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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생선처럼 판 자퇴생은 이 정도 갑부가 되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18. 15: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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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사는 생선장사 vs 브랜드는 역사와 전통
'개천용'서 자라 세운 오르테가, 금수저로 루이비통 제국 일군 아르노
서로 다른 패션관으로 2년 연속 세계 10위 부자 등극

매년 3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세계 부자 순위를 발표한다. 2019년엔 세계적 패션계 거장 2명이 10위 안에 나란히 올랐다. 4위에 오른 베르나르 아르노(71)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회장과 6위에 오른 아만시오 오르테가(84) 자라(ZARA) 창업주·인디텍스(Inditex) 그룹 전 회장이다. 2019년 3월 기준 아르노 회장의 자산은 760억달러(약 91조원), 오르테가 전 회장은 627억달러(약 71조원)이었다. 이들은 2018년에도 나란히 4위,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출처: 포브스 홈페이지 캡처
포보스 세계 부자 순위.

세계 부자 10위 안에 든 두 패션 거장은 태어났을 때부터 전혀 다른 행적을 밟아왔다. 오르테가는 '개천에서 난 용'이라 할만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반면 아르노는 유복한 집안에서 명문 코스를 밟아왔다. 바닥부터 시작해 세계적 저가 브랜드를 일궈낸 오르테가와 금수저 출신에서 세계 1위 명품업체를 탄생시킨 아르노의 사연을 알아봤다.


◇중학교 자퇴한 철도원 아들 VS 명문대·경영수업 엘리트코스 


오르테가는 스페인 작은 지방에서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사정이 어려워 13세에 학교를 자퇴했다. 가사 도우미였던 어머니를 따라간 식료품점에서 '더 이상 외상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이 계기였다. 학교를 나와 '갈라' 양품점의 작은 셔츠 가게에서 잔심부름꾼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4년 후 큰 규모 양품점인 '라마하'로 이직해 의류를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을 맡았다. 사업 수완이 있던 그는 27세가 되던 해 처음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스페인 라코루냐 지역에 '고아콘벡시오네스'라는 가게를 열고 잠옷, 목욕가운 등을 팔았다. 39세이던 1975년, 그간 모아둔 돈으로 자라(ZARA)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키워갔다. 가성비로 인기를 끈 자라는 스페인 전역은 물론 세계로 진출했다.

출처: 자라·루이비통 홈페이지 캡처

아르노는 1949년 프랑스 북부 루베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그랑제콜(에콜폴리테크니크)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국립행정대학원(ENA)을 다녔다. 프랑스 정치인들이 주로 밟는 엘리트코스다. 졸업 후 아버지의 건설 회사 ‘페레-세비넬’에서 경영 수업을 받았다. 1981년 아버지를 이어 회사 대표직을 맡게 됐지만 모험적인 삶을 살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부동산 중개 사업으로 재산을 불리던 아르노는 35세이던 1984년, 크리스찬디올의 모기업 ‘부삭(Boussac)’을 인수했다. 동시에 프랑스로 돌아와 디올에서 대대적인 사업 정리와 감원 등 구조조정을 감행, 2년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이후 루이비통과 샴페인 제조사 모에헤네시를 합병하면서 LVMH 그룹을 만들었다.


◇"옷 장사는 생선 장사"··· 빠른 속도가 성공 비결


오르테가는 10대 시절 옷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자신의 사업에 실천했다. 바로 '속도의 중요성'이다. 그는 디자인숍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의류판매점으로 옷을 배달하면서 유통단계를 줄이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옷의 기획·디자인부터 생산,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맡는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방식을 통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울 수 있다. 자라는 불경기였던 1970년대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유행을 즉시 따르고 빠른 속도로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자라는 별다른 광고 없이도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 유통시키는 의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옷 장사는 생선 장사와 같다. 유행이 지난 옷은 어제 잡은 생선처럼 신선도가 떨어진다." 그가 했던 말이다. SPA브랜드, 패스트 패션.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오르테가는 45년 전에 이를 생각해냈고 즉시 적용했다. 그는 '유행을 만들지 않고 유행을 따라간다'는 철학을 만들었다. 보통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패션쇼에서 다음 시즌 유행할 옷을 미리 보여주고 반응을 살핀 다음 제작, 유통 단계를 여러 번 거친다. 오르테가는 기존 방식 대신 사람들이 원하는 옷을 즉시 만들어내는 빠른 패션을 지향했다. 자라는 일주일에 두 번 신상품을 낸다. 매장에 진열된 제품의 70%는 2주 안에, 40%는 매주 바꾼다. 잘 안 팔리는 옷은 바로 매장에서 뺀다. 2주 안에 디자인·제작·진열까지 끝낸다. 상품이 출시되면 전 세계 모든 매장에 48시간 내에 배송한다. 찢어지게 가난해 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소년이 스페인 최고 갑부이자 세계 6위 부자가 된 비결이다.

