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집안 이야기 꺼내면 다들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조회수 2020. 8. 31.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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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집안에서 태어난 청년, 회사 대표로 국제회의에 가는 이유는?

그가 회사에서 하는 일을 설명하면 다들 놀란다. 직장 생활 5년 차 대리가 각종 국제회의에서 발표를 한다. 10여 개 국가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도 참석한다. 정부부처나 국제기구에서 일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직장은 동원산업이다. 친해져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한번 놀란다. “둘째 큰할아버지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저항 시인 이상화 시인, 첫째 큰할아버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에 참여한 이상정 장군”이라는 것이다. 독립운동 명가 자손이다. 흔치 않은 일을 하는 동원산업 이재화(31) 대리를 만났다.

출처: 동원산업 제공
이재화 대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회사의 대외협력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주로 WCPFC(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나 IOTC(인도양참치보존위원회) 등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MSC(해양관리협의회) 같은 국제기구와 교류하는 일을 합니다. 국제기구로부터 회사 제품을 인증받고, 회사가 속한 국제 협의체에 실무진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주로 지속가능경영과 생태계 보호 관련 프로젝트를 개발·관리하고 있습니다.” 


-사기업도 국제회의에 참석할 일이 있는가. 


“업계 관련 국제기구가 주최하는 회의에 정부와 함께 참석합니다. 국제수산기구 회의에 해양수산본부 관계자분들과 함께 갑니다. 회의에 각국 정부 대표가 참석하는데 이때 정부에서 업계 사람들을 데려갑니다. 규정을 정하는 데 있어서 기업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규제가 내려지면 업계에는 이런 영향이 있다고 대변하는 역할을 합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저희 의견을 반영해 결정을 내립니다. 보통 3~4개 회사가 함께 갑니다. 다른 회사에도 저와 비슷한 업무를 하는 분들이 있는 셈이죠.  


회사에 대외협력 업무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국제회의에 자주 참석하는 편입니다. 보통 회의가 열리면 1~2주 걸립니다. 상반기에는 2~3개 회의에 참석하고, 하반기에는 거의 1달에 1번꼴로 회의차 외국에 나갑니다.”

출처: 동원산업 제공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이 대리

-흔한 직무는 아니다. 이 일의 장점이 있다면.


“국제수산기구 회의의 경우 태평양, 인도양 등에 있는 섬나라에서 자주 열립니다. 키리바시, 쿡제도 등 보통 사람들이 개인 시간이나 돈을 들여 가기 힘든 나라들을 자주 방문합니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는데도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나라도 있습니다.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죠. 정글의 법칙 같은 방송에 나올법한 섬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휴양지에 가도 별 감흥이 없어요. 정말 사람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섬을 자주 가봤기 때문입니다.  


각국 장관들이 모인 회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유익한 경험입니다. 업계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어요. 국제회의에서는 당장 눈앞의 작은 일보다는 앞으로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업계 전반적인 트렌드 등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주로 생태계 보호, 지속가능한 수산업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수산업이란 후대를 위해 수산자원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해양오염을 막고 무분별한 남획을 금지하는 등입니다.”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제가 하는 말이 회사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에 단어 선택이나 사람을 대응하는 태도를 신경 써야 합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을 나왔지만 언어 역량을 키우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계속 노력합니다.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것과는 달라요. 업계에서만 쓰는 용어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같은 뜻이라고 해도 단어마다 주는 뉘앙스가 다릅니다. 국제회의 같은 곳에서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는 뉘앙스에 맞는 영어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또 대외협력은 유통, 영업 심지어 M&A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회사의 모든 사업 분야를 두루두루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이 부담이 될 때가 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방면으로 역량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출처: 동원산업 제공
회의에서 발언 중인 이 대리

-기업이 국제회의나 환경기구 참여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뭔가.


“지속가능경영이 매출에 도움이 되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사실 이런 활동들은 당장의 매출이 아닌 회사의 미래를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입니다. 국제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에 맞춰 회사의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10~20년 뒤에는 지구에 해를 끼치는 기업들은 결국 외면 받을 것입니다. 사업 측면에서도 제품의 원재료가 나오는 해양 생태계를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회사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생태계 보호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가.


“제가 속한 동원산업은 한국에서 유일한 SeaBOS(Seafood Business for Ocean Stewardship) 멤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산기업 10곳과 스웨덴 왕실, 세계 석학들이 모여 건강한 바다와 수산업을 위한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도 SeaBOS에 실무진으로 참여합니다. 또 어업에 쓰는 플라스틱을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2022년까지 현재 동원산업 원양어선에서 쓰는 플라스틱 소모품 사용량의 65.4%를 줄일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기존 플라스틱 장비들을 친환경 소재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출처: 동원산업 제공
동원산업이 속한 국제협의체 SeaBOS. SeaBos에는 스웨덴 빅토리아 공주도 참여한다.

-입사했을 때부터 이런 일을 담당했나.


“2016년 입사해 해외업무 파트에서 일했습니다. 원래는 해외 투자와 해외 법인 관리 일을 했습니다. 당시에도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등 대외협력 업무를 조금씩 했어요. 그러다 업계에서 지속가능 수산업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국제기구와 함께 진행할 일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대외협력이 저의 주요 업무로 자리 잡았습니다.”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들었다.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독립운동가 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께 집안 어른들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매일 들었습니다. 이분들을 본받아 나라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고 가르치셨죠. 아버지께서는 제가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대신 대학 졸업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국민의 일원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셨습니다.” 

출처: 동원산업 제공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이 대리 할아버지의 형제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저항가인 이상화 시인은 그의 둘째 큰 할아버지다. 첫째 큰 할아버지인 이상정 장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에 참여했다. 1920년대 중국 국민당 소속 부대 장군으로 근무하며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같은 부대에 있었던 장개석이 대만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한국에 남기 위해 거절했다. 광복 후에는 모든 지위에서 물러나 194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상해에서 교민들의 한국 귀환을 도왔다. 할아버지인 이상오 선생도 대구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


-앞으로 목표나 다짐이 있다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삶의 신조입니다. 할아버님들이 그러셨듯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그들의 기억에 깊게 남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수산업과 대외협력 분야에서 능력있는 인재로 성장해 나라와 더 나아가 세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오서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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