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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하류인생 살거야" 악담 들은 여중생의 15년 뒤 모습

조회수 2020. 7. 1.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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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에게 막말 들은 이사람은 지금
스푼 라디오 마케터 '최빛나'
고등학교 2번 자퇴, 대학교 중퇴
덴마크에서 결혼 포기하고 한국 돌아와 취업준비
모두 포기하라 했지만 한 달 만에 스푼라디오 경력직 입사

검정고시 출신 26살. 대학교 졸업장도 없다. 자퇴를 3번이나 했다. 경력이라곤 음식점 알바와 통역 일밖에 없다. 그런데 면접에서 질문 하나 받지 않고 스푼 라디오 경력직 마케터로 입사했다. 그것도 준비 한 달 만이다.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보통 쌓는 ‘스펙’ 하나 없이 경력직 입사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스푼 라디오 브랜딩 전략팀 최빛나(29)씨를 만나봤다.

본인 제공

-본인 소개를 해달라.


“한국과 인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인도 대학에 들어갔다가 마지막 학년에 중퇴했다. 이후 덴마크에서 1년 3개월 살았다. 26살에 한국에 돌아와 스푼 라디오 경력직에 입사했다. 4년 동안 마케터,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이제는 브랜딩을 맡고 있다.”


-자퇴한 이유가 궁금하다. 그것도 2번씩이나.


“나 하나쯤은 그냥 나답게 살고 싶었다. 수능 봐서 좋은 대학 가는 식으로 성공하고 싶지 않았다. 2008년 고등학교 국제교류 프로그램으로 인도에 가서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나를 문제아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넌 수학을 못 하니 좋은 대학, 대기업에 못 가는 하류 인생을 살 거야’라고 한 말을 듣고 나서다. 


인도에 다녀온 후 그길로 자퇴했다. 다시 인도에 가기 위해 유학원을 직접 알아보고 인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유학원 사기로 ‘뉴델리’가 아닌 뉴델리 근처 지역 ‘하리하나’로 갔다. 인도 사람도 ‘거기서 왜 사냐’고 할 정도인 곳이다. 또 영어를 못 해서 따돌림을 당했다. 당시 체중이 17kg 빠지고 공황장애가 생겼다. 한국 나이 열여덟, 또 한 번 자퇴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4개월 동안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19살에 합격했다”


-대학교도 마지막 학기에 중퇴했다.

출처: 본인 제공
인도 대학 동기들과 찍은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최빛나

“21살까지 영어 공부를 해서 인도 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학교 비리가 심각했다. 6개월 만에 과 동기 50명이 자퇴했다. 집에 돈이 너무 많아 학위만 따러 온 인도 갑부도 넘쳤다. 무엇보다 전공 교수님이 비리 문제로 학교에서 쫓겨났다. 이곳에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졸업을 1년 앞두고 중퇴했다.”


-불안하지는 않았나.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돌아보니 내 삶은 실패투성이더라. 한국에 돌아온 후 학교를 3번이나 자퇴한 나를 사회의 낙오자라고 생각했다. 버킷리스트에 ‘덴마크에서 살아보기’라고 적은 걸 봤다. 7개월 동안 하루 12시간씩 일주일 내내 영어 통역 일과 과외로 경비를 벌었다. 2015년 24살, 1000만원을 들고 덴마크로 떠났다.

출처: 본인 제공
덴마크에 살던 시절

인종차별과 온갖 수모를 겪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서류 200장을 돌리고 베트남 음식점에서 주방보조로 1년 일했다. 주방일을 하면서도 행복했다. 어떻게 살아도 아무도 내 삶에 간섭하지 않아서다. 다시 한번 세상은 넓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결혼을 포기하고 한국 회사 취업을 선택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덴마크에서 라트비아 남자친구를 만났다.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살았다.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활고에 시달렸다. 결혼은 현실이었다. 결혼을 포기하고 26살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은 건 끝없는 선택과 실패, 주방 경력이었다. 후회는 없었지만 떳떳하지도 않았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두려워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겁내고 있던 것은 ‘한국’이었다. 한국 사회에 맞지 않는 부적응자라고 생각해 아무 도전도 안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직장인이 되어보자고 결심했다.”


-서류합격 비결은


“두 가지 계획을 세웠고 성공했다. 


‘딱 30일 안에 취업하기, 내가 가고 싶은 회사 골라 가기.’ 


먼저 ‘나’와 지원하는 ‘회사’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회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눈길을 끌기 위해 이력서에 정장 입은 증명사진 대신 파티하는 사진을 넣었다. 스푼 라디오가 해외에 진출한다는 기사를 봤다. 대학졸업장 대신 인도, 덴마크에 살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외 사업에 도움을 줄지 적었다.”


-면접에서 질문도 안 받고 합격했다.


“면접 보러 가서 ‘잠시만요,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미리 만들어간 피피티를 20분 동안 발표했다. 첫 페이지는 회사 로고와 함께 당신이 잡아야 할 인재 '최빛나'의 이야기, 마이쿤에 입사하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출처: 본인 제공
면접 ppt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다 된 밥에 숟가락 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직접 스푼 앱을 사용해보고 장단점과 보완할 부분을 말했다. 왜 스타트업에 지원했는지, 마이쿤이어야 하는 이유, 마케팅 부서에 지원한 이유, 왜 '나'와 함께 일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발표가 끝난 후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이미 궁금하거나 걱정할만한 부분을 다 말해서인 것 같다.”


-마케팅 경력도 없는데, 인도네시아 팀 리드까지 했다.


“2017년 9월 퍼포먼스 마케터로 들어갔다. 입사 전 2주 후에 입사하겠다고 했다. 이사님께 직무 관련 책을 추천받았다. 내가 맡은 직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갔다. 입사 후에는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하고 디지털 마케팅 강의를 들었다.

출처: 본인 제공
인도네시아 팀 리딩을 맡았을 때 팀원과 찍은 사진

2년 동안 스푼 라디오 한국 마케팅팀 퍼포먼스 마케터,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3년차에는 인도네시아 팀 리딩을 맡았다. 마케팅 서포트 업무와 재무, 인사, 운영 등 여러 업무를 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베트남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담당했다. 얼마 전 브랜딩 파트 부서로 옮겼다.”


-만든 광고 중에 사람들이 알만한 것이 있나.


“듣다가 주무셔도 좋습니다”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이 말을 들으면 ‘아! 그거 스푼 광고’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 광고를 많이 만들었다. ‘늘 혼자인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누군가가 나의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 가장 큰 성과를 보여준 광고다. 누군가에겐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힘을 줄 수 있는 광고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페이스북 싱가포르에 방문한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스푼' 페이스북 마케팅 성공사례와 내 이름 석 자가 걸려있었다.”

출처: 본인 제공
페이스북 싱가포르에 걸려있는 '스푼' 성공사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책을 낼 계획이다. 대기업에 입사한 것도 억대 연봉 받는 이야기도 아니다. 나를 통해 ‘나답게 어떻게든 살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한국에서 취업하기라는 벽 하나를 깼다. 두려워하는 다른 것들에 계속 도전할 것이다. 


글 jobsN 김하늘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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