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생→은행원→승무원→사시 합격, 41살 지금은..

조회수 2020. 9. 16.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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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끝판왕' 온라인 커뮤니티서 화제..경험 쌓으려 취직했다가 변호사까지
송지헌 과천경찰서 수사과장
‘경력 끝판왕’ 온라인 커뮤니티서 화제
경험 쌓으려 취직했다가 변호사까지
“세무사 자격증 따 수사에 도움 줄 것”
출처: 본인 제공
송지헌 과천경찰서 수사과장.

"변호사로 일하다 경감으로 경찰에 왔어요. 경정 승진 시험을 볼 때 오후 6시에 퇴근하면 새벽 2시까지 매일 공부했습니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더라고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과천경찰서 수사과장 송지헌(41) 경정이 '경력 끝판왕'으로 화제를 모았다. 송 과장은 미대를 나와 20대 때는 외국계 은행 직원과 외국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했다. 퇴사 후 3년간 사법시험을 공부하고 합격해 30대 때부터 변호사 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는 경찰로 자리를 옮겨 수사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과천경찰서에서 수사·형사 업무를 총괄하는 송 과장의 정체가 궁금했다.


◇더 넓은 사회 경험하고자 대학원 나와 취직


-이력이 특이하다. 학교에서는 미술을 배웠다고.


“원래 꿈은 화가였다. 어머니가 미술을 하셨는데, 어릴 때부터 내가 화가가 되기를 바라셨다. 재능도 있었다. 특수목적 사립예술중학교 예원학교에 들어가 고등학생 때까지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 후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에 들어갔다. 서양화를 계속 배우려 했지만, 대학교 2학년 때 한국화(畵) 전시를 보러 다니다 한국 그림의 매력에 빠져 한국화 전공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이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다 돌연 대학원을 나왔는데.


“그림 그리기는 작업실에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해온 탓에 사회라는 광장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그림은 평생 그릴 거였다. 그 전에 사회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뭘 먼저 공부할까 고민하다 돈의 흐름을 배우기로 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나. 돈을 어떻게 벌고, 빌리고 쓰는지 알고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은행이었다. 홍콩상하이은행 한국 지사에 들어가서 개인 금융 업무를 담당했다.”

출처: 본인 제공
이화여대 재학 중 찍은 사진. 왼쪽이 송 과장.

-취업 준비도 안 하고 은행에 들어갔단 말인가.


“면접을 잘 봤다. 외국계 금융회사라 우리나라처럼 전공이나 이력을 까다롭게 보지 않았다. 영어를 잘하고, 면접을 잘 보면 합격할 수 있었다. 미술 전공자는 대학원에 가면 보통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나도 유학 준비로 영어 공부를 해둔 덕분에 합격했다. 1년 정도 다니다 그만뒀다.”


-왜 그만뒀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신용이나 경제력으로 평가하게 되더라. 이마에 신용 몇 등급이라 적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방법을 고민했는데, 외항사 승무원이 떠올랐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외국에 머무를 때 그 나라 미술 작품도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마침 싱가포르 항공사에서 승무원을 공개 채용해 지원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일했다."


-승무원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인생의 황금기였다. 또래 동료들과 전 세계를 누볐다. 대우도 좋았다. 20대 중반에 세금을 떼고 연 6000만원 정도를 벌었다. 하지만 외항사에서 계속 경력을 이어나가기는 힘들었다.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다 다시 미술을 할 생각이기도 했다. 20대 후반에 퇴사했다.


대학원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 전에 딱 한 가지 일만 더 해보고 싶었다. 승무원으로 일할 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변호사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로스쿨이 막 생길 때였다. 사법시험이 사라지기 전 눈 딱 감고 시험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화가로 살더라도, 변호사 자격증 있으면 좋지 않나. 그래서 부랴부랴 승무원을 그만두고 서울 신림동을 찾았다.”

출처: 본인 제공
싱가포르 항공사 근무 시절 송 과장.

◇3년 만에 사시 합격,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 소중”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


“1차 시험 때 헌법·형법·민법 세 과목만 공부하면 된다더라. 1년이면 붙을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는 11~12과목을 공부하지 않나. 사촌 동생이 연세대 법대를 갔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 동생은 학교에 가자마자 고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3번을 연달아 떨어졌다. 내가 승무원으로 일할 때였다. 고시생은 시험에 떨어지면 그 해 공부한 책을 버리는 ‘책걸이’라는 걸 한다. 판례나 법 조항이 바뀌니까 책도 새로 산다. 동생이 버리려고 내놓은 책을 읽어 보니 재미있었다. 법학이 적성에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가족 중에 법조인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이름도 알 지(知)에 법 헌(憲) 자를 쓴다.”


