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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F16 전투기도 그를 거쳤다, 공고생 신화로 불리는 한국인

가정형편에 꿈 접었던 장남 “세종대왕함, F16도 내 손 거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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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분야 ‘그랜드슬램’ 김일록 명장
30대 중반에 주경야독으로 공학사, 석사 취득
폐지줍는 어르신 위해 ‘사랑의 리어카’ 기부도
“성공은 학력과 스펙 아니라 기술과 실력 가능”

1979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용접’ 한 길만 걸어온 사람이 있다. 중소기업, 철강 업체를 거쳐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에서만 25년 동안 각종 공군 전투기, 해군 구축함 엔진에 들어가는 특수합금용접을 담당했다. 세종대왕함, F16 전투기도 그의 손을 거쳤다. 2012년부터는 용접 마이스터로 뽑혀 지금은 사원들에게 직무향상전수교육, 후배양성, 기술 지도 등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 용접 분야에서 최고로 불린다는 주인공은 바로 ‘김일록(56) 명장’이다.


대한민국 명장은 산업 현장에서 15년 이상 근속하고 해당 분야 최고 기능을 가진 숙련기술자에게 정부가 주는 호칭이다. 그는 용접 분야 전 종목 자격증을 따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김일록 명장에게 그의 인생이자, 자긍심인 용접 이야기를 들었다.

김일록 명장

출처김일록 명장 제공

◇축구선수 포기하고 '용접과' 선택


어렸을 때는 운동을 잘했던 김일록 명장은 축구선수를 꿈꿨다. 좋아하기도 했고 잘하기도 했다. 축구부가 있는 도시 중학교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이사는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수 있는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거기서 처음 용접을 접했다.


"전공으로 용접을 선택했습니다. 용접할 때 생기는 아크 불빛이 금속을 녹여 서로 붙는 걸 보고 매료됐습니다. 그 불빛이 참 예뻤습니다. 또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이라 택했죠. 용접과에 자격증을 따면 3학년 때 바로 중동으로 갈 수 있는 중동교육반이 있었습니다. 장남이었기 때문에 집안 생계에 도움을 줘야 했습니다."


용접 실력도 좋지만 성적도 좋아 주위에서는 대학 진학도 권했다. 두 번째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장남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다. 또 "일록아, 용접을 예쁘게 잘하네? 넌 이 길을 끝까지 간다면 꼭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는 선생님의 한 마디도 큰 힘이 됐다. 김일록 명장은 1979년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실습을 나갔다.

김 명장이 받은 훈장과 명장 증서(좌), 용접 비드(우)

출처김일록 명장 제공

◇선배 손동작 메모해가면서 연습


실습 나간 회사에서 졸업 후에도 일하면서 용접, 배관, 제관 등을 배웠다. 1주일은 주간, 1주일은 야간으로 일하는 주야간 막 교대로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 처음 야간작업을 할 때 12시가 넘으면 졸음이 쏟아져 엉뚱한 곳을 용접하고 있어서 많이 혼났다고 한다. 힘들었지만 중동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선배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특수용접인 TIG나 MIG는 접하기 쉽지 않은 기술이었습니다. 선배가 한 손으로 용접봉을 밀어 넣고 다른 손으로는 토치를 운봉하며서 용접을 하는데 비드(bead·용접할 때 녹아 붙어 생기는 띠 모양의 금속)를 정말 예쁘게 하셨어요. 당시 기술을 잘 가르쳐주지 않을 때였어요. 선배들 어깨너머로 손동작을 살피고 메모를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했죠. 퇴근 시간 후 혼자 남아 그날 연습하면서 나만의 노하우를 쌓았습니다. 그걸 선배들이 좋게 봐주셨는지 나중에는 기술을 가르쳐 줬습니다."


처음에는 선배들이 가르쳐준 대로 해도 결함이 계속 발생했지만 6개월 동안 반복하자 이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5년 동안 일했다.


◇다 늙어 뭐하러 가냐 핀잔, 35살에 다시 시작한 공군


군 생활을 마친 후에는 철강회사에서 1년 동안 일했다. 1987년에는 삼성항공(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입사했다. 새로운 회사에서는 항공기 엔진 정밀용접을 맡았고 이는 35살의 김일록 명장이 다시 펜을 드는 계기였다.


