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미 유명대 10곳 동시합격 여학생 근황

조회수 2020. 11. 17.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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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떠들썩하게 했던 '공부의 신'들의 근황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수능은 11월19일에 볼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2주 연기해 12월3일에 치른다. 이번 수능은 전국에서 약 50만명이 응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누군가는 오랜 시간 쏟은 만족할만한 노력의 열매를 맺을 거다.


그들보다 먼저 험난하고 가파른 길을 올랐던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높은 점수를 얻으면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몸소 증명했다. 자신의 공부 습관이나 비법, 스토리 등을 담은 책을 출간해 많은 수험생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한 이들도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공부의 신(공신)’들의 근황을 알아봤다.


◇학원·과외 없이 전교 꼴찌에서 수능 만점자


책 '공부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2020학년도 수능 만점자인 송영준(19)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송씨는 전교 꼴찌로 고등학교에 입학해 수능 만점을 받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합격했다. 과정은 험난했다. 중학교 입학 직후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홀로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학원이나 과외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김해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후 처음 본 시험에서 전교 꼴찌를 했다. 반 배치 고사에서 전교생 127명 중 126등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송씨는 공부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하면서 공업고등학교로 전학 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어머니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를 붙잡은 건 ‘한 번만 더 해보자’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 한마디였다.

출처: 책 '공부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캡처, 와이낫
2020학년도 수능 만점자 송영준군.

절대적인 공부량을 늘리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기숙사 학교라는 특성을 이용해 2주에 한 번씩 집에 갔고, 이동할 시간을 아껴 공부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내내 가장 취약했던 수학에 집중했다. 하루 8시간 이상 수학 문제만 풀었다. 문제집 7권을 풀면서 감을 익혔다. 1학기 때 5등급이었던 수학 성적은 2학기에 2등급으로 올랐다. 수학 공부를 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송씨는 다른 과목들에도 꾸준히 시간을 들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전교 1~2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크게 올랐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내 노력이 질 리가 없다’는 오기로 공부했다. 평소에는 5시간, 시험 기간에는 3시간만 자면서 공부했다. 급식을 기다릴 때도 영어 단어를 외웠다. 시험 기간에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암기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2020년 수능에서 만점을 받으면서 올해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했다. 

출처: MBC '공부가머니' 방송 캡처
송영준 군은 현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재학중이다.

그는 와이낫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떤 공부법이 효과가 있는지, 잠은 얼마나 자야 하는지 등 학창 시절 내내 고민했던 것들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에게,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어 남는 시간을 쪼개 책을 썼다. 제 나름의 노하우가 많은 학생에게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씨는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최종 목표는 로스쿨 진학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심신미약 감형을 폐지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하면서 법 공부에 관심이 생겼다고 전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수석 졸업 후 미국 프린스턴 대학도 최우등 졸업 


책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를 쓴 김현근(33)씨도 집안 형편상 그 흔한 사교육 한번 받을 수 없었다. IMF 사태로 인해 증권회사 부지점장에서 잘린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빚 2억원을 진 신용불량자가 됐다. 림프절염으로 오른팔의 기능을 잃어 막노동판에도 나갈 수 없었다.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32평 아파트를 처분하고 외할머니 집에 얹혀살았다. 그때 이후로 새 옷을 산 기억이 없다. 잠잘 때 빼고는 오로지 교복 차림이었다. 어머니는 마트 점원, 학습지 교사, 회사 경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아들이 다니던 중학교의 급식소에서도 일했다. 김씨는 가족들 몰래 새벽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평소 4시간만 자고 시험 기간엔 2시간만 잤다. 툭하면 코피가 터졌다.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공부하다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린 날도 많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과외나 학원, 선행학습 없이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했다. 

출처: 유튜브 영상 캡처
책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 저자 김현근씨.

그는 책에서 “쉽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때가 나를 담금질할 수 있는 시기였던 것 같다. 내가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면, 결코 악착같은 오기나 승부 근성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부모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철학이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김현근씨는 한국과학영재학교 1기로 입학했다. 기숙사를 포함해 모든 게 공짜라는 게 입학 이유였다. 입학 후 첫 시험인 중간고사에서 거의 꼴찌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책에서 “‘공부는 머리 좋은 녀석이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가 무거운 녀석이 하는 거라고 했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공부하는 녀석이 이긴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희망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는 ‘최고노력파’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피나는 노력 끝에 137명 중 수석 졸업했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수시 특차로 합격해 유학길에 올랐다. 2005년 4년간 2억원을 지원받는 ‘삼성 이건희 해외 장학생’으로 뽑히기도 했다. 프린스턴 경제학과를 최우등(숨마쿠라우데·SUMMA CUM LAUDE)으로 졸업했다. 2014년 서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학교폭력에서 벗어날 방법은 공부밖에 없었다


책 '공부의 신' 저자 강성태(37)씨는 2001학년도 수능에서 단 두 문제를 틀리면서 전국 상위 0.01%를 기록했다. 그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괴로워서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경북 문경에서 서울로 전학 왔다. 별다른 이유 없이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어느 날 소위 싸움을 잘하는 일진과 눈이 마주쳤고, 일진은 그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었다. 선생님에게 얼굴을 씻으러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수업이 다 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침을 닦아내는데 눈물이 흘렀다. 강씨는 ‘하지 말라는 말도 못 하는 찌질이였다’고 회상했다.  

