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평방에서 100만원으로 시작, 5년만에 15억 사장님됐죠

조회수 2020. 9. 21. 10: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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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장길산' 읽던 소년은 남에서 출판사 사장이 됐다
탈북민 창업가 ‘지원인쇄출판사’ 김인철 대표
‘맨땅에 헤딩’ 하며 영업 뛰어
통일 되면 평양에 출판사 차리는 게 꿈

‘지원인쇄출판사’ 김인철 대표(49)는 양강도 혜산 출신이다. 2010년 한국에 와서 2015년 지원인쇄출판사를 창업했다. 충무로 5평짜리 방에서 시작한 지원인쇄출판사는 꾸준히 성장했다. 통일부는 지원인쇄출판사를 탈북민의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통일형 사회적 기업에 선정하기도 했다. 탈북민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더 브릿지’에서 김인철 대표를 만났다. 

출처: jobsN
지원인쇄출판사 김인철 대표

◇ 뜻을 크게 품어라. 지원인쇄출판사


-지원인쇄출판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지원인쇄출판사는 2015년에 창업한 회사입니다. 뜻을 크게 품자는 의미로 지원(志遠)이라고 지었죠. 직원 수는 9명이고 그 중 탈북민이 4명입니다. 관공서 의뢰를 주로 받습니다. 정기간행물이나 자료집, 팸플릿 등을 편집과 디자인까지 맡아서 제작합니다. 인쇄 산업이 쇠퇴하고 있다 보니 업종 다변화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공공기관 SNS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콘텐츠 기획·제작 사업도 시작하려 합니다. 조명 기기를 사려고 ‘더 브릿지’에서 펀딩도 하고 있죠. 더 브릿지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탈북민 자립을 지원하는 사단법인입니다.”


-매출은.


“연 매출은 10억~15억원 정도입니다. 1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충무로 5평짜리 방에서 시작했어요. 처음보다 사정이 좋아져서 2018년 9월에는 더 큰 사무실로 옮길 수 있었죠. 어려운 일이겠지만 10년 안에 매출 100억을 달성하고 싶습니다.” 

출처: 더 브릿지 홈페이지 캡처
지원인쇄출판사 사무실 풍경

-힘든 일은 없었나요.


“가장 힘든 건 영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영업적인 마인드나 기술이 부족했죠.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일을 따오기가 힘들었습니다. 창업하고 2~3년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영업을 뛰었는데요. 2016년에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서 첫 의뢰를 받았습니다. 남북하나재단으로 직접 찾아가 회사 소개서를 보여주며 영업했습니다. 관공서 같은 큰 곳의 인쇄물을 맡아서 할 수 있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작은 일거리부터 하나씩 맡으며 성장했죠. 최근에는 2억짜리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정기간행물 출간을 맡기도 했습니다. 차근차근 능력을 인정받으며 신뢰를 쌓은 결과입니다.”


-인쇄출판을 시작한 계기는.


“예전에는 제가 인쇄출판을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남쪽으로 온 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 취업 지원 신청을 했죠. 거기서 어떤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충무로에서 인쇄업을 하는 실향민 2세분이었습니다. 인쇄업을 배워 보지 않겠냐고 했어요. 당시 종로구에 있는 북한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거리도 가까우니 해보겠다고 했죠. 1년 정도 그분 밑에서 인쇄업을 배웠습니다. 배우다 보니 창업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 북한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독일로, 다시 한국으로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북한에 있을 때 김정숙 사범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습니다. 1994년에 교사가 됐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죠. 교사를 그만두고 일반 기업에 다니다가 중국 무역 일을 했습니다.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21세기에도 북은 가난하게 살고 굶는 사람도 있는데... 마음대로 해외 여행을 다니는 자유도 부러웠고요. 그렇게 무역 일을 하다 남쪽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브로커였어요. 도움을 받아 압록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출처: The Bridge International 유튜브 캡처
인쇄물을 확인하는 김인철 대표

-적응은 금방 했는지.


“처음 왔을 때는 정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 머리가 띵한 느낌만 받았죠. 같은 말을 쓰는데도 30%밖에 못 알아들을 정도였습니다. 아마 탈북민 대부분이 처음 오면 그런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걱정만 가득했습니다.


다른 선진국은 어떨까 하고 잠시 독일로 가기도 했습니다. 2013년 12월에 갔다가 3월에 돌아왔습니다. 독일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고 외로움은 더 심해지더군요. 그래도 말이 통하는 곳에서 죽기살기로 해보자는 결심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북한대학원에서 석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등록금을 댔습니다. 1년 후에 ‘아 세상이 이렇구나’하는 느낌을 처음 받았습니다. 적응에 4년이 걸린 거죠.”


◇ 통일되면 북한 아이들에게 만화책 실컷 읽게 해주고파


-최종 목표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하고 가족과 여행도 다니며 사는 게 목표입니다. 통일이 된다면 이루고 싶은 꿈도 있는데요. 평양에 출판사를 세우는 것입니다. 북한은 학생들 교과서도 충분하지 않아요. 교과서와 교재를 많이 찍어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만화책과 소설책도 많이 내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 황석영 작가가 북한에 온 적이 있었는데 소설책 ‘장길산’을 많이 주고 갔나봐요. 친구를 통해 책을 얻어 볼 수 있었습니다. 무척 재밌었는데 1부밖에 못 봤습니다. 2부를 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요. 남으로 와서야 보고 싶던 책을 읽을 수 있었죠. ”


-창업을 생각하는 탈북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탈북민들이 남으로 와서 일자리 찾기가 참 힘듭니다. 차별도 많이 당하고요. 많이들 창업을 했으면 좋겠지만 쉽게 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시장 조사 등 창업 준비를 5년은 하고 뛰어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글 jobsN 김미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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