출처: 자라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작년 4월 기준 자라는 96개국에 2356개 매장이 있다. 또 오르테가가 1985년 설립한 인디텍스 그룹엔 속옷 브랜드 '오이쇼(Oysho)'와 홈인테리어 브랜드 '자라 홈(Zara Home)' 등 8개 브랜드가 속해있다. 이들은 온라인을 포함해 전 세계 202개국에 진출했고 7490개 매장, 약 17만5000명에 달하는 직원이 있다.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 공격적 인수합병이 비결


"프랑스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디올은 알아요." 아르노가 미국에 처음 갔던 21살, 공항에서 탄 택시 기사가 했던 말이다. 그가 LVMH라는 ‘명품제국’을 이루게 된 계기다. 아르노는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는 역사와 전통에 있기 때문에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가 패션업계에 발을 들인 1980년대만 해도 유럽 명품업체들은 창업자에게서 물려받은 단일 브랜드만 경영하는 가족기업 형태였다. 아르노는 미국식이라 불리던 공격적 인수 방식을 선택했다.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란 별명이 그를 따라다니는 이유다.


그는 명품 브랜드를 하나하나 제 손으로 인수합병해 세계 1위의 명품업체를 일궈냈다. 1984년 크리스찬 디올을 인수한 뒤 지방시·겐조·불가리·펜디·마크제이콥스·태그호이어·모엣샹동·돔페리뇽 등 의류·잡화·주류를 가리지 않고 명품 브랜드를 인수해왔다. 유럽의 유력 경제지 레제코와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 등 언론사들까지 사들였다. 그의 손을 거친 명품 브랜드들 가치는 이전보다 수십배로 뛰었다. 아르노는 상류층 대상 맞춤제작 위주였던 명품 브랜드의 대중화도 이뤄냈다. 소비자의 신분 상승 욕구를 이용하는 '드림케팅(Dream +Marketing)'이 그의 전략이다. 그는 '크리스찬 디올에서 립스틱을 사면 제품과 함께 꿈도 실려간다'고 말했다. 중산층의 브랜드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명품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했다. 건축계 거장 피터 마리노와 함께 크리스찬디올, 루이비통 등 매장을 최대한 화려하게 꾸몄고 이는 매출 확대로 이어졌다.

출처: 루이비통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2019년 기준 LVMH의 주식 시가총액은 2000억유로(약 258조원)를 넘는다. 석유 기업 로열더치셸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크다. 구찌와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이 속한 라이벌 명품 업체 '케링(kering)'의 3배 수준이다. 작년 11월 LVMH가 미국 보석 업체 티파니를 인수한 이후 포브스 실시간 집계에서 아르노가 자산 1068억달러(약 125조원)로 세계 부자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출처: 자라와 루이비통 화보./(좌)자라 (우)루이비통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은둔형 외톨이와 사교계 거물


오르테가는 회장 시절 늘 셔츠와 청바지의 수수한 옷차림을 유지했다. 유일하게 넥타이를 맨 건 결혼식 때 뿐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옷차림만큼이나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며 살아왔다. 사교 모임에 절대 참석하지 않는 건 물론, 공식적인 자리도 피한다. 그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01년 그룹 상장식이 유일했다. 언론 접촉도 피해 지금껏 그를 인터뷰한 기자는 전 세계에서 3명 뿐이다. 스페인 국왕이 초대한 모임과 총리가 20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한 자리에도 가지 않았다. 오르테가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회장직을 내려놓은 2011년엔 퇴임식도 거부했다. "나 혼자만이 이뤄낸 일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해낸 일이다. 나는 그 중 한 명일 뿐이다"라는 메모 한 장으로 퇴임사를 대신했다.

출처: (좌)아만시오 오르테가 전 회장 (우)베르나르 아르노 회장./포브스 홈페이지·유튜브 채널 'OxfordUnion' 캡처

늘 깔끔한 정장 차림을 고수하는 아르노는 프랑스 각 분야 거물들이 속해있는 사교 서클의 주요 회원이다. 일명 파리의 '비밀 사교 클럽'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아르노는 이 귀족 서클 중 ‘폴로 드 파리’란 클럽 회원이다. 세계적 금융재벌가인 로스차일드가의 상속자, 영국왕실 기사작위를 받은 전 로레알 회장 등이 이곳 회원이다. 아르노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절친한 친구이며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과도 가깝게 지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1980년대부터 알고 지냈으며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도 가까운 사이다. 작년엔 팝가수 리한나와 손잡고 새로운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글 jobsN 박새롬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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