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박성현 선수도 겪은 '골프계 불치병'은?

조회수 2020. 9. 21. 16: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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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 유민호가 겪었던 이것..운동선수들 불치병이라는데
운동 선수에게 치명적인 '입스'
극복하고 다시 정상 궤도 찾은 선수들
다른 길 찾거나 은퇴할 수도…

호주 프로야구 파견 선수로 뽑힌 재송 드림즈 유민호 선수. 전과 달리 제구가 전혀 되지 않아 결국 한국으로 돌아온다. 귀국 후 연습경기에서도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강판 당한다.


야구 구단과 선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장면이다. 극 중 유민호 선수는 입스(Yips) 증상 때문에 슬럼프에 빠졌다. 입스는 부상과 실패에 대한 부담감, 지나친 주변 의식으로 손과 주위 근육의 발한, 경련 등 신체적인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지만 골프, 야구, 농구 등 운동선수나 특정 근육을 사용하는 직군에 흔히 일어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신체 역량을 최대화 해야하는 운동선수에게는 치명적이다. 운동선수에게 입스가 찾아오면 기량이 현저히 떨어져 결국 포지션 변경이나 심하면 은퇴를 하는 경우도 많다. 국내에는 어떤 선수가 입스를 겪었고 극복했을까.

출처: SBS 홈페이지, 방송 화면 캡처
재성 드림즈 유민호 선수

◇골프계의 불치병 '입스'


입스는 골프계에서 불치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골프는 멘탈 게임이라고 할 만큼 샷 하나에 많은 집중력을 요구해 입스가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연구 결과 전 세계 골퍼 25% 이상이 입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어를 최초로 쓴 토미 아머(Tommy Armour)도 골프 선수였다. 메이저 대회에서 세 번이나 우승하고 당시 최고의 스윙을 갖췄던 선수로 알려졌다. 그러나 US오픈에서 최악의 성적을 낸 후부터 최고의 기량을 내던 때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입스가 일어난 것 같다. 입스는 한 번 오면 절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 박인비도 입스를 겪었다. 입스 때문에 2008년 US오픈 우승 후 4년간 57개 대회에서 우승을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박인비 선수는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분수샷(공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샷)'이 났다"고 말했다. 잔디만 봐도 무서웠다고 한다. 또 그는 2008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기권했는데 이도 입스 때문이었다. 샷이 옆으로 빠지다 보니 공을 잃어버렸고 마지막 홀에서 칠 수 있는 공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최초로 공이 없어서 퇴장당할 것 같아서 기권했다고 한다. 이후 코치와 멘탈 트레이너의 도움으로 입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LPGA 신인상,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던 박성현 선수도 입스를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힌 그는 부담감에 입스를 겪었다. 결국 자신의 장점인 스윙 스피드를 줄이고 정확성을 높이면서 입스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프로 데뷔 후인 2014년에 입스가 재발했다.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중학교 3학년 때 스윙 영상을 돌려보면서 연습했고 염색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극복했다고 한다. 

출처: 조선DB
박인비 선수(좌), 박성현 선수(우)

◇야구에서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야구에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우완 투수 스티브 블래스 이름을 따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한다. 그는 1968년 18승 6패로 내셔널리그 승률왕에 올랐다. 1971년 월드시리즈에서는 그의 역투로 팀이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 19승을 하면서 생애 최다승을 달성하고 MLB 올스타 전에 뽑힌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1973년 이유 없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제구가 무너지자 몸에 맞는 공, 볼넷 등으로 결국 3승 9패를 기록했다. 투구폼을 고치고 명상 등 노력했지만 결국 1974년 은퇴했다.


현 야구 코치인 홍성흔은 1999년 포수로 두산에 입단했다. 골든글러브도 두 차례나 받은 좋은 포수였지만 입스에 시달렸다. 공을 잡았지만 어디로 던져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고 한다. 야구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좋아하는 포지션인 포수를 포기하고 타자로 전향해 야구 인생을 이어갈 수 있었다.


LG 트윈스 정근우 선수도 입스를 극복한 선수로 유명하다. 2005년 SK에 입단 후 입스 때문에 송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내야에서 외야로 전향하기도 했지만 뜬공을 처리하지 못해 결국 실력은 바닥을 쳤고 선수도 아닌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당시 정근우 선수는 "'안 되면 2군 가면 된다. 어차피 내 책임이니까 후회 없이 해보자'"라고 생각하니 조금씩 나아졌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다시 기량을 올리기 시작해 최고의 2루수로 자리 잡기도 했다.

출처: 조선DB, LG트윈스 홈페이지
선수 시절 홍성흔(좌), 정근우 선수(우)

◇입스로 은퇴했지만 다시 국가대표로


'2020 도쿄올림픽 3x3 남자농구 1차 예선 및 FIBA 3x3 아시아컵 2020' 국가대표 노승준 선수. 그는 한때 '인생에 농구는 없다'고 말했던 은퇴 선수다. 노승준 선수는 2012년 전주 KCC에 입단했다. 그리고 2013년 초 입스가 왔다고 한다. 프로에 입단 후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자세에 변화를 줬는데 슛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막연히 폼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지 입스라고 생각도 못 했다. 그는 "상무에 입대해 연습으로 고치려고 했지만 점점 안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입스인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심리·최면 치료, 주사 치료까지 받았지만 증세가 악화해 결국 2019년 5월 은퇴했다.


농구를 그만두고 일반 기업 공채를 준비했다. 그러던중 이승준 선수가 국가대표로 뽑혀 공백이 생긴 3x3팀에서 잠깐 뛰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잠깐 도와주고 취업 준비를 하려고 했던 그 마음이 입스 극복에 도움이 됐다. 부담을 내려놓자 슈팅이 돌아온 것이다. 결국 2019년 소속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출처: 유튜브 kifan
선수 시절 엄정욱

◇최고 구속 158km 던지던 파이어볼러도…


극복한 사례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코치 및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정준씨는 한때 야구 선수였다. 아버지 김성근을 보고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고 1992년 2차 9순위로 LG트윈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입스 때문에 5경기 만에 은퇴한다.


한때 KBO리그 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졌던 엄정욱도 입스로 고생했다. 2000년 데뷔한 엄정국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 입스가 찾아온 건 신인 때였다. 공을 잡고 1루로 던지려고 할 때마다 손이 덜덜 떨렸다고 한다. 너무 괴로워 술 마시고 자해까지 해 정신과 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았다. 코치의 도움으로 회복했지만 2014년 다시 증세가 악화했다. 투수로 등판한 경기에서 10년 전 일이 떠올라 폭투를 던졌고 경기에서 패했다. 결국 입스와 갖은 부상으로 2015년 은퇴 후 야구와 인연을 끊고 과일가게에서 일했다. 지금은 엄정욱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프로골프 선수들의 입스 원인과 대처방안에 대한 심층적 접근' 논문을 보면 내적 원인(56.5%)이 외부 및 환경(43.5%)보다 컸다. 각 스포츠계 지도자 및 선수들은 입스는 타인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부담을 떨쳐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최천식 인하대 배구부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입스를 극복하려면 선수 스스로 심리적인 부담을 떨쳐내는 수밖에 없다. 지도자는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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