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들이 하는 일? 그런 이미지 확 바꿔보겠습니다"

조회수 2020. 7. 28.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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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장사는 깡패가 한다"는 편견 깨고 싶습니다
수제맥주 정기배송 서비스로 3번째 창업
서비스 중단 2번 겪고 사업 방향 바꿔
온라인 주류 도매 유통 플랫폼 ‘벨루가’

불합리한 규제 때문에 망한 스타트업을 이야기할 때 늘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 바로 벨루가 김상민(30) 대표다. 그는 2017년 간단한 안주와 수제맥주를 정기배송하는 벨루가를 창업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 하루 매출 2000만원을 찍었다. 하지만 3달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주세법 가운데 ‘음식에 부수하여 주류를 배달하는 경우만 (술 배달 판매를) 허용한다’는 조항이 발목을 잡았다. 세무 조사관은 ““술 판매가 주 목적이기 때문에 위법 소지가 있다”고 했다.

출처: 벨루가 제공
김상민 대표

법을 지키면서 사업하기 위해 치킨과 스테이크 등 음식 비중을 높여 서비스를 다시 시작했다. “문제가 없다”는 국세청 답변도 받았다. 그러나 2년 만에 다시 규제에 무릎을 꿇었다. 주세법을 모두 지켰다는 증거를 제출했다. 국세청의 답변은 “벨루가가 기존 주류 유통 시장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 결국 김 대표는 서비스를 무기한 중단했다. 그러나 2019년 7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 번번이 규제에 당했지만 그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규제 덕분에 원했던 사업을 일찍 시작했다”고 했다. 2번이나 규제 때문에 사업을 접었던 그가 다시 시작한 서비스는 온라인 주류 도매 유통 플랫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긍정왕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창업에 관심이 있었나요. 


“벨루가가 3번째 창업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원래 창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일찌감치 로스쿨을 가기로 진로를 정하고 중앙대 법학과를 다녔어요. 군대를 카투사로 갔습니다. 그때 만난 동기의 꼬드김에 넘어가 스타트업 세계에 들어왔어요. 전역 직후인 23살 때 군대 동기였던 김민규 대표와 영어 첨삭 서비스 ‘에디켓’을 공동 창업했습니다. 당시에는 젊을 때 살짝 발만 담가보고 끝내자는 생각이었죠. 법조계 일을 하기 전에 자유분방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직도 사업을 하고 있네요.” 


-다른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요. 


“에디켓 이후 게스트하우스 예약 플랫폼 ‘지냄’ 경영진으로도 일했어요. 공동 창업자이긴 했지만 온전한 제 것은 아니었죠. 그때는 리더가 답답해 보였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한다는 걸 몰랐죠. 내가 직접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대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제 회사를 차려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또 이전의 두 사업은 무형의 서비스를 다뤘어요. 저는 유형의 상품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원래 술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2017년 주류 유통 스타트업 벨루가를 창업했습니다.” 

출처: 벨루가 제공
벨루가에 올라와 있는 술 상품과 상점 정보

-현재 서비스 중인 ‘벨루가 비즈니스’를 소개해 주세요. 


“온라인 주류 도매 유통 플랫폼입니다. 상점(음식점·소매점·편의점 등)은 벨루가에서 다양한 술 상품 정보를 확인하고 발주합니다. 공급사(수입사·제조사)는 상점 정보를 확인하고 비대면으로 영업 활동을 할 수 있어요. 발주와 재고 관리도 모두 한곳에서 가능합니다. 해외에는 비슷한 플랫폼이 많지만 국내에는 벨루가가 처음입니다.


주류 유통업계는 아직도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을 씁니다.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죠. 공급사 영업사원들이 차를 타고 상점을 돌면서 영업을 뛰니까요. 무작정 방문했는데 사장님이 없으면 그날은 꽝입니다. 상점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영업 성공률도 낮고요. 시간, 인건비, 판촉비 모두 낭비하는 셈입니다.

출처: 벨루가 제공
발주를 진행하는 과정

상점 주인에게도 힘든 구조입니다. 새롭거나 독특한 술을 원해도 발주 채널을 찾기 힘들어요. 자신이 원하는 술을 파는 영업사원이 방문하길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업사원이 많이 다니는 대기업 주류만 취급하게 됩니다. 다른 상점도 다 똑같은 술을 팔기 때문에 따로 마진을 붙일 수도 없죠. 벨루가에서는 효율적인 영업과 주문이 가능합니다. 영업사원들은 자신의 상품을 살 것 같은 상점을 골라 연락할 수 있습니다. 상점 주인은 펍·포차·와인바 등 정보를 입력하고 가게에 어울리는 술 상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요. 


