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도 주목, '열도의 민낯' 해결 나선 한국 여성

조회수 2020. 9. 15. 17: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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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야후재팬서 잘 나가던 이 사람이 사표 던지고 창업한 사연은
직장 내 성희롱 보고 창업 결심
치한 관련 정보 올릴 수 있는 앱 개발
IT기술로 안전한 사회 만들고파

‘chikan(치칸).’ 치한을 뜻하는 일본어 ‘지칸(痴漢)’의 영어 표현이다. 치칸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일본 내 치한 문제는 심각하다. 젊은 여성 중 70% 정도가 지하철에서 한 번 이상 성추행을 경험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 매년 검거되는 치한만 약 4000명이다. 실제 치한 범죄는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검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내 치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선 한국인이 있다. 스타트업 레이더 랩 우나리(42) 대표다. 우 대표는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치한에게 피해당한 사실을 쉽게 등록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레이더 제트’(구 치한 레이더)를 개발했다. 일본 최대 공영방송사인 NHK가 레이더 제트를 중심으로 30분 특집 방송을 편성했을 정도로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 대표에게 창업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레이더 랩 제공
레이더 랩 우나리 대표

◇치한 만나 피해당한 사실 공유하는 앱 ‘레이더 제트’


-레이더 제트는 어떤 서비스인가. 


“어떤 지역에서 치한을 만났고, 어떤 피해를 봤는지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기반 서비스입니다. 치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익명성을 보장해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입력할 수 있도록 했어요. 정말 간단하게 “누가 지나가면서 엉덩이를 만졌다”는 사실만 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용자가 가해자 용모, 피해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등록하고 있습니다. 2019년 8월 서비스를 출시했어요. 현재 이용자는 5만4000명, 피해 등록 건수는 1308건 정도입니다.” 


-창업 전 야후재팬에서 10년 넘게 일했었다고. 


“2004년 야후재팬에 입사했습니다. 처음 입사해서는 ‘지혜봉지'(네이버의 지식인과 비슷한 Q&A 시스템)을 런칭했습니다. 출시 후 3달 만에 하루순이용자수(DAU)가 10만명이 넘었고, 3년 차에는 DAU 300만명을 달성했습니다. 지금은 1000만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발전했어요. 제가 만든 서비스를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쓰는 것을 보고 엄청난 보람과 뿌듯함,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야후에서 광고 플랫폼 개발, 데이터 분석, 디자인 연구 등을 했습니다.”

출처: 레이더 랩 제공
야후재팬에서 근무하던 당시 모습. 왼쪽 사진에서는 가운데, 오른쪽 사진에서는 맨 오른쪽에 위치한 사람이 우나리 대표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한 이유는.


“야후가 저에게는 좋은 직장이었지만, 알고 보니 저에게만 좋은 회사였습니다. 직장 내 갑질이나 성추행 문제가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었죠. 관리직으로 승진한 후 많은 여직원이 상담을 해왔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던 게 우선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이 도와줘서 정말 고맙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고,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었어요.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IT 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사회 변화를 끌어내고 싶어요.” 


◇추가 피해 막고, 도움 필요한 사람 도울 수 있어 


-치한 정보 공유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추가 피해를 예방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피해 정보를 등록하면, 반경 500m나 1km 이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림이 울립니다. 해당 지역에 방문할 예정이었던 사람은 동선을 변경하거나 하는 식으로 치한을 만날 위험부담을 덜 수 있는 거죠. 또 피해를 본 사람을 도와주고, 경찰에 신고해줄 수도 있습니다. 


더 큰 효과는 치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사실 성추행을 당하고도 신고하거나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한국도 마찬가지죠. 그렇다 보니 사회에 만연한 문제이지만, 문제라고 인식조차 못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인식하려 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레이더 제트 앱에 피해 사실이 모이면 범죄의 증거로 활용할 수 있어요. 치한을 사회적인 문제로 공론화시킬 수 있고, 제도 개선 등을 만들어낼 수도 있죠.”

출처: 레이더 랩 제공
치한을 만나 피해당한 사실을 공유할 수 있는 레이더 제트 앱 화면

-레이더 제트 덕에 치한 피해를 예방한 사례가 있나.


“치한 예방 효과는 구체적으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저희가 기대했던 것처럼 피해 사실을 알리고, 성범죄를 고발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한 분은 중학생 때부터 매년 200번 정도 성추행을 당하셨대요. 지금까지 총 200번이 아니라 매년 200번을요. 그런데 경찰에 신고는커녕 친구나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셨대요. 하지만 레이더 제트 앱을 쓰면서 용기를 얻었고, 이후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메일을 보내주셨어요. 개개인의 작은 변화가 사회 제도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익 구조는. 


“레이더 제트 자체는 무료 서비스이기 때문에 수익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레이더 제트 데이터를 활용해 사업을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실시간 사건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은 저희밖에 없어요. 치한 데이터를 활용해 경찰 순찰을 최적화할 수도 있고, 더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술 활용해 안전한 사회 만들고 싶어 


-외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사업하기 어려운 점은 없나. 


“일본에서 15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고, 사업을 시작할 때 도쿄 창업 지원 프로그램 도움을 받아 아주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다만 항상 일본식 매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일본은 서비스를 하나 개발할 때도 오랜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고 치밀한 결과물을 내놓고, 사람들과 천천히 신뢰를 쌓아가면서 관계를 맺어요. 저도 서비스를 만들 때 어떻게 하면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충분히 생각하고, 검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 맺을 때도 시간을 많이 들이고 있어요.”

출처: NHK 방송화면 캡처
NHK 특집 방송에 나와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는 우나리 대표

-목표는.


“빅데이터, IT기술을 이용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동네 만들기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트 레이더뿐 아니라 관련 서비스를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에요.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싱크탱크와 함께 데이터를 활용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일본을 넘어 한국과 다른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출시하고 싶어요.”


글 jobsN 박아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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