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림, 무시, 왕따 다 이겨낸 '한쪽 눈' 남성의 인간 승리

조회수 2020. 9. 18. 10: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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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 프랑스인 건축학도가 한국에서 캐리커처 작가로 사는 이유

캐리커처(caricature)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특징을 찾아 이를 과장해 그린 작품을 말한다. 15년 전 처음 한국에 온 이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현재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하는 프랑스인이 있다. 그는 한쪽 눈이 없는 외눈 장애를 가지고 있다. 장애를 극복하고 현재 제주도에서 디지털 캐리커처 샵 '이데오아트'를 운영 중인 브렌네르 로에겔 씨릴(Brenner-Loegel Cyril·42)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본인 제공
캐리커처 작가 브렌네르 로에겔 씨릴.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 중인 브렌네르 로에겔 씨릴(Brenner-Loegel Cyril)입니다. 아티스트 활동명은 이데오(IDEO)입니다.”


◇외눈으로 태어나다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이데오 작가는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태어날 때부터 안구 한쪽이 없었다. 3번의 큰 수술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 대부분은 병원에서 보냈다. 두개골을 떠받쳐주는 안구 뼈가 없어 함몰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데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외눈인 그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학교 선생님은 그가 그린 그림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그림은 유일한 위로가 됐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지만 주변 시선에 위축됐습니다. ‘한쪽 눈으로 무슨 그림을 그리냐’는 말을 자주 들었죠. 결국 그림이 아닌 건축과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브르타뉴 지역의 헨느(Renne) 대학교에 입학해 건축을 공부했고, 2000년에는 노르망디에 있는 캉(CAEN)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래도 손에서 그림을 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건축을 공부하면서 그림 그리는 데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3D 도면, 원근법 등을 공부하면서 그림에도 적용할 수 있었어요.”

출처: 본인 제공
이데오 작가와 아내 노은정씨.

◇아내를 따라 처음 한국에 오다


대학 졸업 후 컴퓨터 공학 관련 회사에서 일하던 이데오 작가는 2006년 한국에 처음 왔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아내 노은정(44)씨 때문이었다.


“캉 대학교에 다닐 때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아내는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캉 대학의 부설 어학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프랑스인과 한국인이 모여 서로 한국어와 불어를 가르쳐주는 모임에서 알게 됐습니다. 당시 교제하던 아내를 따라 2006년 한국에 처음 왔고 2007년 결혼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이데오 작가가 그린 봉준호 감독, 배우 윌 스미스, 배우 틸다 스윈튼.

◇한국에서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다


-언제부터 캐리커처를 그리기 시작했나요.


“한국에 온 후 불어 과외나 번역 일을 하면서 수입을 얻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캐리커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영빈 사진작가를 만나고 나서부터입니다. 지영빈 작가는 국내외 유명인과 작업하면서 30년 이상 사진작가로 활동했습니다. 2011년 의정부의 한 사진관에서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지영빈 작가는 사진을 출력하기 위해 사진관에 왔었고, 전 취미로 작업한 그림을 출력하려고 갔었어요.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영빈 작가가 당시 영화 ‘워낭소리’ 뒷이야기를 담은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림 전시를 함께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주어진 주제에 따라 ‘워낭소리’의 주인공인 할아버지(최원균 분)를 캐리커처로 표현했어요. 작업하면서 캐리커처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캐리커처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특징이 달라집니다. 더 전문적으로 익히고 싶어서 바비슈(BOBBY CHIU)등 해외의 유명 캐릭터 작가의 온라인 수업을 들었습니다. 또 디지털 드로잉 등을 독학하면서 연습했습니다. 이후 한국 캐리커처 작가 협회인 코스카(KOSCA)에 들어가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라이브드로잉의 대가로 꼽히는 김정기 작가를 만나 많은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김정기 작가와 이데오 작가.

이후 이데오 작가는 본격적으로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연필, 매직 등으로 종이에 그리는 캐리커처뿐 아니라 디지털 작업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캐리커처와 캐릭터 디자인을 그린다. 여러 기업과 기관 행사에 참여해 캐리커처 작업을 했다. 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 온라인에서 개인 고객의 주문을 받아 작업하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제주도에 디지털 캐리커쳐샵 '이데오아트'를 차렸다.


“2015년 처음 제주도로 여행을 갔습니다. 단조롭고 답답한 도심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의 정취를 느꼈어요.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의정부 생활을 정리하고 그해 제주도로 이사 왔습니다. 제주시가 모집한 제주 문화예술인 입주 프로젝트에 선정돼 삼도2동의 한 점포에 입주했습니다. 이후 지난 2월 제주시 삼도이동에 캐리커쳐 전문 가게인 ‘이데오아트’를 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오마주북에 들어간 이데오 작가의 작품.

이데오 작가는 프랑스의 한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아 2012년 책 ‘제레미의 작은 괴물들’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 프랑스에서 발간된 매거진 ‘어드밴스드 크리에이션(Advanced Creation)’에 그의 캐리커처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의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관한 내용이 실렸다. 2012년 세계 작가들 50명이 함께한 오마주집에 그의 작품이 들어가기도 했다. 50명의 작가가 자기만의 스타일로 고인을 추모하는 그림을 그린 아트북이었다. 이데오 작가는 스티브잡스, 로빈 윌리엄스 등을 캐리커처로 그렸다.


-작업할 때 어려움이 있나요. 


“입체감을 살려서 그림을 그려야 하지만 외눈이기 때문에 작업할 때 어려움이 많습니다. 원근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건축 공부를 하면서 익혔던 감각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머릿속으로 건물을 상상하면서 구조물을 만들고, 시뮬레이션했던 경험이 그림을 그릴 때 도움이 됩니다. 또 계속 공부하고 연습하면서 작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영정사진으로 쓰겠다면서 캐리커처 작업을 의뢰한 고객.

-가장 기억에 남은 작업이 있나요.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한 행사에서 캐리커처 그림을 자신의 영정사진으로 쓰겠다면서 작업을 의뢰한 고객이 있었어요.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보고 울고 슬퍼하기보단 유쾌하게 그린 캐리커처를 보고 웃었으면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만족하고 즐거워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출처: 본인 제공
베르나르 베르베르 한국 출판기념 프라이빗 저녁행사에 초대 받아 베르나르 작가의 캐리커처를 선물했다고 한다.

-매출이 궁금합니다.


“수입은 매달 다릅니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졸업식 등 이벤트가 있는 달에는 작품 주문량이 많습니다. 보통 월 100만~300만원을 법니다. 캐리커처 행사에 참여할 경우 건당 30만~150만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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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 스타일로 그린 방탄소년단 캐리커처.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는 캐리커처가 중요한 예술 분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캐리커처는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작업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찾아내야 해서 대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예술입니다. 한국에서 캐리커처라는 분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캐리커처가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제주도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돌하르방, 해녀 등을 캐리커처로 표현하고 있어요. 제주의 아름다운 특징을 담을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또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싶습니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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