대부분 상점과 영업사원은 전화·카톡·문자 등 파편화된 채널로 발주를 진행합니다. “늘 쓰던 거 두 박스 넣어줘”라고 통화하는 방식 등을 쓰다 보니 발주 사고도 자주 일어나요. 상점은 그날 물건을 제대로 못 받으면 하루 장사를 망칩니다. 벨루가는 원클릭으로 온라인 견적서를 씁니다. 주문 내역은 바로 영업사원에게 전달하고 모든 내용을 저장합니다. 한 가지 채널로만 소통하죠. 덕분에 지금까지 납품 사고율이 0%입니다.


일부 상품은 예약 주문이 가능합니다. 상점이 필요한 만큼 술을 미리 주문하면 공급사도 그만큼만 준비하는 거죠. 크라우드 펀딩과 비슷합니다. 재고 처리를 못해 상품을 폐기할 일이 없어지죠. 제조·수입하자마자 상점으로 보내기 때문에 창고에 보관하는 물류비도 아낄 수 있어요. 상점 입장에서는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출처: 벨루가 제공
이전에 서비스하던 수제맥주 정기배송 서비스

-처음 정기배송 서비스를 중단할 때 아쉬움은 없었나요. 


“규제를 2번 받는 동안 항상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사실 처음 창업 때부터 최종 목표는 지금과 같은 도매 유통 플랫폼이었습니다. 주류 유통업계 자체를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업계가 워낙 폐쇄적이고 장벽이 높았습니다. 일단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중요했어요. 먼저 물건을 사주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후 도매 플랫폼 관계사로 연결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수제맥주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수제맥주만으로 1년에 5만병을 취급했어요. 벨루가는 구매력이 큰 브랜드라는 업계 인식을 남길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국세청 규제 덕분에 더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 같아요. 물론 서비스를 사용 중이던 고객분들께는 죄송했죠. 제가 만든 서비스가 마치 불법 행위인 마냥 낙인 찍히는 것도 속상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정당한 사유로 규제를 당한 것도 아니었고요. “위법은 아니지만 허용해 줄 수도 없다”고 말하니 답답했습니다.”

출처: 벨루가 제공
최근 출시한 스마트 오더 서비스

-수익구조가 궁금합니다. 


“상점과 공급사 모두 벨루가 서비스를 무료로 씁니다. 주류업에서는 일반 커머스 플랫폼처럼 수수료를 받는 게 불법이에요. 대신 플랫폼 안에 광고를 넣어 수익을 얻습니다. TV나 지면 주류 광고는 일반 소비자 용입니다. 상품을 발주할 가게에 홍보할 채널이 딱히 없죠. 벨루가에는 술을 취급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광고가 가능합니다. 


다른 수익 모델도 더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스마트 오더 기능도 출시했습니다. 벨루가에서 원하는 술 상품을 고르고 픽업할 상점을 선택해 주문합니다. 그러면 해당 상품이 그 가게에 도착하죠. 소비자는 취향에 맞는 술을 직접 골라 살 수 있고 상점은 판매가 확정된 상품을 발주할 수 있습니다.”

출처: 벨루가 제공
김 대표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

-성과가 궁금합니다.


“매출 규모는 아직 공개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현재 벨루가에서 판매 중인 공급사 상품 종류는 4200종, 벨루가를 사용하는 상점은 1500곳입니다. 1달 플랫폼 내 조회수는 대략 28만뷰입니다.” 


-앞으로 목표는요. 


“단기적으로는 벨루가의 온라인 시스템을 주류업계에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배달의민족이 음식 배달 주문을 전화에서 앱으로 옮겨온 것처럼요. 장기적으로는 국내 주류업계 유통 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불필요한 비용만 줄이면 상점과 공급사 모두 수익을 늘릴 수 있어요. 그러면 일반 소비자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겠죠. 아직 주류 산업에 대해 ‘깡패들이 하는 사업이다’, ‘탈세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많습니다. 온라인 플랫폼 정착을 통해 주류 산업을 투명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바꾸고 싶습니다. 야놀자나 여기어때가 모텔 산업을 양지화한 것처럼요."


글 jobsN 오서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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