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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티셔츠도 못 사입으시는 엄마를 보면…”

"아낌없이 주신 부모님 사랑이 제 밝음의 원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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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원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 건 댓글 때문이었다. 트로트 팬덤 분석기사에 달린 이찬원 팬들의 댓글은 결이 달랐다. TOP6 트롯맨들이 주는 위로의 힘이야 우리가 아는 대로다. 〈미스트롯〉이 불씨를 던지고 〈미스터트롯〉이 불을 지핀 트로트 열풍으로 어르신들의 옛 노래로 치부되던 ‘비주류’ 트로트가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기는 ‘주류’ 장르로 자리 잡게 됐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팬덤은 세상에 없던 팬덤이다. 난생 처음 덕질을 해본다는 팬들이 많은데, 이들은 마음에 드는 기사에 원고지 7~8매에 달하는 장문의 정성 댓글을 다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댓글들은 귀하디귀하다. 트로트라는 장르처럼 인생의 쓴맛 단맛을 맛본 이들의 댓글은 진정성이 넘치면서도 하나같이 사연이 깊다. 애정하는 트로트 가수의 노래가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구구절절 고백하는 글들은 감동을 안긴다. 그 가운데 이찬원 팬들은 고백의 톤이 확실히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다른 가수에 대한 댓글은 ‘위로’와 ‘힐링’이 주를 이뤘다면, 이찬원 팬들은 ‘행복’ ‘긍정’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찬원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울했던 인생 자체가 통째로 밝아졌다는, 믿기 힘든 고백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노래의 힘을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보게 됐다. 이찬원의 노래는 슬픔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감동이 아니다. 그가 생래적으로 지닌 밝은 에너지는 희로애락을 담은 트로트와 시너지를 내면서 트로트가 가진 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애절하지 않아도, 슬픔을 쥐어짜지 않아도, 가슴 저미는 한이 없어도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이찬원은 노래로 증명한다. 그가 나훈아의 ‘울긴 왜 울어’를 부르면 세상의 모든 무거운 고민들이 별것 아닌 듯 느껴지고, ‘진또배기’ 첫 소절 ‘흐어어~’ 한마디를 뽑아내면 어깨춤이 절로 난다. 〈미스터트롯〉 경연 때 ‘18세 순이’로 마스터 전원을 일으켜 축제의 장으로 만들지 않았나.


슬픈 노래로 감정선을 건드리는 건 오히려 쉽다. 하지만 흥이 넘치는 밝은 노래로 감동과 위로를 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찬원의 진가는 이 지점에서 발휘된다. 한글을 배우기도 전에 흥얼거렸다는 트로트는 그의 성대에 ‘트로트 나이테’를 층층이 아로새겼다. 10대 변성기를 지나 20대 중반이 되기까지 그는 늘 트로트와 함께하면서 트로트에 최적화된 안정적인 목소리를 장착하게 됐다. 


이찬원의 생에 기적같이 찾아온 〈미스터트롯〉.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만났을 때 보여줄 수 있는 폭발력의 최대치를 뽐냈다. 결과는 3위인 미(美). 최종 결선에서 쟁쟁한 현역 가수들을 제치고 심사위원 점수 1위를 받기도 했다. 기적 같은 사건이었지만, 기적은 아니었다. 20여 년간 준비해온 무대의 결정체이자,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지켜낸 시간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찬원 인터뷰는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는 철저한 준비성으로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냈다. 미리 보내준 질문지를 꼼꼼히 분석해서 왔는데, 질문 순서까지 외울 정도였다. 한때 스포츠 아나운서 지망생답게 말솜씨 또한 논리 정연했다. 거의 모든 질문마다 기승전결로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되, 말의 강약이 분명해 전달력이 뛰어났다. 



팬들의 댓글을 보고 놀랐어요. 

‘이찬원 씨 노래의 힘이 이 정도였어?’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네, 저도 봤어요. 보내주신 기사도 보고, 댓글도 다 봤습니다. 댓글까지 거의 확인하는 편이거든요.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어요. 직접적으로 못 느끼다가 〈사콜〉(사랑의 콜센타)을 통해 어느 정도 와닿았어요. 저로 인해 성격이 밝아지고, 우울증이 나아졌다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남편과 사별하고 7년 넘게 앓던 우울증을 이겨내신 분, 힘든 병마와 싸우다가 상당 부분 이겨내신 분도 있어요.” 

20년 동안 앓던 두통이 나았다는 분도 있었어요.



내 노래로 누군가의 삶이 그 정도로 바뀐다니. 

