금액 상관 없이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킬 수 있게 했다. 또 “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가게를 찾으라”고 했다. 오 대표는 저소득층 아이를 위해 지역자치센터에서 발급해주는 꿈나무 카드 사용에 제약이 많아 직접 아동을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출처: 조선DB
배고픈 아이들을 도와 여러 자영업자들의 선행 동참을 이끈 오인태 진짜파스타 대표.

오 대표의 선행은 다른 가게의 참여로 이어졌다. 그는 배고픈 아이들을 돕고자 전국 자영업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스시 전문점 쿠우쿠우 김해장유점, 전라북도 익산의 삼겹살 전문점 북도회관 등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 누리꾼들의 ‘돈쭐’ 가게 명단에 올랐다.


선행으로 돈쭐이 난 가게들은 늘어난 인기와 수익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전국에서 400개가 넘는 식당이 진짜파스타의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에 참여해 배고픈 아이들을 도왔다. 진짜파스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던 2020년 봄에도 3호점까지 가게 수를 늘렸다. 일각에서는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MZ세대가 소비를 통해 신념이나 가치를 드러내는 ‘미닝 아웃’(meaning out)을 추구하면서 이 같은 움직임이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요식업계에서는 “앞으로 착한 일 하는 곳은 더 사랑받겠지만, 갑질 등으로 누리꾼들의 눈밖에 난 식당은 말 그대로 ‘혼쭐’이 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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