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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김태원…대한민국 전설들이 30년째 찾는 이 사람

40여년 기타 수리 ‘세영악기’의 이세문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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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기타 수리 ‘세영악기’의 이세문 대표
부활 김태원 “강하고 특이한 소리”
손무현 “깨끗하고 맑은 소리” 선호
손님 하루 2~4명 찾아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할 것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낙원 악기 상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악기 상가다. 1969년 지어져 50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300여개의 악기 전문점들이 모여있다. 이렇게 많은 악기 상점이 오랜 시간 한 곳에 모여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한다. 이 낙원악기상가의 한 평(3.3㎡) 남짓한 공간에서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의 기타를 고치는 사람이 있다. 거칠거칠한 손끝, 깊게 박힌 굳은살, 깨진 손톱은 40년간 기타와 함께한 세월을 말해준다. 기타 수리 전문가인 ‘세영악기’의 이세문(63) 대표를 만났다.

'세영악기’의 이세문 대표.

출처jobsN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낙원악기상가에서 40여년간 기타 수리를 하는 ‘세영악기’ 대표 이세문입니다.”


-기타 수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친형이 기타 제조 공장을 운영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공장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레 기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낙원악기상가에는 1982년 처음 오게 됐어요. 아는 형님이 상가에서 기타 상점을 해서 놀러 왔었죠. 형님이 자기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고 그때부터 낙원상가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기타를 판매하는 일을 했는데 단골들의 기타를 고쳐주면서 입소문이 났습니다. 이후 1986년 기타 수리 전문점인 ‘세영악기’를 냈습니다.” 

단골인 기타리스트 김태원.

출처부활(@boohwal_official)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우리나라 록의 대부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신중현씨도 오랜 시간 이씨를 찾았다.

출처유튜브 채널 'CJ ENM' 영상 캡처

고장 난 기타도 이씨가 만지면 금방 제 소리를 낸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의 유명 기타리스트들도 그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록의 대부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신중현,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신촌블루스 엄인호, 베이시스트 이태윤, 기타리스트 손무현 등이 그의 단골이다. 부활의 김태원은 2011년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 이씨를 소개하면서 “그곳(낙원악기상가)에서 가장 달인이 아닐까요, 일인자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활의 김태원씨는 기타 수리를 맡긴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김태원씨는 주로 강하고 특이한 소리가 나는 것을 원해요.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찾기 위해 부품을 자주 갈러 옵니다. 그중 픽업(악기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부품으로 마이크 역할을 한다)을 많이 바꿉니다. 기타리스트 손무현씨는 깨끗하고 맑은 소리가 나길 원합니다. 20여년째 단골인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씨나 조용필·송골매·부활 등과 함께한 베이시스트 이태윤씨는 기타를 정말 애지중지 여깁니다. 기타에 기스 하나 생기는 것도 싫어하죠.”

기타를 수리하고 있는 이씨.

출처jobsN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부산에서 온 손님이 기억에 남아요.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기타를 고치러 왔더라고요. 기타 연주자였는데 당장 저녁에 공연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고장난 기타를 고치려고 여러 가게를 돌아다녔는데 다른 수리점들은 고치는 데 1~2주가 걸린다고 했대요. 급한 마음에 서울까지 달려 온 거죠. 한 시간 만에 기타를 고쳤습니다. 이 사연이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기타를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구조나 원리 등을 잘 알죠. 그래서 더 수월하게 고치는 것 같습니다.” 


-기타를 수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타 줄 높이를 맞추는 것에 가장 신경을 많이 씁니다. 연주자가 기타를 연주할 때 줄을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줄 높이를 잘 잡아야 해요. 또 손님마다 원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원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기타를 만집니다. 소리 연구도 많이 해요.”


-일할 때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손님들이 고쳐진 기타를 보고 만족감을 느낄 때 가장 뿌듯합니다. 또 TV에서 제가 손본 기타를 들고 좋은 소리를 내면서 연주하는 뮤지션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이 대표는 40여년간 낙원악기상가를 지키면서 상가의 성쇠를 지켜봤다. 1970~1980년대는 낙원상가의 황금기였다. 악기 구매뿐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거나 정보 공유를 위해 전국의 수많은 악사가 상가를 찾았다. 소위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모이는 아지트였던 것이다. 

낙원 악기 상가.

출처낙원 악기 상가 홈페이지 캡처

젊은 시절 신중현(좌)과 트윈폴리오(우).

출처낙원 악기 상가 홈페이지 캡처

“1980년대에는 말 그대로 ‘별’천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타를 만진다는 사람들은 다 왔죠. 자정이 되면 사람이 꽉 찼어요. 기타, 드럼, 관악기 등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그들이 연주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심야업소들이었어요. 업주들은 그날 밤 공연을 할 연주자들을 찾아다녔죠. 연주자 구인·구직 정보가 한 곳에 모이는 음악 인력 시장이었습니다.”


하루 300~500명의 음악가들이 찾던 낙원악기상가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침체기를 맞았다. 당시 심야영업이 금지됐고, IMF 사태까지 겹쳐 많은 유흥업소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오래된 구식건물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 위기에도 내몰렸다.

이세문 대표.

출처jobsN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기타연주자들이 찾는 이씨도 낙원상가의 침체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하루 평균 그를 찾는 손님은 2~4명 정도다. 하지만 기타 한 대를 고치는 수리비는 1만~2만원을 유지하고 있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수리비를 많이 받진 못하겠더라고요. 간단한 건 그냥 손봐주기도 합니다. 고맙다고 음료수를 사다 주기도 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힘을 얻어요.”


이씨는 낙원악기상가 활성화를 위해 ‘낙원 플리마켓’에 참여해 직접 기타 줄과 넥 등을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무상 수리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기타를 수리하고 싶어요.”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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