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예능에 나왔던 30살 '훈남' 청년의 근황

조회수 2020. 11. 7.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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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부터 가발 쓴 카피라이터가 시작한 이 일
입대 후 시작된 탈모로 23살 때 가발 맞춰
직접 커트·스타일링해 쓰기 시작
다양한 스타일의 가발 만들어 사업가로 변신

군 입대 이후 급속도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단백질이 많은 음식도 먹고, 두피 청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효과가 입증된 탈모약도 먹어봤지만, 부작용으로 탈모 진행 속도만 빨라졌다. 제대 후에는 입대 전과 전혀 다른 머리가 되어 있었다. 복학도 미루고 많은 가발업체를 찾아다녔지만 23살을 위한 곳은 없었다. 결국 한 가발샵에 제작만 의뢰한 후 가발을 직접 커트하고 스타일링해서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23살 때부터 가발을 쓰기 시작한 청년 가발 사업가, ‘위캔두잇’ 조상현(35) 대표의 이야기다.

출처: 위캔두잇
위캔두잇 조상현 대표

조 대표는 삼십대 중반의 젊은 나이지만,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가발과 함께했다. 자연스레 국내 가발 시장에도 관심이 많았다.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 가발 사업을 해보자는 막연한 계획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카피라이터라는 오랜 꿈을 이루는 게 먼저였다. “대학 시절 광고회사 입사를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광고회사와 브랜딩 회사를 거쳐 꿈을 이루었죠. 그러나 늘 미래가 불안했습니다. 직장인 월급은 뻔했고, 결혼을 일찍 해 곁에는 아내와 돌 지난 아이가 있었어요.”


◇부담스럽지 않게 간판 없애고 카페처럼 인테리어 


경력을 쌓아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더 빨리 경제적 안정을 찾고 싶었다. 고민하던 조 대표는 2013년 창업을 결심했다. 외식이나 제품 판매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가발만 생각했다.  


퇴사 후 이용사 자격증부터 시작해서 가발 관련 교육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미용실에서 헤어 커트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항상 집에 와서 다시 제가 다듬었어요. 점점 미용실에 방문하는 횟수가 줄었고, 아예 셀프로 헤어 커트를 하기 시작했죠. 주변 친구들 머리도 제가 다듬어주곤 했습니다. 가발을 쓴 이후부터는 가발 커트도 제가 직접 했어요. 하지만 경험이 있다고 해도 이·미용 기술이 필수라고 생각해 전문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는 가발 관련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어요.”

출처: 위캔두잇
가발을 활용한 다양한 스타일링

회사 이름은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위캔두잇으로 정했다. 평소 가발 업체를 찾아다니면서 ‘털 모(毛)’자를 활용한 이름에 부담을 느꼈던 경험에서 우러난 작명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도전하는 사업인 만큼 자신을 응원하는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고, 이름만 들어서는 가발샵이라는 것을 연상할 수 없게 만들어 가발에 대한, 회사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싶었다. 또 가발을 쓴 후 다시 자신감을 찾고, 스타일을 완성한 만큼 ‘여러분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위캔두잇을 떠올렸다.


오피스텔을 얻어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간판은 없앴고, 실내 공간은 카페처럼 꾸몄다. 그동안 가발 업체를 찾아다니면서 큰 간판과 방문을 유도하는 홍보물 때문에 오히려 매장을 찾는 길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가발을 쓰고 있거나 쓸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을 배려해 ‘소규모 1인 가발샵’ 컨셉으로 창업했습니다. 저 역시도 탈모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발을 써야 하나 고민하는 분들에게 진정성 있게 공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발 자체의 완성도는 너무 당연한 부분이고, 배려와 공감은 다른 업체와 차별화되는 저희만의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위캔두잇
위캔두잇 매장 모습. 가발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꾸몄다.

◇예능 출연해 ‘훈남 가발남’ 별명 얻기도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홍보가 잘 되었기 때문에 오픈만 하면 손님 발길이 끊이질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갓 오픈한 신생 가발샵이다 보니 손님들이 생각처럼 많지 않았고, 고정지출이 생기면서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가능한 모든 자금을 끌어모아 창업했기 때문에 재정이 적자였다. 그때 조 대표가 떠올린 것은 가발 관련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미 다른 업체에서 제작한 가발 관련 콘텐츠가 많았어요.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야 차별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보성 콘텐츠보다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상을 만들어보고자 했죠. 'ㅇㅇ로 가발 쓰는 법'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가발을 잘 쓰기 위한 내용이 아닌 머리에서 풍선이 터지면 머리가 생겨있다거나 사진을 얼굴에 붙이면 머리가 생겨있는 등 새롭고 재미있는 영상을 올렸죠. 인기를 끌면서 점차 손님이 늘었어요.”

출처: KBS 방송 화면 캡처
‘나는 남자다’ 출연 당시 모습

2014년에는 KBS 예능프로그램 ‘나는 남자다’에 출연해 가발을 벗은 모습을 공개했다. 덕분에 ‘나는 남자다 훈남 가발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당시 '이색직업'이라는 주제로 출연 신청을 받고 있었는데 호기롭게 가발 비포&애프터를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가발 벗은 모습으로 직접 모델을 하고 홍보를 하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마땅히 저를 내던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감사하게도 저의 용기에 많은 분이 반응해주셔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SNS를 중심으로 화제 몰이를 하다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많아졌지만, 조 대표는 일대일 예약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손님 한 분 한 분을 직접 응대하며 상담한다. 가발 설계와 디자인, 커트 등도 여전히 조 대표의 몫이다. “위캔두잇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조상현'이라는 사람을 보고 오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제가 직접 응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업체에서 따라 할 수 없는 무기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위캔두잇을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에 대한 상담과 가발 커트는 제가 직접 해나갈 예정입니다.”

출처: 위캔두잇
위캔두잇에서 가발을 제작한 고객들 사진

◇흑채 썼던 경험 살려 쓰기 편한 제품 개발하기도


가발은 100% 인모로 만든다. 제작 기간은 넉넉잡아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비용과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비용은 대략 110만~140만원 선이다. 2018년에는 연매출 6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초기 탈모인들을 위한 브랜드를 '비기너스럭(초심자의 행운)'을 새로 런칭하기도 했다. 가발을 쓰기 전 흑채를 사용했던 경험을 살려 제품을 개발했다. 


“가발을 쓸 정도는 아니고, 흑채로 스타일링을 하면 좋을 것 같은 고객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초기 탈모인들을 위한 제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주로 흑채를 많이 사용하는데, 섬세하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요. 저도 가발을 쓰기 전에는 흑채로 스타일링을 하곤 했는데 흑채를 뿌릴 때 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리거나 뭉쳐서 뿌려져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흑채에 작은 빨래집게를 붙이고 그것을 튕겨 가면서 사용했는데, 당시 경험을 살려서 방아쇠를 똑똑 튕겨서 흑채를 뿌리는 제품을 만들었어요.”

출처: 비기너스럭
직접 개발한 흑채. trigger 부분을 튀기면 흑채가 뭉치지 않고 골고루 뿌려진다.

사업가이지만, 조 대표는 사업적 성과와 목표를 특별히 정하고 있지는 않다. 애증의 관계인 탈모 덕분에 가발샵과 흑채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자유롭게 펼쳐내며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꿈꾸던 삶이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제 꿈을 이루었고, 그 꿈을 계속 더 크게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지금 이 꿈을 잘 이끌어 가면 충분히 사업적 성과도 따라와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늘 꿈을 키우고, 보람을 느끼며 생활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글 jobsN 박아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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