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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1시간, 기다림 3시간…한국이 인정한 첫번째 사람

우리나라 최초 피아노 조율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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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주인공으로 65년…주요 공연 조율만 4만1000회
고3때 교회 풍금에 반해 시작
연주자 까다로운 요구 가장 힘들어

'대한민국 최초 피아노 조율 명장’

이종열 명장이 피아노를 조율하는 모습

출처YTN 유튜브 캡처

피아노 조율 명장1호 이종열(83)씨. 피아노 조율사는 무대 뒤 주인공이다. 사람들에게 안보이는 무대 뒤에서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노를 고쳐주는 피아노 의사다. 1963년부터 조율사로 일했으니 올해로 조율인생 65년. 공연장 피아노 조율만 4만1000회 넘게 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25년째 예술의전당 수석조율사로 있다. 예술의전당 음악당 무대 뒤편 조율사방에서 이종열 조율명장을 만났다.


-피아노 조율사가 무엇인가.


“조율을 잘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보면 피아노 고쳐 주는 아저씨에 불과할 테지만, 나는 조율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조율은 피아노 소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조율을 잘 못하면 예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출처손열음 인스타그램 캡처

-1960년대부터 조율일을 했다, 계기는.


“1956년 고등학생 시절, 교회 풍금을 고치다가 조율 세계에 발을 디뎠다. 학교에 딱 한대 풍금이 있었는데 아무도 못만지게 했다. 못하게 하니까 더 하고 싶더라. 마침 예배당에 갔는데 풍금이 있었다. 기회였다. 학교 마치면 바로 교회로 가서 저녁도 안먹고 새벽 1시까지 풍금만 쳤다. ‘이 풍금을 내 것처럼 쓰려면 반주자를 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찬송가 580개를 모두 연습해 반주를 맡았다.


그런데 소리가 이상했다. 연주하면 어떤 건반은 소리가 부드럽고, 어떤 건 거칠었다. 풍금 뒤쪽 뚜껑을 열고 진동판에 손을 댔다. 여기저기 만지고 연주해봤지만, 결과는 실패. 풍금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고치려고 거금을 주고 일본어 조율책을 주문했다. 그 책 읽으려고 일본어 교재까지 사서 독학으로 일본어도 공부했다. 읽고보니 음정 맞추는 것을 ‘조율’이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 알았다. 밤새 풍금 고치는 일에 매달렸다. ‘어떻게 하면 더 예쁜 소리가 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나를 조율의 길로 이끌었다.”


-그 이후로 조율을 누구한테 배운건가.


“스승도 없고 대학도 안나왔다. 6·25 전쟁 후라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든 때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하는 시절이었다. 집에 풍금이 없으니 이웃 교회를 다 돌아다녀 풍금 조율을 연습했다. 군대에서는 군대 안에 있는 교회 풍금을 조율했다. 제대 후 수도피아노사에 취직해 처음 피아노 조율을 해봤다.”


-회사 월급보다 부수입이 더 많았다고.


“월급은 4만원인데 부수입이 25만원이었다. 보통 조율사는 30분 조율하고 가버린다. 그러면 고객은 성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장점은 조율사이면서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것이었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조율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조율이 끝나면 피아노 연주를 해줬다.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가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봐준 고객들에게 받은 부수입이 더 많았다. 하루에 회사 일로 4대, 개인적으로 4대씩 봐줬다.


지금도 조율을 마치고 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리허설과 공연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조율 1시간, 기다리는 시간 3시간이다. 모니터로 연주보면서 소리연구를 한다. 예전에는 공연장 객석에 들어가 쌍안경으로 연주를 보기도 했다. 이런 사소한 노력이 나를 명장으로 만든 것 같다.”


-조율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이종열 명장이 피아노 조율하는 모습(좌) 이종열 명장 손(우)

출처KBS 유튜브 캡처(좌) 와이낫(우)

“지금까지 조율한 횟수만 4만회가 넘는다. 그래도 조율하는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다. 소리 한 음 한 음에 긴장하다보니 위장병을 달고 산다. 까다롭고 예민한 연주자 요구사항을 다 맞춰줘야 한다. 피아노 한대를 50시간 동안 하루종일 서서 조율한 적도 있다. 잠도 제대로 못잤다. 피아노에서 가장 좋은 소리가 나도록 노력하는데 연주자들이 알아주지 못할 때 가장 힘들다.”


-조율사로 일한지 34년만에 명장신청을 했다.


“한 직종에서 15년 넘게 일한 사람이면 명장신청할 수 있다. 알고는 있었는데 안했다. 34년동안 일했지만 스스로 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명장신청을 받는 산업인력공단에서 조율품목을 빼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청인원이 몇년동안 없어서였다. 그래서 신청했다. 명장으로 뽑히면 조율사라는 직업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청마감 5일 전부터 신청서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감 전날까지 밤새서 서류를 준비했다. 서류와 현장심사 통과 후 2007년 피아노조율 명장 제 1호로 뽑혔다.” 

이종열 명장 조율사방에 걸려있는 명장액자

출처와이낫

-얼마나 잘해야 명장인 것 같은가.


“같은 조율일을 하는 수백명의 조율사들이 쳐다보는 앞에서 떨지 않고 조율 할 수 있을 정도면 명장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떨지않을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80이 넘었는데 자기관리는 어떻게 하나.


“조율은 청각, 시각, 촉각으로 한다. 세 감각이 망가지지 않도록 지금까지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있다.”


-아들도 조율사 자격증이 있다고.


“하지만 조율사는 아니다. 공기업 다닌다. 아들이 나를 부러워한다. 정년이 없다고. 아들이 고등학생일때 나한테 ‘미래에는 전자기술이 발달해 조율사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이 80넘어서까지 이 일을 하고있다. 소리의 아름다움은 절대 기계로 만들 수 없다. 사람 귀로만 가능하다.”


-앞으로 목표는.

이종열 명장이 조율할 때 쓰는 공구함

출처와이낫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새 피아노를 쓰겠다고 해서 8시간에 걸쳐 조율해 준 적이 있다. 연주를 마친 후 내 방에 들어와 감사인사 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 연주자에게 최고의 피아노를 선물하는게 목표다. 아직도 틈만 나면 조율을 위한 나만의 새 공구를 만든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조율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글 jobsN 김하늘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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