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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사회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진 1장

조회수 2021. 2. 25.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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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 떡' 문화, 500년 이어온 악습? 관행?
공무원 정식 임용 앞두고 돌리는 시보 떡
강요 아니지만 부담스럽고, 스트레스 커
조선시대 땐 ‘면신례’로 신임 관료 사망도
“관행 아니라 악습, 없어져야”

‘시보 떡’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식 임용된 공무원이 시보 떡으로 백설기를 돌렸더니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는 글이 화제였는데요.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여자 동기가 백설기만 돌렸는데, 옆 팀 팀장이 고맙다고 해놓고 쓰레기통에 떡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어 “여자 동기가 막내라서 사무실 쓰레기통 비우다가 그걸 보고 그날 밤새 울었다”고도 적었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시보 떡 문화에 대해 처음 들어본 네티즌들은 “완전 꼰대 문화다”, “악습이다”라며 비판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나서서 “확인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떡뿐 아니라 피자와 마카롱 등을 돌리거나 식사 대접을 해야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신임 공무원들을 울리는 시보 떡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강요 아니지만, 사실상 안 돌리기 힘든 분위기 


시보는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에 적격성과 자질 등을 검증받기 위해 시험 기간 중인 공무원 신분을 말하는데요. 이를테면 수습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무원 임용 후보자들은 보통 6개월~1년의 시보 기간을 거친 다음 정식 공무원으로 임명됩니다. 이때 시보 해제를 앞둔 공무원이 함께 일했던 동료와 선배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부서에 떡을 돌리는데, 이 떡이 바로 논란의 시보 떡입니다. 

출처: 인스타그램,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떡뿐 아니라 쿠키, 음료, 수건 등 다양한 답례품을 돌린다.

실제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시보’라는 단어를 치면 가장 먼저 ‘시보 떡’이 뜹니다. 시보 떡을 맞춰준다는 업체들의 광고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떡부터 수제 쿠키, 마카롱, 호두과자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고 가격대도 1000원대부터 1만원대까지 다양합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누구는 돌리고 누구는 안 돌렸다’는 식으로 뒷말이 나오고, 시보 떡을 두고 비교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크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시보 해제된 20대 공무원 A씨는 “동기 중에서 안 돌린 사람이 없었다”면서 “한 팀장은 시보 끝나면 뭐 돌릴 거냐고 대놓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결국 그는 20만원 가까이 돈을 써가며 떡을 맞춰야 했는데요. 3년 차 공무원 B씨도 “안 돌리면 뒤에서 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시보 떡을 돌렸다”며 “강요는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상 모른 척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시보 떡 두고 비교하고 뒤에서 욕하기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을 보면 내부적으로 떡을 돌릴 것을 강요하기도 하고, 심지어 돌린 떡을 두고 비교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한 이용자는 “시보 끝나기 전부터 윗사람이 한턱내라고 계속 바람 넣길래 케이크랑 간식거리를 사 왔는데 엄청 눈치 주고 안 먹는다 그러더라”라고 했습니다. 또 “떡 받은 꼰대들이 ‘이 떡은 별로네. 저번에 누군가 돌린 떡은 맛있었는데’ 그딴소리 한다”, “‘누구는 뭐 돌렸다’고 비교하고 ‘센스 있는지 보자’고 부담 주는 거 때문에 더 싫다”는 글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시보 2명이 돌린 떡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는데요. 디시인사이드 공무원 갤러리에 한 이용자가 ‘폐급신규 vs A급신규’라는 제목으로 종이컵에 담긴 떡과 개별 포장된 에그타르트 사진을 올렸습니다. 시보 떡에 대한 공무원 사회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아닐까 싶은데요. 해당 글에는 “포장된 떡으로 해야지 몇 푼 아낀다고 저러면 주고도 욕먹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두 사람이 돌린 시보 떡을 비교하는 글도 올라왔다.

시보 떡뿐 아니라 식사 대접, ‘시보 턱’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앞서 지난해 7월에는 한 경찰서에서 시보 순경에게 정규 임용을 이유로 팀 회식비를 부담시킨 경위가 감봉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해당 경위는 시보 순경 3명에게 회식비 60만원 등 3회에 걸쳐 총 97만5000원을 내도록 강요했는데요. 당시 소청심사위원회는 해당 경위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제57조 복종 의무, 제61조 청렴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감봉 처분을 내렸습니다.


◇조선시대, 혹독한 신고식에 신임 관료 사망한 사건도 있어 


시보 떡 문화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신임 관료에 대한 신고식이 횡행했는데요. 조선시대 벼슬을 처음 시작하는 관원이 선배 관원들에게 성의를 표하는 의식, 면신례(免新禮)였습니다. 허참연(許參宴)이라고 해 선배에게 줄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보 떡과 비슷한데요. 3, 5, 7, 9 숫자에 맞춰 고기와 과일, 나물 등 100가지 음식을 차려서 연회를 4번이나 열었어야 했다고 합니다. 


율곡 이이는 면신례 자리에서 선배들에게 공손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파직당하기도 했는데요. 명종에게 면신례를 폐지해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면신례 때문에 과거에 고순위로 급제한 새내기 관료가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1453년(단종 1년) 실시된 과거에서 11등으로 급제한 정윤화는 9명의 동기생과 함께 선배들을 위해 술과 안주를 대접하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출처: MBC 방송화면 캡처
드라마에서도 면신례때문에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면신례가 시보 떡의 기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공직 사회에서 비슷한 악습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인데요.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면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도 움직이고 나섰는데요. 2월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영 국민의힘 의원은 “시보 떡 관행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이라고 했고, 이에 대해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확인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종로구는 18일 시보 떡 문화를 없애고, 구청장이 신임 공무원을 격려하는 방식으로 조직 문화를 바꾸겠다고 밝혔는데요. 올해부터 구청장이 공무원에게 격려의 메시지와 도서를 보내고, 배치받은 부서의 선배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다과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불필요한 악습으로 신임 공무원들이 고민하고, 고통받는 일이 없어지고 새로운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박아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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