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와 코가 예민한 청년이 라운지바에서 파는 건..

조회수 2020. 9. 21. 1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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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시간 빼곤 항상 차 생각만 해요
도예가 어머니 덕에 차 일찍 접해
차 기반 음료가 매출 80%
차 유통·판매·교육까지···

보드카와 우롱차·진(Gin)과 말차·럼(Rum)과 홍차··· 서울 서초구엔 이 독특한 조합을 만날 수 있는 라운지 바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엔 바텐더가 양주를 따라줄 법한 바(bar)가, 다른 한 쪽 벽면엔 각종 차(茶)와 차기(茶器)가 가득 진열돼 있다. 바로 티 칵테일과 티 목테일(논알콜 메뉴)을 파는 ‘365 베버리지 라운지’다. 5년 전 이곳을 연 김경술(37) 대표는 스스로를 차에 관한 모든 것을 하는 ‘티 디렉터(Tea Director)’라고 소개했다.

출처: jobsN
김경술 365 베버리지 라운지 대표.

◇건축·디자인과 학생에서 차 전문가로


-티 디렉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차의 유통과 판매, 교육까지 많은 분야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감독(Director)이 영화나 드라마의 기획부터 촬영, 제작 전반을 지휘하는 것처럼요. 지금은 라운지바를 운영하면서 차를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차를 판매하는 쇼핑몰도 운영 중이고 차 매거진도 혼자서 발행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서비스업부터 교육, 유통과 판매까지 모든 단계를 다 경험하고 있는거죠. 사실 티 디렉터라는 용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만든 말이죠. 전문가들은 주로 티 소믈리에라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저는 차를 추천하는 티 소믈리에보다는, 차를 해석하고 기획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 티 디렉터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출처: 루틴매거진 홈페이지 캡처
김경술 대표가 발행하는 차 매거진.

-언제부터 차에 관심이 있었나요.


“도예를 하셨던 어머니 덕분에 남들보다 차를 자주 마셨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차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호주로 건너가 19살에 대학 건축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디자인학과로 옮겼어요. 건축·디자인 뿐 아니라 경영학이나 요리 등 여러가지를 배우느라 대학을 8년이나 다녔어요. 현지에서 청소전문업체를 차려서 학비를 벌었죠. 그러다 디자인 직무로 회사에 취직도 했는데, 영주권을 못 따 한국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어요.


한국에 와서 영화·CF 관련 프로덕션에서 일했지만 잘 안 맞았어요. 거기서 나와 차 관련 전시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차 전시회를 하는 곳이었죠. 회사 다닌 지 2년차쯤, 차 관련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들보다 차를 오래 마셔서 잘 알았고, 미각과 후각이 예민해 분별력에 자신이 있었죠. 차 전시 회사를 다니며 알게 된 차 수입업자 분들을 직접 찾아갔어요. 호주 유학 시절 사업과 한국 직장 생활로 모은 자금 8000만원으로 365베버리지라운지를 2015년에 오픈했어요.”

출처: jobsN
김경술 365 베버리지 라운지 대표.

-찻집이 아닌 술집 개념인 ‘바(bar)’에서 차를 팔고 있는데요.


“차를 대중화시키고 싶어서요. 간판에다 ‘티 칵테일’ ‘티 목테일’ 파는 곳이라고 적어놓으면 아무도 안 들어올 거라 생각했죠. 실제로 5년 전 이곳을 처음 열었을 땐 아무도 차를 파는 라운지바라는 걸 몰랐어요. 손님들이 그냥 라운지바인 줄 알고 들어오면 제가 설명을 해드리죠. 그럼 대부분 티 칵테일·티 목테일 음료를 맛보고 가세요. 

출처: jobsN

또 바 형태를 선택한 이유도 있어요. 중국에 ‘팽주(烹主)’ 문화가 있어요. 차를 끓이고 우려서 손님에게 대접하는 사람을 말해요. 여러 사람들 앞에 앉아서 차를 우려 한 잔 씩 나눠주는 모습이 바텐더와 정말 비슷하죠. 팽주는 그 자리에서 차 얘기를 많이 하지 않고 일상 대화를 주로 나눕니다. 저도 팽주이자 바텐더로서 손님들에게 차 설명을 간단히 하고, 사업이나 연애 등 일상 이야기를 나눠요.”


◇서울대생이 단골손님···소개팅 장소로도 인기


-'티 바' 자체가 생소하다보니 처음엔 막막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말그대로 '뭐지?'라는 반응이었어요. 티 칵테일·목테일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료는 아니에요. 여러 번 마셔봐야 맛에 대한 기준이 생기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맛본 적 없으니까요.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티 칵테일·목테일이 전체 매출 80%를 차지하죠. 일반 칵테일과 위스키, 와인도 메뉴에 있는데도요. 멤버십 제도를 하고 있는데 등록된 손님만 700명 가까이 돼요. 그중 60~70명은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오세요. 가게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오는 손님도 많아요.

