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jobsN

이것도 처음, 저것도 처음…봉준호 감독이 세운 기록들

봉준호가 거머쥔 오스카, 어디까지 알고 있니

15,861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Parasite)’이 2월9일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오스카’로도 알려진 아카데미 시상식은 세계 영화 산업을 이끄는 할리우드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영향력이 세계 3대 국제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보다 월등히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한 건은 기생충이 처음으로, 이전까지는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직후

출처조선DB

<봉준호가 쓴 아카데미 기록들>


봉 감독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4개 트로피를 가져갔다. 감독으로서 영화 연출을 맡은 것 뿐 아니라, 제작과 각본 작업까지 담당해 4개 부문 모두 직접 수상자가 됐다. 이같이 한 개인이 동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1953년 월트 디즈니 이후 67년만에 처음이다. 월트 디즈니는 2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단편 다큐멘터리, 장편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최초의 비영어권 영화로 기록됐다.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과 작품상을 동시 수상한 첫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1938년 제1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대한 환상'(프랑스)을 시작으로, 1969년 'Z'(프랑스·알제리), 1972년 '이민자들'(스웨덴), 1973년 '외침과 속삭임'(스웨덴) , 1995년 '일 포스티노'(이탈리아), 1998년 '인생은 아름다워'(이탈리아), 2000년 '와호장룡'(중국 외), 2012년 '아무르'(프랑스 외), 2018년 '로마'(멕시코) 등 9편의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봉준호 감독

출처조선DB

아시아 출신 감독으로 작품상을 거머쥔 것도 봉준호 감독이 처음이다. 봉 감독은 이안 감독에 이어 아시아 출신으로는 두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마운틴’과 ‘와호장룡’으로 두차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모두 브로크백마운틴은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고, 와호장룡 역시 미국 자본이 투자된 영화였기 때문에 순수 자국 자본으로 영화를 제작해 감독상을 받은 인물은 봉 감독이 처음이다.


아시아계 영화가 각본상을 탄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비영어권 영화가 각본상을 탄 것도 2003년 스페인에서 제작된 ‘그녀에게’ 이후 17년 만이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이전에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탄 것은 1955년 미국 델버트 만 감독의 ‘마티’ 이후 65년만이다.


<다른 세계적 거장과 배우들은?>


봉 감독은 기생충으로 한번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수많은 세계적 거장들이 수상에 실패할 정도로 아카데미 감독상의 문턱은 높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아카데미와 유난히 인연이 없는 감독으로 꼽힌다. 그는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5차례 지명됐으나 단 한차례도 수상하지 못한 4명의 감독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히치콕 감독은 ‘레베카’로 1939년 작품상을 수상한 적은 있다. 1968년에는 지금의 공로상 격인 ‘어빙 G 솔버그상’을 수상했다. 

봉 감독이 작품상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역시 아카데미 감독상과는 지독히 거리가 먼 감독 중 하나였다. 그는 2007년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 작품인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이전까지 7번을 미끄러져야했다. ‘성난황소’,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좋은 친구들’, ‘순수의 시대’, ‘갱스오브뉴욕’, ‘에비에이터’, ‘택시드라이버’로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수상에 실패했었다. 그는 디파티드 이후에 ‘더울프오브월스트리트’로 감독상 후보에 다시 올랐으나 실패했고, 이번에도 ‘아이리시맨’으로도 수상에 실패했다. 종합 전적 1승 9패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사람은 1930~1940년대 주로 활동했던 미국의 존 포드(1894~1973년) 감독으로, 총 4차례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아파치 요새’. ‘황색 리본’ , ‘리오그란데’ 등 서부 영화를 주로 찍었던 감독이었으나, 아카데미 감독상은 모두 비서부 영화로 수상했다. 

배우 자격으로 아카데미를 가장 많이 수상한 사람은 미국의 여배우 캐서린 햅번(1907~2003년)으로 총 4차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모닝글로리’로 26세에 첫번째 오스카상을 받았다. 마지막이었던 4번째 수상 당시 햅번은 74세였다. 남우주연상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로 총 3회 수상자다. 

