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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보다 더 큰 옷 입는 뚱뚱하고 아름다운 모델입니다

조회수 2020. 9. 21. 10: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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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뚱뚱하고 아름답다"
플러스사이즈 모델·편집장·쇼핑몰 대표
똑같은 옷이 모두에게 예쁜 건 아냐
에세이·사진전 통해 외모다양성 운동

“저는 뚱뚱하고 아름답습니다. 체형이나 얼굴과 상관없이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출처: 66100 제공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가 인터뷰할 때마다 하는 말이다. 김지양씨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플러스 사이즈 잡지 편집장·플러스 사이즈 쇼핑몰 대표다. 플러스 사이즈란 패션업계에서 77 사이즈보다 큰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 여성 패션 모델 사이즈는 33~44다. 의류 회사는 인기 연예인을 닮고, 마르고 키가 큰 모델을 주로 찾는다.


이런 패션업계에서 김씨는 11년 동안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누가 써주길 기다리지 않았다. 모든 모델의 꿈인 표지모델이 되고자 직접 패션 잡지 66100을 창간했다. 큰 옷은 안 예쁘다는 편견에 도전해 옷도 만들어 판다. 5년 차 쇼핑몰 대표인 김씨를 동작구 상도동 66100 ‘쇼룸’에서 만났다.


-모델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수습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우리랑 안 맞는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새로운 직업을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도전 슈퍼 모델 시즌1’ 출연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어요.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라는 문구에 끌렸죠. 사실 누구나 주인공으로 살고 싶잖아요. 키 165cm 이상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애슐리 그레이엄 페이스북, 휘트니 톰슨 인스타그램 캡처
플러스 사이즈 모델 (좌)애슐리 그레이엄 (우)휘트니 톰슨.

어렵게 구한 77사이즈 옷을 입고 1차 프로필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2차 비키니 심사에서 탈락했죠. 카메라·조명·사진작가가 나한테만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 설레더라고요. 하지만 살을 빼서 내가 아닌 나로 모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유럽에 있는 모델 에이전시들을 알아봤죠.”


-한국인 최초로 미국 최대 플러스 사이즈 패션쇼에서 데뷔했다고요.


“미국은 플러스사이즈 패션 시장이 크니까요. 주류 업계에서 애슐리 그레이엄이나 휘트니 톰슨 같은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쓰기 시작할 때쯤이었어요. 2010년에 미국 풀 피겨드 패션 위크(Full Figured Fashion Week)에 지원했습니다. 합격했다고 오디션 보라는 연락이 와서 직접 미국에 갔죠. 거기서 데뷔를 한 거고요.”


-수입은 어땠나요.


“런웨이를 서거나 화보 촬영하면서 모델일만 했으면 8년 전에 굶어 죽었죠. 패션 업계에서는 연예인을 닮은 아주 마르고 키 큰 모델을 쓰잖아요. 

출처: 66100 제공
김지양 66100 대표.

의류 업체 중 10% 정도만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써요. 일이 많지 않으니까 마이애미 패션쇼에 가려고 학교 급식실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모델로 일하면서 잡지를 만든 계기는 뭔가요.


“저는 누가 저를 써주기를 기다리지 않았어요. 모델의 꿈은 표지모델이잖아요. 저도 하고 싶어서 2014년에 직접 패션잡지 66100을 만들었어요. 국내 최초 플러스사이즈 컬처 매거진입니다. 여성복 사이즈 66 이상, 남성복 사이즈 100 이상이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출처: 66100 제공
잡지 66100 VOL.5_BE BASIC 표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외모 다양성 이야기를 다룹니다. 잡지를 읽고 ‘위로받았다·힘이 됐다·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모델과 잡지 편집장은 너무 다른 분야 같습니다. 어렵지는 않았나요.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뽑혀서 지원금을 받았거든요. 제 뜻에 공감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류진희 TBS 작가님이 같은 회사에 있는 정연주 아나운서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국내 최고 네일아트 전문가 중 한 분인 박은경 유니스텔라 대표님은 재능기부로 모델들 네일아트를 해주셨어요. 김미한 노블레스 매거진 기자님이 편집과 기본적인 잡지제작에 고문으로 도움을 주셨어요. 잡지는 정말 종합예술이에요.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외모 다양성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66100을 휴간한 상태라고요.


