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고요? 이게 한국의 큰 문제죠"

조회수 2020. 9. 15.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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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에게 성희롱 당하고도 신고 못하는 시스템이 문제죠"
박승수 유클릭 상무
성범죄 피해 기록·신고하는 ‘리슨투미’

“직장에서 성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쉽게 신고하지 못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봤어요.”


폭언·폭력부터 성희롱·성추행까지. 회사원이 직장에서 겪는 범죄 피해는 다양하다. 정부는 직장 내 성폭력·괴롭힘 사례가 끊이지 않자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하지만 직장갑질119가 지난 7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45.4%는 최근 1년 사이 직장에서 괴롭힘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6명은 피해를 입고도 참거나 모르는 척을 했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쉽게 신고할 수 없다. 개인정보가 알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회사의 불투명한 신고 시스템과 가해자가 보복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피해자가 범죄 사실을 알리는 데 주저하게 만든다. 피해자는 당당하게 회사에 다니는 가해자를 보면서 속으로 끙끙 앓는 수밖에 없다.


중견 IT 기업 유클릭이 이 같은 직장 내 범죄 신고 체계를 개선한 ‘리슨투미’를 선보였다. 직원이 실시간으로 앱에 피해 사실을 기록하고 신고할 수 있는 신고자 중심 시스템을 만들었다. 가해자에 대한 공동 피해자가 있으면 알려주고, 함께 신고할 수 있는 기능도 담았다. 리슨투미 서비스를 총괄하는 박승수(54) 유클릭 상무를 만났다.

출처: jobsN
박승수 유클릭 상무.

-리슨투미는 어떤 서비스인가요.


“사내 성희롱·성폭력·갑질·비리 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근절하는 솔루션이에요. 직장에서 범죄 피해를 당했거나 목격했다면 앱에서 제공하는 가이드에 따라 사실을 기록할 수 있어요. 만일 같은 가해자에 대한 다른 직원의 신고가 있다면 신고자에게 알림이 떠요. 피해 사실을 기록해 두었다가 신고하면 윤리경영 담당자에게 내역이 전달되고, 절차에 따라 조사를 시작합니다.”


-사내 신고 게시판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지방자치단체·공기업·사기업 등 어느 조직이든 범죄를 신고할 수 있는 장치는 두고 있어요. 문제는 대부분 신고를 접수하는 사람 중심으로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거예요. 신고자가 자신의 신상부터 밝히고 육하원칙에 따라 신고서를 써요. 일단 제출하고 나면 신고자가 더는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 사건이 처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문장력에 따라 호소력이나 사실관계가 다르게 비칠 수도 있고요.


리슨투미는 최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입력할 수 있게 세세한 부분까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요. 이를테면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인지, 어떤 이유로 해당 장소에 갔는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문항을 체크할 수 있어요. 문장력이 부족하고 경황이 없어도 쉽게 피해 사실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벌어지고 난 뒤 신고자는 무엇을 했는지, 가해자는 어떤 행동을 했는지,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있는지 등도 입력해요. 전문가 자문을 구해 가이드라인을 짜고 문항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해결책이나 보상을 원하는지도 선택할 수 있어요. 피해 사실을 기록하는 동안 신상이 외부로 노출되지도 않아요. SNS 대나무숲이나 블라인드에 글을 쓰면 조직 바깥으로 피해 사실이 퍼져 나가 2차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죠.”

출처: 유클릭 제공
리슨투미 앱에서 피해 사실을 기록하는 화면.

-피해 사실을 기록할 때 익명성은 확실히 보장받나요.


“윤리경영 담당자는 누군가 피해 사실을 입력할 때 기록 건수가 올라가는 것만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기록 수를 보고 조직에 윤리경영 리스크가 얼마나 있는지 측정이 가능합니다. 만일 직원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누군가 알리지 않으면 관리자는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리슨투미를 이용하면 범죄 예방이나 대응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짤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기록 건수를 확인할 수 있으니 구성원 일탈 의지를 꺾게 하는 장점도 있어요. 서로 조심하는 거죠.”


-성희롱 등 성범죄만 신고할 수 있는 겁니까.


“성희롱·성폭력 등 성범죄 기록으로 시작해 두 가지 기능을 추가했어요. 갑질·괴롭힘(스탑투미)과 부조리·비리(페어투미) 모듈이에요. 서비스를 계약한 4개 기업은 성범죄 모듈만 도입했어요. 계약 중인 한 곳은 갑질·괴롭힘 모듈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출처: 유클릭 제공
공동 피해자가 있으면 알림이 온다. 다른 피해자와 함께 신고도 할 수 있다.

-어느 회사에서 쓰고 있나요.


“지난 4월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한전KPS·한국서부발전·한국조폐공사에서 리슨투미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은 오는 10월에 도입할 예정이에요. 계약 중인 회사도 있습니다. 매출은 한 달에 1000만원 정도 나와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은 없습니까.


“기존 신고 시스템이 있다는 이유로 도입을 꺼리는 회사가 있어요. 하지만 정부 권고로 마지못해 구색만 갖춰놓은 시스템이 대부분이에요. 윤리경영에 관심이 있는 최고경영자(CEO)는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하는데, 널리 퍼진 인식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아요. 신고자 중심 시스템을 만들면 범죄를 예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걸 설득해야 해요. 그런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회사를 보면 경영자가 윤리경영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출처: jobsN

무고(誣告)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리슨투미를 이용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무고가 두렵다는 이유로 신고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그렇다고 기존 시스템에서 무고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도리어 외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허위 사실이 퍼지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어요. 이런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계획은요.


“회사의 가치를 가장 확실히 높일 수 있는 게 바로 윤리경영 실천입니다. 윤리경영에 실패한 회사를 보면 일부 구성원 때문에 기업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한 곳이 많아요. 소비자 ‘불매 리스트’에 회사 이름이 올라가고, 주가가 반 토막 나기도 합니다. 리슨투미가 성희롱·성폭력·갑질·내부비리 등을 없애고 윤리경영 리스크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봐요. 이런 장점을 알려서 공공기관과 공기업, 나아가 민간기업에도 서비스를 도입하게 만들고 싶어요. 서비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직장인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공 버전을 선보일 생각이에요. 피해 사실 신고뿐 아니라 예방과 대응까지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입니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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