가장 아카데미 후보로 많이 오른 배우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맘마미아’로 친숙한 배우 메릴 스트립이다. 그는 지금까지 총 21차례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중 수상까지 성공한 것은 3차례다. 남자 배우 중에선 잭 니콜슨이 12차례 후보에 올라 3차례 수상에 성공했다.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출연한 2013년 22세 나이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연소 여우주연상 기록이다. 남자 배우로는 애드리언 브로디가 ‘피아니스트’로 2003년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는 2017년 라라랜드를 만든 데이미언 셔젤 감독으로 당시 32세였다.    

유난히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는 배우들은 누구일까. 제일 먼저 꼽히는 배우는 영국의 연기파 배우 피터 오툴(1932~2013)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 왕자의 아버지였던 프리아모스왕 역할로 출연했던 배우로 잘 알려져있다. 그는 총 8번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수상에 실패했다. 하지만 2003년 아카데미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한을 풀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영국 배우 리처드 버튼 역시 총 7차례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수상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피터 오툴처럼 공로상을 받지 못했다.     

DC 유니버스 영화에서 슈퍼맨의 애인 ‘로이스 레인’ 역할로 출연하고 있는 에이미 아담스 역시 아카데미와 유독 인연이 없는 편이다. 그는 지금까지 여우조연상 후보에 4번, 여우주연상 후보에 1번 등 총 5번 후보에 올랐으나 전부 수상에 실패했다. 하지만 아직 40대이기 때문에 향후 수상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을 받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아카데미를 안겨준 영화 '레버넌트'

출처레버넌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아카데미 운이 없는 배우로 꼽혔지만 최근 한을 풀었다. 디카프리오는 ‘길버트 그레이프’와 ‘블러드 다이아몬드’, ‘에비에이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조연상 1차례, 주연상 3차례 등 총 4차례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수상에 실패했다. 특히 전세계적 신드롬을 낳았던 ‘타이타닉’으로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서 디카프리오는 한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기도 했다. 결국 그는 ‘레버넌트’로 2016년 첫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 성공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역사>


1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1929년 5월 16일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 270여명이 LA의 루스벨트 호텔에 모여 개최했다. 이 때의 수상분야는 12개 분야로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촬영상, 미술상, 각색상 등이었다. 사실 1회 시상식의 분위기는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정도의 저녁 식사 모임이었다고 한다.


제2회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캘리포니아 지역 라디오 방송으로 중계가 되기 시작했다. 17회 시상식 때부터는 미국 전역에 라디오로 방송되었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화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에 파병된 미군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5회 시상식부터 미국 NBC 방송을 통해 TV 생중계가 됐는데, 이 때의 시청률은 NBC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아카데미 트로피의 별명은 ‘오스카’다. 왜 ‘오스카’라고 불리게 됐는지 명확하진 않으나 가장 유력한 설은 시상식 관리자들 중 한 명이 트로피를 보고 “내 삼촌 오스카와 많이 닮았네요.”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높이 34cm, 무게 3.85kg인 오스카 트로피는 표면에 금이 조금 섞였기 때문에 만약 판매한다면 약 40만~50만원의 값어치가 나간다고 한다. 

아카데미 시상식 장소는 호텔에서 만찬형식으로 치러지다가 흥행을 위해 16회 시상식부터 극장으로 옮겨 진행하기 시작했다. 1969년부터는 LA 카운티 뮤직센터 도러시 챈들러 파빌론에서 개최했고, 1988년부터는 슈라인 오디토리움과 번갈아가며 진행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는 할리우드에 돌비 극장이 아카데미 전용 시상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돌비 극장은 2001년 설립 당시 코닥의 투자로 지어진 ‘코닥 극장’이었으나, 코닥이 파산하고 돌비가 인수하여 2012년부터는 돌비 극장으로 불리고 있다.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중에서는 ‘타이타닉’이 11관왕에 오른 1998년 제70회 시상식이 시청자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약 5500만명이 생방송으로 이를 지켜봤다. 

영화 '타이타닉'

출처타이타닉

지금까지 아카데미 수상작중 가장 많은 부문을 수상한 영화는 총 3개 작품으로, ‘벤허’(1959년)와 ‘타이타닉’(1997년),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2003년)이 주인공이다. 각각 작품상과 감독상 등 11개 부문을 석권했다.


글 jobsN 이준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작성자 정보

jobsN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