"제 손에 항공기 안전이 달린 셈이었어요. 또 그때 기술만으로는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 내려놓은 펜을 다시 잡았습니다. 전 직장에서 대졸이 아니면 승진도 어려웠어요. 관리직과 현장직 차별도 심했죠. 더욱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야간 대학에 다니는 직원들도 많았어요. 기능대학에 입학하려면 기능사 1급 자격증이 있어야 해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죠."


기능사 자격증 취득 후 1996년 회사 추천을 받아 창원기능대학 야간 기능장 과정 용접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주위에서 나이 먹어서 뭐하러 가냐는 핀잔도 들었지만 도전하고 싶었다. 오전 7시에 출근하고 4시 퇴근 후 수업을 듣고 12시에 집에 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똑 부러지게 공부를 하고 싶었다. 2년 동안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자격증 취득도 멈추지 않았다. '기술 자격증의 꽃'이라고 불리는 용접기술사 자격증 취득에도 성공했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기에 정보나 자료도 부족했다. 결국 2번 낙방하고 삼수 끝에 합격했다. 기술사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용접으로는 최고의 자격증을 딴 셈이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판금제관기능장, 배관기능장 자격증도 땄다. 산업설비분야 기능장과 용접기술사를 동시에 보유한 것이다. 회사에서는 최초였다. 이후에도 학창 시절 못다 이룬 공부를 위해 2006년까지 야간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4년제 대학 과정과 동등한 공학사 학위는 물론 석사까지 취득했다. 

용접하는 김일록 명장(좌),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기술 전수 중인 김 명장(우)

출처김일록 명장 제공

◇"용접은 양심. 후배들에게 숙련 기술 전수하고파"


40년 동안 용접이라는 한 길만 걸어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해군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에 들어가는 해수냉각장치인 ‘Spool pipe Brazing(경납땜)’작업이라고 한다. 위치가 조금만 틀어져도 조립이 안 되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라 미국 롤스로이스 회사에 연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회사 사정상 갈수가 없어 결국 도면 한 장을 가지고 작업을 해야했다. 무사히 작업을 마쳤고 이 부품이 들어간 세종대왕함을 볼 때마다 긍지를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명장의 자리에 올랐지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실수도 잦았다.


"1994년 F16 전투기 엔진 용접을 처음 맡았어요. 엔진에 들어가는 특수 강판 재질 특성을 잘 몰라서 과한 열로 용접을 했어요. 결국 하자가 발생해 반품이 들어왔습니다. 15년 동안 그런 일을 처음 겪은 거라 충격이 컸습니다.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이기도 하죠. 이렇게 결함이 생기거나 실력이 잘 늘지 않을 때 포기하고 싶기도 했어요. 그러나 최고의 용접명장이라는 꿈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에서 근무하면서 새로 시작한 일이 있다. 바로 사랑의 리어카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어르신들에게 맞춤형 리어카를 제작해 기부하는 것이다. 과적량, 노후화한 리어카로 발생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였다. 사내 사회봉사 담당자와 경남자원봉사센터에서 김일록 명장을 찾아가 사업을 제안했고 그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시행착오 끝에 브레이크가 달린 리어카 개발에 성공했고 2014년 1월부터 2020년 3월까지 377대를 기부했다.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명장(좌), 직접 개발한 사랑의 리어카와 함께(우)

출처김일록 명장 제공

명장으로서 자신의 기술을 후배에게 전수하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술 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했고 2012년 마이스터로 선정돼 기술전수교육, 협력업체 기술지원, 후배사원 멘토링 등은 물론 재능기부를 통해 청소년에게 기술 전수, 토크 콘서트 등도 하고 있다.


"용접을 처음하는 후배나, 이제 막 배우는 청소년들에게 항상 '용접은 양심'이라고 강조합니다. 용접을 하다가 결함이 발생한 부위를 그냥 용접으로 덮으면 내부 결함을 알 수 없어요. 이를 속이고 그냥 납품한다면 나중에 추락 등 엄청난 피해가 생기기 때문에 양심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작업을 하다 결함이 생기면 반드시 그 부위를 깨끗하게 제거하고 다시 용접을 해야 합니다. 또 '열정을 가져야 하며 자기가 하는 일에 최고가 돼라', '기본을 지키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라',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용접을 사랑하라' 이 세 가지를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김일록 명장의 목표는 단 하나다. 명장으로서 소명을 다하면서 사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청소년에게 학력과 스펙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기술과 실력을 겸비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또 제가 가진 숙련기술을 전수하고 사회 공헌활동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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