그 느낌 어때요?


“뻔하고 당연하지만 너무 감사하죠.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저는 노래만 부른 것뿐인데,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좋아지셨다는 게 너무 신기하죠. 그동안은 제가 좋아서, 제가 하고 싶어서 노래를 했다면, 앞으로는 그분들을 위해 노래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많이 들어요.”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기는데, 부르면서도 감동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원래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저 노래가 좋았고, 늘 신나는 노래가 좋았어요. 가사를 떠올리면서 부를 만한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미스터트롯〉 무대 이후 하루하루 지나고, 다양한 무대에 서면서 바뀐 것 같아요. 가사를 음미하게 되고, 듣는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노래 부르면서 감동을 받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집에서 무대를 준비하다가 펑펑 울었어요.” 



어떤 노래였죠? 


“나훈아 선배님의 ‘명자’라는 신곡이에요. 나오자마자 알았고, 원래 좋아했던 노래예요. 팬카페인가 유튜브에서인가 제가 이 노래를 꼭 불러주면 좋겠다는 댓글을 보고 연습하게 됐죠. 집에서 노래방 앱으로 혼자 부르는데, 2절부터 노래가 끝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울지 않고 부르려고 세 번을 다시 불렀는데 안 되더라고요. 세 번 다 펑펑 울었어요.”



그 노래의 어떤 지점이 감정선을 건드린 걸까요. 


“노래 가사도 와닿았고, 이 노래를 불러달라는 분의 심정도 공감됐어요. 부모님을 떠올리는 노래였거든요. 저 역시 부모님이 대구에 계셔서 자주 못 뵈었잖아요. 〈미스터트롯〉 출전 이후 짧게 세 번 정도 뵌 게 다예요. 그분의 사연이 저와 공감이 된 부분이 컸어요.” 



팬들과 깊은 소통을 하면서 음악세계가 넓어지고 있군요! 


“네, 진짜 그런 것 같아요. 감수성도 더 풍부해졌고요. 또 팬분들 덕분에 부르는 장르도 넓어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제가 잘할 수 있는 트로트만 했어요. 그런데 발라드나 사연이 깊은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 가사를 생각하면서 노래하게 돼요.” 



선순환이네요. 


“하루하루 되게 행복해요. 저는 원래 밝고 긍정적이지만, 사람이 1년 내내 밝고 긍정적일 순 없잖아요. 다운되는 일이 있어도 제 노래를 듣고 힘을 내시는 팬을 생각하면 금세 밝아지고, 긍정적이 돼요.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팬들이 있는데, 왜 내가 기죽지? 왜 내가 우울해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요.”

20년 넘게 트로트 외길 인생을 걸어왔지요.

당시 트로트는 흘러간 옛 노래이고, 어른들의 장르로 치부됐는데요, 비주류로서 겪은 상처 같은 건 없었나요?


“상처라기보다 주변에서 늘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친구들이 많이 놀렸어요. 노래방에 가면 친구들이 아이돌 노래와 힙합, 발라드를 부를 때 저는 늘 트로트만 불렀거든요. 주변 분들의 반대가 많았는데, 특히 엄마가 안 좋아하셨어요. 제 나이에 맞게 살면 좋겠다고 하면서요. 지금은 그때 반대하던 분들이 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요.” 



고집이 센 편인가요? 

주변에서 한결같이 말리면 트로트를 포기할 법도 한데요.


“저는 원래 고집이 센 편이 아니에요. 아버지 말씀을 다 따르고, 대든 적도 없거든요. 그런데 희한하게 트로트가 너무 좋았어요. 이유도 없이요. 그냥 너무 좋아서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냥 좋은 마음이라. 


“그 이유를 찾고 찾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트로트가 가진 자유로움에 매료된 게 아닐까 하는. 트로트는 정형화된 틀이 없어요. 선배님들 영상을 보면 어제 영상과 오늘 영상의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 천지차이예요. 엔딩 처리도 그때그때 다 다르고요. 예를 들어 송대관 선생님의 ‘네박자’만 봐도 마음 가는 대로 노래하고, 율동해요. 정해진 스타일이 따로 없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그날의 마음에 따라 무한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트로트의 열린 속성이 참 좋았어요.” 



쟁쟁한 현역들을 제치고 평범한 대학생이 최종 3위를 했지요. 

스스로 생각하는 이찬원 씨만의 경쟁력이 뭐라고 생각해요?


