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원래 계측기 회사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조회수 2020. 7. 15.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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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거리 먼 회사 다니다 김형석 제안으로 작사가 데뷔
출처: 천영상 제공
작사가 김이나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곡만 수백 곡에 달하는 작사가가 있다. 아이유의 ‘너랑 나’, ‘좋은날’, ‘잔소리’부터 브라운아이드걸스의 ‘Abracadabra’, 케이윌의 ‘가슴이 뛴다’, 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까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노래 가사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인기 있는 곡이 많다 보니 매년 받는 저작권료만 7억원 이상이다.


작사가 김이나(42)를 수식하는 문장은 화려하다. 하지만 막상 그의 노랫말은 담백하고 섬세하다. 그가 노랫말을 이루는 ‘언어’를 다루는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릴 때부터 말이나 글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김이나의 작사법’ 이후 5년 만에 펴낸 책 ‘보통의 언어들’의 주제 역시 ‘언어’다.


그가 새롭게 내놓은 책 ‘보통의 언어들’은 관계, 감정, 자존감을 주제로 다양한 단어와 표현들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개중에는 ‘쳇바퀴를 굴리다’, ‘유난스럽다’, ‘드세다. 나대다’ 등의 부정적인 단어를 정 반대로 풀이한 것들도 있다.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언어에 대한 그의 통찰은 새삼스럽고도 흥미롭다. 책에 대한,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김이나 작사가에게 좀 더 들어봤다.

출처: 천영상 제공
작사가 김이나

-산문집을 펴낸 계기


“어떤 이야기를 나누던 간에 우리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것의 본질적인 의미에 동감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서로의 입장이 같든 다르든 상관없이 소통이란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어의 쓰임을 색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은 작사가로서 오랫동안 훈련된 결과인가


“소리로서의 언어를 원체 좋아했다. 가사를 쓰는 작업도 도움이 됐다. 노래가 흐르는 3분 남짓의 시간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글자 수는 한정적이다. 가장 적확한 표현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작업 과정이 그 자체로 훈련이었던 셈이다.”


-작사가가 원래 꿈이었나


“음악 관련 업계에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작사처럼 창작 일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원래는 계측기 회사에 다녔다. ‘콘텐츠’라는 개념이 처음 생기던 시기에 모바일 콘텐츠 업체로 옮겼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업계라는 점이 끌렸다. 그 시기 우연히 김형석 작곡가와 만났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 관련 일은 무엇이든 하고 싶어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테스트도 봤는데 더 공부를 해오라고 했다. 그때쯤 그의 콘서트 후기를 써 둔 내 홈페이지 주소를 드렸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그에 대한 단상, 사진 에세이 등이 있는 홈페이지였는데 여기를 둘러보시곤 작사가의 자질이 보인다고 곡을 하나 주셨다. 그 곡에 쓴 가사로 2003년 데뷔했다. 가수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이었다.”


-보통 작사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입문하나. 작사가라는 직업의 장단점은


“작사가 모집 공고를 보고, 녹음실에서 일하다, 시집을 출간했다가, 회사로 편지를 보내서 등등 다양하다. 작사가의 장점은 혼자서만 잘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점, 어느 곳에서나 일할 수 있다는 점, 수많은 사람이 돼 볼 수 있다는 점 등이다. 단점은 다른 프리랜서 직종처럼 갑자기 일이 없어질 수 있다는 점, 스스로 원해서 쉴 수는 있지만 원할 때 다시 돌아오긴 힘들 수 있다는 점, 대부분의 은퇴가 타의라는 점 등이다.”


-현재까지 480여곡(음악저작권협회 기준)에 참여했다. 이중 300여곡 이상이 히트곡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랫말을 짓는 비결이 있는지


“비결이 있다면 나도 알고 싶다. (웃음). 비결은 아니지만 신념이 있다면 ‘예술가적 고집’을 부리지 말자는 것. 이름이 알려지면 일을 가려하고, ‘어떤 종류의 가사는 쓰지 않겠다’고 못을 박을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고집 또한 존중하지만 나는 작사가가 하나의 ‘직업’이라는 사실에 충실하고 싶은 강박이 있다. 원하는 것만 하다가는 언젠가 내가 원하는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이 달라지는 시점에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요즘은 시간이 부족해 본의 아니게 일을 거절하는 일도 있지만 최근 10년 정도는 그런 정신으로 일했다.”

출처: MBC라디오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인스타그램 캡처
MBC라디오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 윤상과 함께(왼), 라디오 DJ로 활동 중인 모습(오)

-가장 애착이 가는 가사가 있나


“윤상,성규가 부른 ‘Re:나에게’다. ‘아직 어린 내가 미래의 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답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내용이다. 윤상이 직접 부르는 노래 가사를 쓴 건 처음이었다. 윤상 매니아인 내가 본 윤상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본인이 가사를 너무 좋아해줘 눈물 나게 뿌듯하고 기뻤다.”


-슬럼프도 있었나


“해도 잘 안 드는 작업실에서 일하고 밤낮은 바뀌고, 식사는 불규칙하고,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때였다. 그 시기에는 사람도 잘 안 만났다. 극심한 수면장애와 체중 감소를 겪다가 뒤늦게 불안장애, 우울증, 공황 등의 증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때는 글을 쓰는 감각도 의욕도 떨어졌다. 다행이 너무 늦지 않게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와 더불어 체력이 좋아지니 감각도 살아났다. 결국 모든 것은 ‘몸’이 하고 있던거지 ‘감’ 같은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크게 위로 받았다. 가수 데이브레이크 ‘덕질(깊이 탐구하고 좋아하는 행위)’과 오랜 취미인 레고, 다시 치기 시작한 ‘피아노’를 통해서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 특히 덕질을 통해 한동안은 (공황으로) 절대 못 갈 줄 알았던 사람 많은 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무엇인가에 열정적으로 빠지는 게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배웠다.”


-5월부터는 MBC라디오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지


“라디오와 작사는 ‘따로 또 같이’라는 부분에서 많이 닮아 있다. 작사도 혼자 하는 것 같지만 결과물을 놓고 보면 작곡가, 가수, 스탭들이 함께한다. 라디오도 작가, 피디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는 이런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혼자 하는 영역이 분명하되 최종 결과물은 누군가와 함께 내놓는 점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40대는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나이대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건 결국 슬럼프 때 깨달은 것처럼 ‘몸’이다. 건강한 신체를 갖는 것에 신경 써보려고 한다. 건강한 정신은 자동으로 따라 올 테니.”


글 jobsN 고유선 

jobsn_boo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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