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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언니' 김연경이 10년째 하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선행

조회수 2020. 8. 2.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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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여제 김연경 '식빵 언니'의 진짜 매력

국가와 동료를 위해 20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3억 5000만 원으로 낮춰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말’로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동료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런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할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15억 원 이상의 금액을 포기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배구를 잘하는 여자 김연경 이야기다.

출처: 뉴시스
국내 복귀를 선언한 배구선수 김연경이 지난 6월 10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흥국생명 배구단 기자회견 및 입단식에서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는 ‘배구 여제’ 김연경의 국내 복귀 추진 때 나온 걸림돌은 연봉이었다. 20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김연경이기에 여자 프로배구 구단 샐러리캡(총액 23억 원. 연봉 18억 원+옵션 5억 원) 때문에 한국 복귀가 힘들 것이란 얘기도 있었다. 샐러리캡은 스포츠에서 한 팀이 선수에게 줄 수 있는 연봉의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하지만 김연경은 세계 최고 선수다운 통 큰 결정을 했다. 국내 복귀 팀인 흥국생명이 제시한 연봉보다도 적은 3억 5000만 원에 계약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배구선수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올림픽 메달이었습니다. 국내 팀에 복귀해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이 올림픽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귀할 경우, 샐러리캡 때문에 후배들에게 (금전적인) 피해가 갈 수 있어 이 부분은 제가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후배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며 올림픽을 준비할 생각만 한 것이지요.” 


국가에 올림픽 메달을 바치는 동시에 후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다. 한국 여자 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대회 동메달 이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김연경은 “지금껏 한국·일본·터키 리그에서 우승도 많이 해봤고 2012 런던올림픽 MVP(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됐지만, 이제는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며 “배구의 인기 상승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선수, 국내 구기 종목에선 유일

출처: 조선일보 윤동진 기자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배구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대표팀의 김연경 선수가 시상식에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연경은 세계 최고 선수다. 여자 배구 세계 최고 리그인 터키 리그에서 최고 연봉을 받았던 이유다. 한국 선수가 4대 구기 종목(야구·축구·농구·배구)에서 세계 최고를 찍은 것은 김연경이 유일하다. 축구의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과 야구의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 류현진이 있지만, 그들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 ‘최고’라 평가받기엔 2%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한국 선수 중 역대 최장신인 192㎝의 키에서 뿜어내는 김연경의 스파이크는 웬만한 용병 선수를 능가하는 파워를 자랑한다. 이런 김연경이 초·중학교 때만 해도 키 때문에 배구를 포기할 뻔했다고 하면 믿을까.


김연경은 1988년 경기 안산에서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딸만 둘 낳은 부모는 김연경이 아들이기를 은근히 바랐지만, 활달하고 귀여운 막내딸에게 금세 빠져들었다고 한다. 김연경이 배구를 시작한 건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다. 여섯 살 위의 큰언니(김혜경)를 따라다니며 배구공을 만지게 된 게 인연이었다. 당시 김연경은 170㎝도 안 되는 작은 키였기에 벤치(후보)에서 생활하는 게 일상이었다. 꿈을 포기해야 하나 여러 번 생각했다.


“공격수가 안 되면 리베로(서브·블로킹을 할 수 없고 후위 지역에서만 경기하는 수비 전문 포지션)라도 하자. 지금은 코트 위의 땅콩이지만, 그래도 언젠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다.”


키가 작아 배구를 포기할 뻔했지만 

출처: 조선DB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배구 결승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공격을 성공시킨 김연경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배구화 끈을 고쳐 맨 김연경은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손에서 공을 놓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고등학교 1학년 후반부터 키가 쑥쑥 자라기 시작하더니 2년 만에 무려 20㎝가 자랐다. 큰 키를 활용한 공격수가 된 김연경은 키 작은 설움을 스파이크로 날려버렸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키가 170㎝에도 미치지 못해 세터로 뛰었어요. 갑자기 크면서 공격수로 바뀐 덕에 자연스럽게 공격과 수비를 겸비한 선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개 장신 공격수들이 공격에 집중해 수비가 약한 ‘반쪽 선수’가 되기 십상인데 김연경은 리시브와 블로킹에도 능한 전천후 선수로 성장했다. 프로배구 출범 원년인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김연경은 데뷔 시즌 신인상을 시작으로 온갖 상을 쓸어 담으며 여자 배구를 평정했다. 2005~2006시즌부터 3시즌 연속 정규 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고, 챔피언결정전 MVP도 세 차례 수상했다. 2008~2009시즌 소속팀 흥국생명을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끈 뒤 해외로 진출했다.


여자 배구의 리오넬 메시

출처: 국제배구연맹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 대륙 예선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김수지 선수와 포옹하는 김연경 선수.

김연경은 임대 선수 신분으로 일본 JT 마블러스(2009∼2011)로 떠났고 이후 터키 페네르바체(2011∼2017), 중국 상하이(2017∼2018), 엑자시바시(2018∼2020)에서 활약하며 세계적인 거포로 이름을 날렸다. 세계 배구계에서 ‘여자 배구의 리오넬 메시’라는 극찬이 이어졌다.


김연경의 별명은 ‘식빵 언니’다. 김연경은 경기가 안 풀릴 때 ‘×발’이란 비속어를 내뱉는 장면이 곧잘 화면에 잡히는데, ‘×발’과 ‘식빵’의 발음이 비슷해 생긴 별명이다. 김연경에게 욕설 논란이 일지 않는 이유는 팬들이 그의 순수한 승부욕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의 개인 유튜브 채널 〈식빵 언니〉는 구독자가 40만 명을 넘었다. 


라이벌 팀 감독은 “김연경만큼 이기고 싶어 하는 선수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김연경은 코트에서는 누구보다 거친 승부사지만 밖에서는 여성스러운 매력을 뽐내며 선행을 베푸는 기부 천사다. 2009년부터 매년 형편이 어려운 배구 꿈나무들에게 수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대한배구협회로부터 받은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 위로금도 모두 기부하고, 코로나19 치료 활동을 위한 성금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실력과 인성을 모두 갖춘 김연경. 국보(國寶)라는 두 글자가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일 듯싶다.


글 톱클래스 최우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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