“〈미스터트롯〉에 출전하면서 임영웅 씨가 과연 나올까 궁금했어요. 예전부터 임영웅 씨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늘 행사 영상을 찾아봤고요. 임영웅 씨 유튜브 구독자가 지금 100만 명에 가까운데 저는 300명대일 때부터 구독했어요. 임영웅 씨가 나오면 강력한 우승 후보일 거라고 사전 인터뷰에서도 말했어요. 또 장민호 씨도 나올까 궁금했는데, 두 분 다 나오셨더라고요. 영탁이 형, 신성 씨, 영기 씨도 다 나왔어요. 제가 신동 출신이라 ‘신동부’였는데, 알고 있던 트로트 신동들도 다 나왔죠. 어렵겠구나 싶었어요. 솔직히 저보다 노래 잘하고 인물 좋은 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3위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제가 20년 동안 트로트만 해온 면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딴눈 팔지 않고 꾸준히 트로트만 바라보고 온 시간에 대해 기특하게 여기시는 거죠.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자부할 수 있어요. 트로트를 웬만한 현역 가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요.”

20여 년간 트로트를 해오고도 “나는 트로트 천재가 아니다”라고 했지요. 천재가 뭘까요?


“사실 20년간 트로트를 달고 살면 저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동원이가 진짜 트로트 천재예요. 5~6년밖에 안 됐는데, 그 쟁쟁한 어른들을 뚫고 일곱 명 안에 들었잖아요.” 



굉장한 연습벌레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신동부에 같이 출연한 양지원 씨 인터뷰 이후에 생긴 수식어예요. 제가 대기실에서 킬링 포인트인 ‘진또배기’와 ‘얼쑤’를 천 번은 연습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연습이라기보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건데, 사람들 눈에는 연습으로 비치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따라 하고 분석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재밌어서 하는 건데, 다른 분들은 연습이자 노력으로 보시더라고요.” 



인생무대를꼽자면.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부른 ‘18세 순이’요. 마음을 비우고 진짜 편안하게 불렀어요. 준결승까지는 다음 라운드에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다음 무대에 또 서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무대는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잖아요. 너무 마음이 편안한 거예요.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 걸 다 보여드리자’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했어요.” 



어떤 트로트는장르일까요? 


“그 생각을 진짜 많이 했는데요. 트로트란 한과 흥이 공존하면서도 한을 흥으로 승화시킨 장르라고 생각해요. 들여다보면 어떤 트로트 곡이든 양면성이 있거든요. 슬픈 노래인데 멜로디가 밝다든지, 희망적인 노래인데 멜로디가 슬프다든지, 아니면 한스럽고 슬픈 가사여도 결론은 극복해내겠다는 희망을 담는 식으로요.” 



이찬원  트로트란 씨에게뭔가요. 


“평생 순애보를 바친 애인. 이제까지 한 번도 헤어진 적 없고, 앞으로도 헤어질 리 없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반려자 같은 존재예요. 저는 단 하루도 트로트 없이는 살 수 없어요. 평생 트로트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듯, 앞으로도 제 영혼과 마음을 트로트와 함께하고 싶어요.” 



세월이 지나면 사랑의 속성이 변하잖아요. 

트로트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바뀌던가요.


“10대나 더 어릴 때는 너무 당연시되는 사랑이었어요. 그냥 좋았어요. 20대가 되고, 〈미스터트롯〉 무대 이후에는 그 이유를 찾게 되더라고요. 연세 지긋한 노부부가 서로의 모든 것을 나누듯, 그런 사랑이에요.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아픔을 나누고 치유해주는 존재 말이에요. 슬플 땐 트로트를 통해 치유받았고, 기쁠 땐 트로트로 그 기쁨을 극대화했어요.” 



앞으로는 또 트로트에 대한 애정이 어떤 유형으로 변해갈지 궁금해집니다. 


“지금까지 보여드린 트로트는 제한적이었어요. 정통 트로트만 해왔죠. 앞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트로트가 아니라, 저를 사랑해주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가 진짜 춤을 못 추는데, 댄스 트로트도 해보고 싶고, 발라드 트로트도 해보고 싶고, 또 아이돌 댄스에 트로트를 접목시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만약 〈미스터트롯〉에 출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겠죠? 졸업하면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할 테고요.” 



경제금융학 전공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원래 사회과목을 좋아했어요. 수능 때도 사회탐구 영역은 만점 나왔어요. 모의고사 때도 사회과목은 거의 만점이었고요. 국어와 외국어 영역 점수도 괜찮았는데, 수리와 과학과목은 점수가 잘 안 나왔어요. 문과에 특화돼 있는데, 사회과목을 택한 건 선생님들의 영향이 커요. 좋아하던 고3 때 담임선생님이 사회과 담당이었고, 동아리 담당 선생님도 경제선생님이었거든요. 그렇다고 막 학문에 열의가 있거나 하진 않았어요.” 


