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4번씩 샤워하고 환각·환청 시달리는 직업입니다

조회수 2020. 7. 4.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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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줘도 못 해요" 마지못해 시작한 ○○로 대박
이준희 버틀러 대표
보안회사 나와 청소업체 차려
바퀴벌레·오물 보면 힘들지만
고객 도우며 느끼는 보람도 커

"집마다 냄새가 달라요. 배설물·사체 썩는 냄새가 나는 곳도 있죠."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무직이었다. 10년 가까이 일했지만, 손에 쥐는 월급은 270만원이 전부였다. 돈을 더 벌 방법을 궁리하다 2017년 회사를 나와 입주 청소를 시작했다. 3년 차인 지금 그가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집을 치우고 받는 돈은 건당 100만원. 쓰레기 집을 청소하는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브 채널 ‘클린어벤져스’도 운영한다. 이준희(39) 버틀러 대표의 사연을 들어봤다.

출처: jobsN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준희(39) 버틀러 대표.

◇입주 청소하다 고객 부탁으로 쓰레기 집 방문 시작


-소개를 부탁한다.


“홈 케어(home care) 전문 회사 버틀러 대표다. 청소 중개 앱 ‘마녀의빗자루’를 운영한다. 청소업에 종사하는 젊은 개인사업자 친구들과 만든 특수청소 모임 ‘클린어벤져스’도 이끌고 있다.”


-보안회사에 다녔다고.


“대학 호텔조리과를 다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졸업을 못 했다. 23살 때부터 백화점 보안요원으로 일했다. 중간에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출동 서비스를 하는 보안회사에 들어가 사무직으로 일했다. 10년 정도 근무하고 결혼했는데, 월급만으로는 서울에서 살림이 힘들 것 같았다. 먼저 퇴사한 선배가 청소업체를 차렸다는 걸 알았다. 어떻냐고 물어보니 일하는 만큼 번다고 하더라. 그 선배는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번다고 했다. 교육비 300만원을 주고 청소 일을 배웠다. 2017년 퇴사하고 2018년부터 입주 청소를 시작했다.”


-특수청소로 업종을 바꾼 계기는.


“입주 청소만 해도 벌이가 괜찮았다. 공동 창업한 동료와 

둘이서 한 달에 1500만원 매출을 냈다. 어느 날 한 고객에게 의뢰가 들어왔다. 본인이 사는 집을 청소해달라 부탁했다. 집 사진을 보여줬는데, 말문이 막혔다.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못 하겠다고 했다. 얼마 주면 하겠냐고 묻기에 ‘100만원을 줘도 못 한다’고 했다. 그보다 더 줄 테니 꼭 해달라 부탁해서 결국 100만원을 받고 청소하기로 했다.


복도식 오피스텔이었다. 의뢰인 집 문을 열면 복도 전체가 쓰레기 냄새로 가득할 정도였다. 오물은 기본이고, 음식이 다 썩어서 악취가 풍겼다. 바퀴벌레도 엄청 많았다. 충격적이었지만, 일단 한번 시작하니 계속하게 됐다. 특수청소는 입주 청소보다 시간당 임금이 훨씬 높다. 입주 청소는 원룸 하나에 15만~20만원을 받는다. 쓰레기 집 청소는 같은 조건에 100만원을 번다. 어차피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이다. 그날 6시간 청소하고 100만원을 받았다.”


-힘들지 않나. 시각·후각적 고통이 클 것 같다.


“3년 차인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집마다 냄새가 다르다. 어디는 침출수(매립장에서 쓰레기가 썩어 흐르는 더러운 물) 냄새가 나고, 사체 썩는 냄새나 구린내가 나는 곳도 있다. 그래도 청소한 지 1~2시간 지나면 코는 적응한다. 문제는 시각이다. 쓰레기를 뒤지다 동물 사체나 용변이 나올 때가 있다. 바퀴벌레가 우글대는 것도 종종 목격한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적응이 불가능하다.”

출처: 클린어벤져스 유튜브 캡처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의뢰인 집.

-그래도 일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지 않나.


“별걸 다 해봤다. 마스크 안에 치약도 발라보고, 향수도 뿌리고, 코도 막아봤다. 그런데 냄새가 워낙 강해 뭘 해도 소용없다. 환각이나 환청도 경험한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몇 번이나 샤워하고 목욕해도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참으면서 하는 게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청소 순서가 궁금하다.