출처: KBS 방송 캡처
강성태씨는 학교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진들은 공부 잘하는 친구는 괴롭히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면 학교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루 18시간씩 공부했다. 그러나 쉽게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시험에서 380명 중 307등을 했다. 그는 잡스엔과의 인터뷰에서 “고3 때는 공부 말고 다른 기억 나는 게 없다”고 했다. 그저 ‘공부하는 기계’였다. 이후 400점 만점에 396점을 받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했다. 

출처: MBC '공부의 제왕' , 유튜브 영상 캡처
강씨는 2007년 MBC 예능 프로그램 '공부의 제왕'에 출연해 학생에게 공부법을 알려주는 멘토 역할을 했다. 현재 교육 유튜버이자 방송인, 사업가로 활동중이다.

그는 2007년 동생 강성영씨(서울대 교육학·심리학 전공)와 서울대·연대·MIT 등에 다니는 대학생 7명을 모아 교육 동아리 ‘공신닷컴’을 만들었다. 자신들의 공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모임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강씨는 수많은 학생에게 공부법을 가르쳐온 경험으로 KBS 드라마 '공부의 신’의 공부법 자문위원을 맡아 드라마 속 꼴찌 5인방에게 전하는 공부법 대본을 직접 작성했다. 또 MBC 예능 프로그램 ‘공부의 제왕’의 멘토로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도움을 주면서 공부법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에 공신닷컴에 뿌리를 둔 사회적 기업 ‘공부의 신’을 창업하면서 기업가로 나섰다. 현재 유튜브 채널 '공부의 신 강성태' 등을 운영하면서 교육 유튜버이자 방송인,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17살 나이에 하버드·프린스턴 등 미국 10개 명문 대학 동시 합격


‘공부 9단 오기 10단’을 쓴 박원희(34)씨도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중학교 때 8명의 한 무리가 심하게 따돌렸고, 그로 인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러던 중 전교 1등을 하는 친구를 보고 자극을 받았다. 입학식 날 전교생 앞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하던 친구였다. 이후 ‘악바리’ ‘필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생길 만큼 지독하게 공부했다. 가장 취약한 수학 과목에 매달렸다. 새벽까지 공부하기 일쑤였다. 부모님이 ‘제발 그만 자라’고 성화할 정도였다.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답이나 풀이 과정을 보지 않고 끝까지 혼자서 풀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선생님에게 가지고 가서 묻고 또 물었다. 

출처: 책 표지 캡처
하버드·프린스턴 등 미국 10개 명문 대학 동시 합격한 박원희씨.

이후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진학해 2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17살 나이에 하버드·프린스턴·스탠퍼드·코넬·존스홉킨스 등 미국 10개 대학에 동시 합격했다. 국내 최초로 미국 10개 명문 대학 동시 합격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UC 버클리대학교에서는 4년 전액 장학금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외국에 유학이나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 적 없었다는 사실이 화제였다. 그는 김현근씨처럼 삼성 이건희 해외 유학 장학생 2기로 뽑히기도 했다.


민사고 졸업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해 불치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입학 후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2009년 6월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매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 상’을 받으면서 졸업했다. 최우수 논문상과 함께 경제학부 300명 중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 8명에게만 주는 ‘최고 영예상(Highest Honor)’도 받았다. 경제학과 통계학 학부·석사과정을 함께 수학하고 졸업했다. 

출처: MBC 방송 캡처
현재 페이스북에서 리서치 데이터 사이언스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8월 스탠퍼드 대학원 경제 전공 박사과정에 입학해 2016년 스탠퍼드 대학원의 경제통계와 정책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 페이스북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인턴으로 입사했다고 밝혔다. 2016년 8월부터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로 근무 중이다. 지난 4월 리서치 데이터 사이언스 매니저로 진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시절 내내 빚쟁이에 시달려...현재 변호사 꿈 이뤄 


책 ‘하루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쓴 박철범씨는 마음 편히 공부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이 부도가 났다. 학창 시절 내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양손을 쓰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 아버지와 빚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불화는 끊이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외할머니 손에 컸다. 빚쟁이들이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다. 한밤중에 집으로 찾아와 자는 그의 배를 발로 걷어차 깨우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했고 공부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출처: 책 표지 캡처
박철범씨는 6개월 만에 꼴찌에서 1등했다. 이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서 수학 25점을 받았다. 반에서 꼴찌였다. 충격적이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집념과 노력으로 6개월 만에 모의고사 반 1등·전교 2등을 하면서 가능성을 봤다. 박씨는 책에서 “머리가 좋아야 하지 않느냐고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저는 문제집 한 페이지를 보는 데 3시간이 걸릴 만큼 머리가 좋지 않았어요. 가정 형편? 집안 사정? 아무 상관없습니다. 저는 1급 장애인이셨던 아버님, 빚에 시달리는 어머님 밑에서 자랐습니다”고 말했다.

출처: 박철범 법률사무소 홈페이지 캡처, 유튜브 영상 캡처, tvN 방송 캡처
현재 박철범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후 1999년 서울대학교 해양공학과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열린 조영래 변호사의 강연을 듣고 법조인을 꿈꿨다. 수능을 다시 봤고 2002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가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했다. 대학생 때부터 2014년까지 공부법을 강의하는 온라인 교육 회사 ‘데이스터디’를 운영했다. 여러 방송과 교육 기관 등에서 강연하면서 자신의 공부 노하우를 전했다. 그의 공부법을 담은 책은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의 언어로 출간하기도 했다. 이후 변호사 시험을 보고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 법무법인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소송을 진행해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박철범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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