부모님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은 걸로 알아요.


“아버지가 처음엔 제가 트로트 가수가 되는 걸 너무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안 계실 때 몰래 연습했죠. 특히 KBS 〈가요무대〉는 빼먹지 않고 보면서 이렇게도 따라 불러보고, 저렇게도 따라 불러보고 했어요.” 



아버지는 왜 반대하셨나요? 


“제가 노래 부르는 걸 반대했다기보다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을까 봐 반대하신 거예요. 아버지도 가수의 길을 준비했고, 큰아버지는 배우의 길을 준비했는데 두 분 다 안 되셨거든요. 제가 아버지를 똑 빼닮았어요. 외모, 성격, 식성, 노래 스타일과 취향, 심지어 좋아하는 트로트 선배도 똑같아요. 성장 환경도 비슷한데, 군대 보직까지 같아요. 아버지도, 저도 둘 다 인사행정병을 했어요.” 



그런데 스물네 살부터 부자의 인생길이 달라졌군요. 


“네. 아버지가 대리만족이 어마어마하세요. 지금도 항상 노래 코치를 해주세요. ‘찬원아, 이 무대를 보니까 이렇게 부르면 안 되겠더라. 저 노래는 저렇게 부르는 게 낫겠다’ 하시면서요.” 



인정받는 가수가 됐는데요,

여전히 아버지의 조언을 귀담아듣나요?


“그럼요. 늘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네, 그렇네요. 아빠, 맞아요’ 해요. 한 번도 ‘이제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은 물론, 그런 생각도 해본 적 없어요. 〈미스터트롯〉의 모든 경연곡을 아버지가 다 골라주셨죠.” 



‘18세 순이’를 골라주실 땐 뭐라고 하시던가요? 


“제가 후보곡 몇 개를 가지고 여쭤봤어요. 들으시더니 ‘찬원아, 18세 순이를 해라. 그게 네 인생이잖아. 또 너는 많은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니 이 노래로 희망과 흥을 주자’고 하셨어요. 나훈아 선배님을 정말 존경하기도 하고, 18세 순이의 순이가 저희 엄마를 연상케 해요.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넘치고도 남았어요.” 



아버지 말씀에 그렇게 순종적이었는데, 

어떻게 〈미스터트롯〉에 출전하게 됐지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엄마를 졸라서 〈스타킹〉도 나가고 〈전국노래자랑〉도 나가고 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아버지가 ‘가수는 절대 안 된다. 공부해라’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군 제대 후에도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아버지 몰래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즈음 〈미스트롯〉이 성황리에 끝났어요. 그걸 보면서 분명 〈미스터트롯〉이 시즌2로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틈틈이 준비를 했어요. 역시 〈미스터트롯〉이 열렸죠. 예선전 치를 때 무턱대고 서울로 올라와서 아버지에게 전화드렸어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요. 여기에 안 나가면 죽을 것 같았어요. 난 출전도 못 했는데, 다른 누군가가 인기를 얻어서 트로트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죠. 경연에서 하나하나 진출할 때마다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셨어요. 어머니도 좋아하시고요.” 



지난 4월, 두 분이 운영하시던 막창집 문을 닫았다고요. 속사정이 궁금해요. 


“두 분이 막창가게만 20년 하셨어요. 다른 곳에서 13~14년간 하다가 옮겨서 계속해오셨죠. 테이블 여섯 개밖에 없는 열 평짜리 작은 가게지만, 저희 네 식구 먹고살기엔 충분했어요. 저와 제 동생 대학 학자금까지도요. 〈미스터트롯〉 이후에는 가게가 더 잘됐어요. 대구의 코로나까지 뚫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매출이 8~15배나 올랐죠. 그런데 결국 저를 위해, 저 때문에 문을 닫았어요. 부모님의 20년이 녹아 있는 생계수단을 접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겠어요. 저 때문에 오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괜한 오해로 아들한테 피해가 가는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이 크셨어요. 제 의견을 물으시기에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만두는 게 맞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대신 제가 더 열심히 일해서 벌겠다고 하면서요.” 



양가감정이 들겠어요. 

