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살인 저질러도 면허 유지, 진짜 '철밥통'은 따로 있었다

조회수 2020. 7. 30.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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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 공무원은 옛말, 의사 면허가 진짜 '철밥통'
살인·강도·성폭행해도 의사 면허 박탈 못 해
불법 촬영 혐의로 재판 중인 의사 버젓이 환자 진료
변호사·세무사 등은 금고 이상 형 받으면 면허 취소

‘철밥통.’ 해고 위험이 적고 정년이 보장된 직업, 이를테면 공무원을 비유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최근에는 의사들을 지칭하는 말로 철밥통이 자주 쓰인다.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거나 마취 상태인 환자를 추행해도 의사면허를 박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철밥통 면허’인 셈이다.

출처: 픽사베이

◇환자 사망 과정 영상으로 올린 응급실 의사, 면허 그대로 유지


3월15일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A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과 기관 삽입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환자는 치료를 받는 도중 사망했고, 교수가 사망 선고를 하는 모습까지 영상에 담았다. 환자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이물질을 꺼내는 영상도 있었다. 이후 의료윤리 위반 논란이 일었고, 병원은 A교수를 해임했다.  


이후 A교수가 의사 면허 자격 정지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의료법상 의료인의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행위를 한 사람은 1년 이내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당시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자격 정지 요구가 들어오면 징계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협도 중앙윤리위원회를 열고 징계 여부를 논의한다고 했다. 하지만 A교수는 의사면허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병원에 취업해 환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출처: 유튜브 캡처
응급의학과 A교수가 자신의 유튜브에 올린 영상

◇성범죄 유죄 판결받아도 의사 면허에는 지장 없어


성범죄 유죄 판결을 받고도 의사 면허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양천구 소재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2018년 진료 중이던 환자의 신체를 불법 촬영했다. 사진 찍는 소리를 들은 환자가 경찰에 신고했고, 현행범으로 체포당했다.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현재 2심 재판 중이지만, 해당 의사는 여전히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의사 면허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법상 면허 대여나 허위 진단서 작성, 의료비 부당 청구, 정신질환자·마약중독자·금치산자인 경우에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인이나 강도, 성폭행 등 일반 형사 범죄 등으로 처벌받더라도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이 없다. 

출처: SBS 캡처
드라마에서 의사로 나와 안락사를 유도해 살인죄로 옥살이까지 한 지성. 이후 다시 대학병원 의사로 복귀하자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현실에서도 살인죄로 실형을 받아도 의사 면허는 유지된다.

2018년에는 한 개인병원 의사가 간호조무사를 12년 동안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의사는 간호조무사의 알몸을 불법 촬영하고도 여전히 같은 곳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당시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하지만 해당 의사는 면허를 그대로 유지했다. 2016년에는 유명 의료재단 소속 의사가 수면내시경을 받는 환자를 유사 강간하는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2018년 해당 의사가 받은 징계는 자격정지 1개월에 불과했다.


경남 통영의 한 의사는 수면내시경 치료를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성폭행해 2007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현재 다른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면허를 뺏기지 않은 것이다. 서울에서 2011년 여성을 성폭행하고 위협을 가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의사도 여전히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수련 중이던 인턴이 환자를 강제 추행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인턴으로 수련받던 B씨는 마취한 채 수술 대기 중이던 여성 환자의 신체를 반복적으로 만졌다. 이를 본 전공의가 만류했지만, B씨는 강제추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평소 간호사에게도 여러 차례 성희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B씨는 병원에서 정직 3개월 처분만 받았다.

출처: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B씨가 일하던 병원 공개와 의사 면허 취소를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

◇5년 동안 성범죄 저지른 전문직 중 의사가 가장 많아


철밥통인 의사 면허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나오자 감사원은 2011년 복지부에 면허 정지 사유에 성범죄도 추가하라고 통보했다. 이후 복지부는 면허 정지를 할 수 있는 사유에 성범죄를 포함해 해석하고 있다.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하는 행위를 했을 때 1년 이내 범위에서 의사 면허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자격을 겨우 1년만 정지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이 적다. 처벌 대상이 성폭력특례법상 강간, 강제추행, 미성년자 간음 추행 등으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불법 촬영이나 진료실 밖 성범죄는 면허 정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사실상 징계가 없는 틈을 타 성범죄를 저지르는 의사는 꾸준히 늘었다. 2014년 83명에 불과하던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2018년 163명이 됐다. 해당 기간 성범죄를 저질러 입건된 전문직 4760명 중 의사가 611명(12.8%)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면허를 정지당한 의사는 74명이었다. 이중 성범죄가 사유인 경우는 4명뿐이었다. 성폭행과 강제추행, 불법 촬영을 저지른 의사 중 0.7%만 면허 정지 처분을 받은 셈이다. 면허 정지 기간도 1개월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성범죄로 의사 면허가 취소된 사람은 없었다. 

출처: 남인순 의원 블로그 캡처
2014~2018년 의사 성범죄 검거 현황(위) 자격정지 현황(아래)

◇유독 의사 면허에만 관대한 한국


끊이지 않는 성범죄 논란에 권칠승 의원이 6월 23일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고 징계 내용을 공개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도 해당 법안을 발의했지만, 의료계 반발로 법안을 제대로 심사하지도 못했다. 당시에는 주무 부처인 복지부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복지부가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혀 21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의 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한편 전문 직종 가운데 의사 면허 규제가 성범죄 등 형법상 범죄에 가장 관대하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법무사 등은 결격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직무와 관계가 없더라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를 취소한다. 또 변호사와 세무사는 단순 징계를 받아도 실명과 내역 등 정보를 공개한다. 하지만 의협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의료사고를 내더라도 의료인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는 형법상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거나 정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은 의사가 벌금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으면 면허취소 또는 의료업 정지 처분을 내린다. 독일은 의사가 형법을 위반해 확정판결을 받으면 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유죄 전력이 있는 의사에게는 면허를 주지 않는다. 또 이러한 정보도 공개하고 있다.


글 jobsN 박아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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