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다트머스 엄친아들이 폐업 서점 인수한 까닭

조회수 2020. 9. 21. 16: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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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위기의 서점을 인수한 엄친아들
1985년 시작한 사회과학 서점 ‘풀무질’
전범선·홍성환·고한준씨, 2019년 6월 인수
책 오래 읽기 행사 등 기획해 사람들 모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앞에는 특별한 서점이 하나 있다. 1985년 문을 연 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이다. 사회과학서점은 1980년대 대학생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던 모임의 장이었다. 말하자면 과거 운동권 학생들의 아지트.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 서울에만 20곳이 넘던 사회과학서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관악구 서울대 앞에 있는 ‘그날이 오면’과 풀무질 단 두 곳만이 남았다.


풀무질은 2019년 6월 새 주인을 만났다. 전범선(29)·홍성환(30) 대표와 고한준(28) 부점장이다. 2018년부터 독립출판사 두루미를 운영해 온 전 대표와 고 부점장은 출판사와 함께 운영할 서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폐업 위기인 풀무질을 인수할 사람을 찾는다는 기사가 나왔고, 서점을 찾은 이들은 인수를 결심했다. 이후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에서 아태지역 교사 교류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홍성환 대표가 합류했다.

출처: 풀무질 제공
(왼쪽부터) 홍성환·고한준·전범선씨

◇폐업 위기 서점 인수한 이유는 “책·서점이 좋아서”


이들은 겉보기에 서점 풀무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범선 대표는 록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고 부점장도 다른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 스펙도 화려한 소위 ‘엄친아’들이다. 전 대표는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홍 대표도 유학파다. 뉴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신문방송학을 공부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사회정책학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 고 부점장은 건국대학교 철학과 출신이다.

출처: jobsN, 풀무질 제공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앞에 있는 풀무질. 사상가들이 그려진 벽화를 따라 내려가면 서점이다

-서점을 인수한 이유가 궁금하다.


(고) “철학과였던 만큼, 책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임종국 선생이 쓴 ‘한국 문학의 사회사’를 읽고 책 내용에 푹 빠졌어요. 1970년대에 나왔는데, 내용이 너무 좋았어요. 한국 사상가들의 책을 내보자는 생각에 밴드 활동을 하며 친분을 쌓은 전범선 대표와 출판사를 시작했어요. 여성운동가 허정숙의 글을 담아 2018년 11월 ‘두루미 사상서’ 1권을 냈습니다. 


전 대표는 서점에 관심이 많았어요. 두루미 사상서 2권을 준비하던 중, 전 대표가 서점 인수를 제안했습니다. 마침 은종복 전 풀무질 대표님이 서점을 인수할 사람들을 찾고 있었어요.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홍) “유학하면서 전 대표를 만났는데요. 둘이서 문화 사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어요. 풀무질 인수 소식을 듣고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죠. 우리 세대 문화를 대변하고, 세상을 즐겁게 바꿀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고 합류했습니다.”

출처: 풀무질 제공
풀무질 서점 내부

◇3개월 정비 후 9월 재오픈 


-6월 인수하고, 3개월간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고. 


(홍) “지인들을 동원해 직접 보수작업을 했습니다. 서점이 반지하인 탓에 책과 책장에 습기가 가득했어요. 약 4만권이었던 책을 정리하고, 부패한 나무 집기도 들어냈습니다. 인테리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깨진 타일 보수작업과 페인트칠을 직접 했어요. 장서를 약 9000권으로 줄이고, 사람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재정비했습니다.”

-새로 태어난 풀무질을 소개한다면.


(고) “책 권수를 줄인 대신, 주제를 더 다양하게 했어요. 기후변화·동물권 등 기존에 없었던 주제를 보강했습니다. 또 책방이 책을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소파와 테이블을 배치했습니다.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도록 서재처럼 꾸미기도 했어요.”

출처: 풀무질 제공
직접 내부 수리를 하는 모습

◇커뮤니티 기능 강화해 사람들 모을 것


-다양한 행사도 하고 있다고. 


(고) “가장 반응이 좋았던 행사는 책 오래 읽기 대회입니다. 30명이 도전했고, 34시간 동안 책을 읽은 참가자가 우승했어요. 사실 그렇게까지 오래 읽으실 줄 몰랐어요. 해보니까 저희도 그 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반응이 좋았고, 다시 해달라는 요청도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일년에 한 번만 열 생각입니다.”

출처: 풀무질 제공
책 오래 읽기 대회 당시 모습

-재단장 6개월 차를 맞았다. 현재 풀무질 운영은 어떤가.

(전) “폐업 위기였던 서점을 이어받은 만큼 초기에는 한 달에 약 100권 팔기도 힘들었습니다. 오래 읽기 대회처럼 이색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를 열심히 한 덕에 판매량이 월 500여 권 정도로 늘어났어요. 이제 막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는데, 최근 코로나 여파로 발길이 다시 주춤해져 걱정입니다.”


-목표는.

(홍) “책방을 살리기 위해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책방이 성공하려면 일단 사람이 자주 와야 해요. 책방의 역할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을 엮어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행위를 풀무질이라고 하는데요. 그 이름처럼 모임을 활성화해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사상의 불을 지피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글 jobsN 박아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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