“2014~2016년에 계간으로 7호까지 만들었어요. 광고를 안 넣고 만드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성형외과·다이어트 보조제·화장품 같은 광고가 많이 들어왔지만 외모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저희 방향과 안 맞아서 거절했습니다. 사회적 기업 육성 사업 지원 기간이 끝나고 제가 모델로 화보 촬영하고 런웨이에 서는 돈으로만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창간호를 만들려고 텀블벅에서 1000만원 정도 후원받았거든요. 광고 없이 100페이지를 칼라로 만들었습니다. 한 권에 1만원인데 제가 1년을 들고 다니면서 창간호 1000부를 다 팔았습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유지가 힘들었어요. 결국 돈이 필요해서 저도 쇼핑몰까지 창업하게 됐습니다.”

-잡지를 계속하기 위해 쇼핑몰을 만든 건가요.


“이렇게 말하면 결국 쇼핑몰 창업하려고 잡지 만들어서 주목받은 거 아니냐고들 해요. 66100은 1년에 4번 출판하는 계간지인데, 잡지를 만드는 데 한 달에 최소 5000만원은 필요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잡지를 읽고 삶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한 건 현실이에요. 저도 먹고는 살아야 하고요. 

66100 홈페이지 캡처

서울 동작구에 부모님이 대로변 건물 5층에 세 들어 사셨어요. 5층이 꼭대기 층인데, 거기서 옥상 가는 통로에 옆에 가로, 세로 5m 정도 되는 공간에서 첫 매장을 열었습니다. 쇼핑몰 이름도 66100입니다. 플러스 사이즈를 떠올리면 임부복 같은걸 생각하는데 저는 큰 옷도 예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플러스 사이즈 의류를 오프라인에서 파는 곳이 많지 않아서 온라인에서 대충 사이즈를 보고 고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안 맞는데 팔만 들어가도 사는 거예요.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알아요. 그런데 옷 안 입을 거 아니면 대안이 없으니까요. 더 나은 선택지를 제안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면서 오프라인 방문 고객들을 위해 전신 사이즈 측정· 스타일링·자세교정 서비스도 해드렸습니다.”


-고객들 반응은 어땠나요.


“재구매율이 40%가 넘습니다. 보통 인터넷 의류 쇼핑몰 반품률이 20~25% 정도 됩니다. 저희는 10% 미만입니다. 제주도에서 서울 방문한 김에 옷 사러 오기도 하고요, 전라도 광주에서 찾아오시는 분도 계세요. 

출처: 66100 제공

저는 ‘아무거나 주세요, 잘 모르겠어요’ 같은 반응을 보이는 고객에게는 구매를 권해드리지 않아요. 그렇게 산 옷은 결국 안 입게 되더라고요. ‘아무거나’에 숨겨진 의미를 최대한 찾아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정말 원하는 옷이 있을 때 사야 만족도가 높습니다. 한번 오프라인 샵에 들러 사이즈를 재면 다음부턴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쇼핑몰 만든 첫 달에 12만원 벌었어요. 다음 달부터 28만원·50만원·100만원으로 늘었습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매달 성장했습니다. 

출처: 66100 제공
김지양 66100 대표

동묘로 매장을 옮겨 2년 동안 운영했습니다. 제품도 많아지고 사업이 커져서 2018년에 7호선 이수역 근처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플러스 사이즈 속옷은 저희가 아마 업계에서 가장 많이 팔지 않았나 해요. 뭐 다른 곳이 얼마나 팔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저희가 2년 동안 2억원 정도 팔았거든요.”


-쇼핑몰 말고도 하는 일이 많으시다고요.


“외모다양성 활동가로 일합니다. 저희 매장을 찾는 고객 중에 섭식장애를 겪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너무 조금 먹거나 너무 많이 먹고 토하고,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기도 합니다. 이게 질병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강연을 다니면서도 섭식 장애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모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다 보니 한 달에 1번씩 모여서 어려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근본적인 해결법을 알아갑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데뷔한 후 11년 동안 어떤 변화를 느끼시나요?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 꼭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는 것. 멋진·힘센·건강한 여자처럼 아름다움을 제외한 다양한 수식어를 선택하는 여성도 많아졌어요. 예쁜 옷보다는 편안한 옷을 찾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출처: 66100 제공

이젠 많은 사람이 ‘모두에게 다 똑같은 옷이 예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참 몰 개성화된 삶을 살았잖아요. 점점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이뤄낸 거죠.”


-올해 목표는 뭔가요.


“잡지 66100을 꼭 다시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 에세이 집 2권도 계약해서 쓰고 있고요. 인터뷰 사진집 ‘기분이 조크든요’도 낼 겁니다. 옷차림·외모로 차별받고 놀림 받아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외모나 체형 때문에 생긴 차별·혐오·고민·걱정을 속 시원하게 말하면서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홍대에 새로운 오프라인 의류 매장도 열 계획입니다. 섭식 장애 자조 모임도 더 자주 하고요.”


글 jobsN 정세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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