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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증이 저를 살렸습니다

조회수 2020. 11. 17. 08: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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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들으면 누르세요" 사원증이 회사원 필수템으로 바뀐 사연
의료진 위한 사원증 녹음기 ‘버즈(BUZZ)’
일반 직장인 사이에서 더 화제

“이렇게라도 쌍욕 좀 그만 먹고 싶어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는 병원에서 의료진은 또 다른 전쟁을 겪는다. 바로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폭언·폭행이다. 대한의사협회가 2019년 11월 회원 203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의사 10명 중 7명은 진료 도중 폭언을 듣거나 폭행당한 경험이 있었다. 작년 병원에서 발생한 폭행 등 의료 방해 행위 신고 건수는 2000건이 넘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환자들에게 폭언을 듣거나 성희롱 피해를 보는 간호사가 늘었다.


의료진에 대한 폭언·폭행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와중에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의료진을 위해 만든 특수 녹음기가 화제를 모았다. 스타트업 뮨(MUNE)이 개발한 사원증 녹음기 ‘버즈(BUZZ)’가 그 주인공이다. ‘윙윙거리는 소리’라는 뜻인 버즈는 겉보기에는 일반 사원증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제품 뒤에 버튼이 달려 있다. 녹음이 필요한 상황에서 버튼을 누르면 의료진 본인만 느낄 수 있는 약한 진동이 울리며 녹음이 시작된다. 네티즌들은 “병원 종사자는 아니지만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다”, “상사 갑질에 시달리는 친구에게 선물해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출처: jobsN
사원증 녹음기 ‘버즈’.

◇대학 수업 때 만난 동료와 의료진 위한 사업 시작


오광빈(30) 뮨 대표는 2016년 대학교 4학년 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제작 수업에서 의료진을 위한 사업을 구상했다. 의료진 근무환경을 안전하게 만드는 게 팀의 미션이었다. 처음 떠올린 아이템은 사원증 녹음기가 아닌 주사기 자동처리기였다. 간호사가 다 쓴 주사기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바늘에 찔리는 사고를 당하는 문제를 해결 과제로 정했다. 2017년 3월 개발을 시작해 2019년 6월 주사기 자동처리기 ‘앤디’를 선보였다. 주사기를 기기 입구에 넣으면 칼로 한 번에 바늘을 분리하는 앤디는 20여개 기관에서 1000대가량 사용하고 있다. 미국·독일·베트남·필리핀 등 외국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한창 앤디를 개발하던 2018년 12월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고(故)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2019년 4월 의료인을 폭행하는 사람의 처벌을 강화하는 ‘임세원법’(의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 대표는 이 사건을 보고 의료진을 폭언·폭행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전만 한 배지형 기기 버튼을 누르면 보안요원이 출동해 상황을 정리해주는 서비스를 만들 계획이었다.


서비스 기획 초기에 난관에 부딪혔다.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았다. 위치 추적을 위해 병원 내부망을 사용해야 하고, 보안업체도 설득해야 했다. 주사기 자동처리기를 만들면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현장에서 바로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애로사항을 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의사와 간호사들은 “펜·가위·간식 등 주머니에 넣을 게 많아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내놨다. 오 대표는 이때 사원증에 녹음 기능을 넣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렇게 2020년 9월 사원증 녹음기 버즈(bit.ly/36usOJj)가 탄생했다.

출처: jobsN
오광빈 대표.

◇폭언·갑질 피해 시달리는 직장인 사이에서도 화제


오 대표는 녹음 행위를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었다. 언제든 녹음을 시작할 수 있게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 사원증 뒤편에 녹음 버튼을 넣었다. 흥분한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기능은 뺐다. 녹음기 하면 떠오르는 빨간 불빛도 넣지 않았다. 자체 메모리 용량은 16GB(기가바이트)로, 300시간을 녹음할 수 있다. 하루 30분씩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크기다. 상황이 끝난 뒤 깜빡하고 녹음기를 끄지 않았다가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지 않게 3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게 했다. 두께는 기존 사원증(5~6mm)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8mm다. 무게는 아이폰 6분의 1 수준인 34g이다. 가격은 7만9000원이다.


갑질·폭언 등은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업종·직급과 상관없이 누구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비(非)의료인 직장인들이 사원증 녹음기에 환호하는 이유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는 상사가 있는데, 잘못을 항상 후배에게 뒤집어씌워서 증거 수집용으로 사원증 녹음기를 샀다”, “의료인뿐 아니라 한국 직장인이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광빈 대표는 “일반 직장인 관심이 더 뜨거운 상황”이라며 “비의료인을 위한 패키징도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출처: /jobsN

-사원증 녹음기에 대한 현장 반응은 어떤가.


“지난 9월 추석 연휴 때 1주일 동안 사전 판매를 했다. 217개 병원 의료진이 구매했는데, 다양한 피드백이 나오고 있다. 더 얇게 만들어 달라는 의견도 있고, 휴대폰의 절반 수준인 진동 세기도 크다고 지적하는 분도 있다. 아직 출시한 지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제품을 개선하려 한다. 진동 세기도 지금은 하나밖에 설정할 수 없지만, 3단계로 구분해 다시 피드백을 받으려 한다. 지금은 고객이 원하는 기능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 중이다. 배터리 용량을 늘리려면 제품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는데, 더 얇게 만들어 달라는 분도 있다. 고객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만족도를 높일 계획이다. 온라인몰(bit.ly/36usOJj)에서도 인기다.”


-법률 상담 서비스도 지원한다고.


“버즈를 기획하고 나서 제품이 불법이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당사자가 대화에 참여하는 상황에서는 상대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녹음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잠재 고객이 ‘아닐 텐데’라고 생각하면 세일즈는 거기에서 끝난 셈이다. 그래서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찾아가 협업을 제안했다. 의료진이 쉽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열었다. 폭언을 녹음해도 소송까지 가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의료 전문 변호사, 간호사 출신 변호사 등을 통해 상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출처: 뮨 제공

-앞으로 계획은.


“버즈에 대한 반응이 좋아 올해 매출이 5억원 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제품을 개선해 일반 직장인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 계획이다. 대면 업무를 주로 하는 분이 적극적으로 사용해주시면 좋겠다. 서로 감시하고 비방하기 위해 제품을 개발한 건 아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의료인이든 비의료인이든 누구나 직장에서 갑질·폭언 피해를 당하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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