송 과장은 2006년 11월부터 사법시험 1차 시험공부를 시작해 2007년 겨울 1년 만에 합격했다. 2009년 2차 시험에 붙어 사법연수원 41기로 들어갔다.


-공부가 힘들지는 않았나.


“예술하는 사람은 연상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학생 때부터 나무가 가지를 치듯 사고 폭을 넓혀 나가는 훈련을 한다. 판례를 공부할 때는 논리 너머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또 시작이 늦다 보니 바로 대학을 졸업하고 준비하는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승무원 시절에는 비행 자체가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밤도 종종 지새웠다. 책상 앞에 앉아 커피 마시며 공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남들이 밥을 1시간 먹을 때 10분 만에 먹는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쉽게 말해 자는 시간 빼면 공부만 했다.”


-누군가는 금수저라 가능한 게 아니었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만일 집에서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그림만 그리라 했으면 굳이 취업할 생각도 안 했을 거다. 은행에 간 것도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시 공부를 할 때도 승무원 하면서 번 돈을 다 써가며 교잿값이나 강의비를 냈다. 한 번 무언가를 결정하면 앞만 보고 다른 걸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뭘 하고 싶다, 그러면 하는 거다. ‘만일 안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안 한다.”

출처: 본인 제공
경찰청에서 근무할 때 인도대사관에 초청받은 송 과장.

◇변호사로 일하다 경찰 전직···“세무사 자격증 딸 것”


-힘들게 변호사가 됐는데 또 경찰로 전직했다.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부터 경찰에 가고 싶었다. 연수원에서 경찰청, 법원 등으로 실습을 나갔다. 여러 업무 가운데 수사가 가장 재미있었다. 현장에도 나가고 피의자 심문도 하고 싶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검사직무대리로 시보 생활을 했는데, 막상 가보니 양손에 볼펜 한 자루와 전화기를 쥐고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현장 수사는 경찰 몫이었다. 또 검찰 조직이 너무 권위적으로 느껴졌다. 말로만 듣던 전관예우를 목격한 적도 있다. 얼마 전까지 옆방에 있던 검사님이 변호사로 찾아와 영장을 기각해달라 하니 실제로 기각되는 걸 보고 너무 속상했다. 연수원 교수님 권유로 경찰에 들어가기로 했다.


당장 경찰에서 변호사 채용 공고가 나지 않아 일단 로펌에 들어갔다. 입사할 때 3년 정도 경험을 쌓고 경찰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할 때도 주로 형사 사건을 맡았다. 그러다 2014년 변호사를 경감으로 채용하는 경찰 1기 변호사 특채에 붙었다. 원래 사법시험에 붙으면 공공기관에서 5급(과장급)으로 뽑았다. 그런데 로스쿨 제도가 생기면서 경찰에서 경정(5급)으로 선발하던 자리가 경감(6급)으로 바뀌었다. 계급이 하나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수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계급은 신경 쓰지 않았다.”


2014년 경찰 1기 변호사 특채 경쟁률은 3.7대 1이었다. 사시 출신 3명, 로스쿨 출신 17명이 합격했다.


-언젠가 또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나 직업이 있나.


“공무원은 사기업과 비교하면 직업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계속 배우지 않으면 못 참는 성격이다. 공부는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평생 직장은 없다는 말도 있지 않나. 변호사 시절 경영권 분쟁·인수합병(M&A) 등 회사 사건을 맡았다. 세무회계를 모르면 깊이 있는 수사를 하거나 의견을 낼 수 없었다. 예를 들어 회계 부정 사건인데, 변호사가 회계를 모르면 사건을 어떻게 맡나. 그래서 2012년 로펌 재직 중 고려대학교 법무대학원 조세법학과에 들어갔다. 1년을 다니고 경찰에 오면서 휴학했다. 이직하면서 대학원 공부까지 하기 힘들었다. 요즘 세무회계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세무사 업무는 할 수 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과 실제 지식이 있는 것은 다르지 않나. 세무사 자격증을 딸 생각이다.”


-앞으로 계획은.


“자본시장에서 일어나는 범죄 수사에 관심이 많다. 경찰에서도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가 있다. 회사법·자본시장법 지식을 쌓아서 실무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 이 분야를 계속 공부해서 경찰에서 계속 발전해 나가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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