미안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아무래도 그렇죠. 하루도 닫지 않고 1년 365일 운영하셨거든요. 추석과 설날에도 가게 문을 열었어요. 게다가 두 분 다 아직 젊은데(아버지 60세, 어머니 48세), 일을 그만두시면 빨리 늙는다고들 하니까 걱정도 되고요. 그만두신 지 6개월 정도 됐는데, 아직까지는 잘 쉬고 계세요. 엊그제는 두 분이 통영에 다녀오셨더라고요. 얼마 전엔 경포대에도 다녀오고. 가게 때문에 10년 넘게 가족여행 한번 못 갔는데, 귀한 시간이죠.” 



〈뽕숭아학당〉에 어머니가 출연하셨죠. 

소녀 같으시더군요.


“엄마는 제 성격과 반대예요. 아주 점잖고 조용하고 술 한 방울 못 하고 검소하세요. 그런 면에서 답답하기도 해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맏딸로 힘들게 자라셨거든요. 이제는 좀 친구들도 만나고 술도 한잔하고, 갖고 싶은 거 사면서 엄마도 인생을 즐기시면 좋겠는데, 만 원짜리 티셔츠 하나도 편하게 못 사입으세요. 가족밖에 모르는 분이죠.”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지요. 


“사실 엄마 같은 삶을 원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생각해봤어요. ‘내가 결혼해서 가족을 꾸리면 자식한테 저런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자신 없더라고요. 자식을 위해 무조건으로,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에요.” 



아, 커다란 물음표가 하나 풀렸어요. 

이찬원 씨의 한없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의 원천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했거든요.


“하하. 제가 부모님 사랑을 진짜 많이 받았어요. 두 분이 가게를 하면서도 사랑을 듬뿍 주셨거든요. 아버지가 일 마치고 돌아오면 새벽 네다섯 시쯤이었는데 그때 와서도 제 교복을 다려주셨어요. 또 7첩, 8첩 반상으로 된 따뜻한 아침밥을 손수 차려주셨고요. 밥과 국은 기본이고, 불고기나 잡채 같은 메인 디시도 꼭 하나씩은 만들어주셨어요. 엄마도 요리를 잘하시지만, 아빠가 더 잘하시거든요. 게다가 친가와 외가 사랑도 독차지했어요. 친가에서는 16~17년 만에 생긴 손주여서 사랑을 듬뿍 주셨고, 외가에서는 첫 손주라서 첫정을 다 주셨어요. 손자가 저 하나고요. 나중에 외할머니 제사를 제가 모시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미래의 부인이 괜찮겠어요(웃음)? 


“(더듬거리며) 미래 부인이 싫어하면 제사는 더 생각해볼게요(웃음).” 



이번 추석 명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명절마다 뵙지 못하는 친척분들에게 늘 전화를 돌려요. 아버지가 해오신 대로요. 친가는 만날 수 있지만, 고모네 식구는 잘 못 만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못 내려갔으니 큰아버지부터 전화를 다 돌렸어요. 〈미스터트롯〉 이후 첫 명절이라서 용돈을 처음으로 드렸고요.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 고모들과 고종사촌들, 5촌 종조카까지 봉투를 40개 정도 준비해서 이름과 간단한 안부 문구를 적었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요즘 이찬원 씨의 가장 큰 고민이랄까요, 화두는 뭔가요? 


“1년 전의 저는 평범한 경제학과 대학생이었잖아요. 길에서 아무도 몰라보는. 지금의 이런 삶을 꿈꿨지만 상상도 못 했죠. 너무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뀌면서 다양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반짝 스타가 됐다가 어느 순간 이 인기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게 아닐까, 이런 나의 모습을 팬분들이 안 좋아하시면 어떡하지? 하는. 이런 고민이 민호 형이나 영탁이 형, 〈미스터트롯〉에 같이 출연한 동료들을 통해 많이 해결된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쪽으로 마음을 돌렸어요. 김연자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나는 내일의 무대는 없어도 된다. 오늘 무대가 있으면 오늘의 무대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라고요. 이 얘기에 귀가 번쩍 뜨였어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해서 열심히 하면 미래에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겠죠. 당장에는 10월 30일부터 재개하는 〈미스터트롯〉 콘서트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려 해요.” 



이찬원에게는 반전 매력이 있었다. 교복이 어울리는 앳된 외모 안에 한 생을 다 살아본 듯한 어떤 해탈의 경지가 숨겨져 있었다. 인생의 쓴맛 단맛,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압축한 트로트를 평생 해와서일까. 슬픔도 기쁨도 한잔 술과 함께 넘겨버리는 여유와 관조가 이 해사한 미소에 문득 문득 묻어났다. 



글 톱클래스 김민희 

사진제공 정혜란 사진작가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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