출처: 김경술 대표 제공
티 칵테일 메뉴인 얼그레이 진피즈.

손님들은 주로 20~30대가 많고, 칵테일 동아리가 있는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 학생들도 자주 찾습니다. 강남이란 지역에 비에 가격이 저렴한 편이고 매장 분위기가 부담스럽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오는 손님도 있어요. 다른 라운지바들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라 학생들은 가기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인테리어도 제가 직접 다 했는데, 일부러 젊고 편안한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했죠."

출처: jobsN

-라운지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만든 메뉴가 있어요. 단골손님 중에 아마추어 시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시를 선물해주셨어요. 감사의 의미로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대로 새로운 조합의 음료를 만들어드렸죠. 그걸 맛본 시인 손님의 여자친구가 남겨두고 떠난다는 의미의 ‘Left Behind’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얼그레이 진과 캄파리라는 술을 섞어 만든 음료예요. 첫맛은 달지만 끝에 쓴 맛이 남는 티 칵테일이에요. 처음엔 달콤하고 헤어지면 씁쓸한 연애와 의미가 통하죠. 또 저희 매장에서 프로포즈나 소개팅을 하는 손님도 많아요. 성사율도 높답니다.”

출처: 김경술 대표 제공
티 칵테일.

-차 메뉴만 70~80개인데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주변을 많이 관찰해요. 잡지나 인테리어도 보며 참고하죠. 잠자는 시간 빼고 눈 떠있는 시간엔 항상 차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색감이나 음악을 보고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있어요. 그걸 바로 스케치로 옮겨요. 어떤 색의 음료를 만들지, 어떤 기분을 담을지를 고민해요. 다른 곳에서 차를 마실 때도 ‘여기에 다른 재료를 섞어야겠다’ 또는 ‘따뜻한 음료인데 차갑게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금 만든 ‘크리스탈로즈’는 샤넬 블랙 미니드레스에서 영감 받은 메뉴예요. 장미와 라임, 히비스커스가 들어가죠."


◇"차를 마시고 입고 쓰는 날 꿈꿔요"


-티 디렉터로서 가장 자신 있는 일은.


"차를 사람들에게 쉽게 가르치는 걸 잘해요. 저에게 수업 들었던 분들이 어려운 내용을 잘 알아듣게 설명해준다고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찻잎에 물 붓는 온도를 설명해드릴게요. 목욕탕에서 옆사람이 뜨거운 물을 갑자기 튀기면 기분이 나쁘죠. 찻잎도 사람과 같아요. 뜨거운 물을 확 부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쓴맛을 내죠. 반면 탕에 들어갈 때 천천히 발부터 담그는 것처럼 찻잎도 따뜻한 물을 천천히 흘려주듯 부어야 제대로 된 맛이 우러나오죠.

출처: 365 베버리지 라운지 인스타그램 캡처

매장 오픈은 저녁 6시부턴데, 낮에는 차에 대해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요. 차를 취미로 배우거나 직업으로 삼으려는 학생들, 선생님·교수님들을 상대로 티 베리에이션(Tea Variation) 교육을 합니다. 이때까지 수강생은 약 200명 정도 돼요."


-국내 차 시장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고정관념을 깨야 해요. 차 업계는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국내 시장은 작은데도 녹차 하나를 가지고도 일본식이 맞다, 중국식이 맞다면서 싸워요. 그러면 시장이 더 커지기가 어렵죠.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차가 특권층만 즐기는 점잖은 문화는 아니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차 문화는 느린 문화라 바쁜 현대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또 외국 차에는 관심 가져도 우리나라 녹차나 모과자, 유자차 등은 제대로 된 차가 아니라는 인식도 많아요. 우리 차에도 관심 갖고 많이 사 마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최종적으로는 차의 전반적인 과정을 다루는 회사를 차리고 싶어요. 라운지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있던 꿈이죠. 차를 생산해서 직접 포장하고 디자인까지 다 하고 싶어요. 생산·포장·디자인·유통·서비스 전반을 다 관리하는 거죠. 지금 라운지바와 쇼핑몰을 운영하고, 웹진에 글 쓰며 쌓은 경험을 전부 활용하고 싶어요.

출처: jobsN
김경술 365 베버리지 라운지 대표.

또 차 문화 자체가 커졌으면 좋겠어요. 차를 마시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면 해요. 차를 이용해서 옷도 만들고, 차 도구를 일상에 활용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굳은 차를 부시는 칼인 차도가 있어요. 그걸 넥타이핀처럼 길게 만들면 차 부시는 도구로도, 티백을 고정시키는 용도로도 쓸 수 있어요. 패션 소품으로까지 활용할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차가 일상에서 입고 쓸 수 있는 하나의 문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글 jobsN 박새롬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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