“그때그때 다르다. 쓰레기를 쌓아놓은 집은 일단 입구부터 뚫어야 한다. 움직일 공간을 확보한 다음 청소 인력이 들어가고, 재활용 쓰레기부터 치운다. 그다음 일반쓰레기를 치우고 약품을 뿌려 가며 집 안을 청소한다. 투입 인원은 쓰레기양에 따라 다르다. 쓰레기가 1톤 화물차를 가득 채운다고 가정할 때 4명이 6시간 정도 치운다.”


-어떤 사람들이 청소를 의뢰하나.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연예인·간호사·기자·선생님 등 다양하다. 성별은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 빠진 분이 많다. 20~30대 1인 가구가 대부분이다. 정신적인 아픔을 겪는 분만 있는 건 아니다. 정말 바빠서 청소를 못 하다가 집이 더러워진 경우도 있다. 어떤 간호사 고객은 정기적으로 청소를 의뢰한다. 밤에도 일하니까 퇴근하고 집에 오면 청소할 엄두가 안 나는 것 같았다.”


-한 달에 몇 집이나 치우나.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막 더워질 무렵이 가장 바쁘다. 한 달에 30건씩 맡는다. 겨울에는 월 10곳 정도 치운다.”

출처: 이준희 대표 제공
클린어벤져스는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 무료로 쓰레기를 치워주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남의 사생활을 목격하게 된다. 유서를 발견한 적도 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까지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도 꽤 있는데, 고양이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일 때가 많다.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분이 있으면 정기적으로 연락해 생사 확인을 한다. 언제는 고객 한 분이 연락이 닿지 않아 경찰과 함께 집을 방문했는데, 수면제를 먹고 자느라 연락을 못 받은 거였다.”


-쓰레기 집 청소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브 채널도 인기다.


“동료와 청소하러 다니면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우리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집을 청소하다 보면 특이한 물건도 나오고, 예상치 못한 일도 생긴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싶어 유튜브를 시작했다. 물론 고객한테 동의를 받고 영상을 올린다.


2018년 10월 채널 운영을 시작했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TV에서나 보는 일을 당신들이 하는구나’ 이런 댓글이 많았다. 액션캠 같은 촬영 장비를 사서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했다. 청소하는 것만 보여주면 심심하니까 고객과 인터뷰도 하고, ‘헬프미 프로젝트’도 한다. 헬프미 프로젝트는 사연을 보낸 분 중 일부를 뽑아 돈을 받지 않고 청소해주는 서비스다. 지금은 채널 구독자가 9만명이 넘는다.”

출처: 이준희 대표 제공
쓰레기 집 청소를 함께하는 클린어벤져스 멤버들.

-고객한테 받는 스트레스도 있을 것 같다.


“고객과 협의하고 일을 하는데, 청소가 끝나고 나서 ‘소중한 물건인데 왜 버렸느냐’며 항의하는 고객이 있다. 우리는 고객이 버리지 말라는 것은 안 버리고, 누가 봐도 쓰레기로 보이는 것만 버린다. 그런데 물건값을 물어내라고 요구하거나 청소 비용을 내지 않는 손님도 있다. 계약서를 쓸 수도 있겠지만, ‘청소하면서 무슨 계약서까지 쓰느냐’는 인식이 퍼져 있다. 영업하면서 일하는 처지에 계약서 쓰기를 요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돈을 내지 않은 손님 때문에 법원에 소장을 낸 적도 있다. 유튜브 채널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 헬프미 프로젝트에 사연을 보낸다. 돈을 내지 않고 무료 청소 서비스를 받으려 하는 거다.”


-회사를 그만둔 걸 후회한 적은 없나.


“한 번도 없다. 일 자체는 만족스럽다.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몸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쓰레기 집을 청소할 생각이다.”


-특수청소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예전에는 부잣집이 아닌 이상 돈을 주고 청소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람은 점점 게을러졌다. 그만큼 청소 시장은 나날이 커지고 있어 전망이 밝다. 다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다지 좋지 않다. ‘젊은 애들이 오직 할 게 없어서 청소나 하고 있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 창업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일을 배워서 장비만 갖추면 점포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청소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아 창업 교육도 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몸이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해 쓰레기 집에서 사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께 창피해하지 말고, 우리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꼭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집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 많아 사회문제로 여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례는 많은데 아직 이슈가 안 된다. 이런 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조금 더 커졌으면 좋겠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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